'물'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운 존재다. 일본과 동남아를 휩쓸었던 쓰나미같은 극단적인 물난리가 일어나면 엄청난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한다.
쓰나미는 둘째치고, 2011년 여름에 우리나라에 쏟아졌던 집중호우 만으로도 많은 피해를 낼 수 있다. 강이나 바다처럼 물 주위에서 살고 있다면 나름대로 좋은 점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물로 인한 피해가 없을 때의 이야기다.
거친 날씨는 잔잔한 물의 흐름 역시 거칠게 변화시킨다. 그것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서 해안마을을 덮치고 불어난 강물은 차량들마저 둥둥 떠내려가게 만든다. 댐에서 방류된 엄청난 양의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하류로 쏟아져오는 장면은 참으로 위험한 스펙터클이다.
물을 다스리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라면 더했을 것이다. 불어난 물이 넘쳐서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집으로 침입해 들어오는 모습, 자신의 생활공간이 서서히 물에 잠기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때의 심정은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아름다운 물의 도시
온다 리쿠의 2000년 작품 <달의 뒷면>의 무대는 가상의 도시 '야나쿠라'다. 이곳은 현대판 일본의 베니스라고 할 만한다. 야나쿠라에서는 거미줄 같이 얽혀 있는 수로가 도시전체를 가로지르고 있다. '돈코배'라 불리는 기름한 나무배를 타고 버들가지 살랑이는 수로를 따라 내려가는 풍경은 순수문학이나 영화의 무대로도 손색이 없다. 그야말로 시인이 노래할만한 마음의 고향, 세피아빛 노스탤지어의 세계다.
주인공인 다몬은 자신이 선생님이라 부르는 교이치로를 찾아서 야나쿠라를 방문한다. 교이치로는 전화로 다몬에게 이곳에서 발생한 기이한 사건을 언급하며 야나쿠라를 찾아줄 것을 권했다. 음반회사 프로듀서인 다몬은 별 생각 없이 태평하게 휴가를 맞은 것처럼 야나쿠라를 찾아 왔다.
교이치로는 다몬과 함께 산책하듯이 수로를 걸으며 사건에 대해서 들려준다. 최근 일 년 동안에, 이 지역 주민 세 명이 차례대로 살고있던 집에서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세 명의 공통점은 예순 살을 넘긴 여성이며 모두 수로에 접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치 수로의 물이 이들을 데려간 것처럼.
더 기이한 일은 그 여성들 모두 실종된 지 며칠 후에 귀신처럼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사라진 며칠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호기심을 느끼는 다몬에게 교이치로는 지역 신문기자 다카야쓰를 소개해준다. 때마침 우연처럼 교이치로의 딸 아이코가 오랜만에 아버지를 방문한다. 그리고 의기투합한 네 명이 함께 실종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의문의 연속 실종사건
강이나 바다에서 배를 탈 때 갑판 난간에 서서 발밑의 물을 가만히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저 물속에 들어가면 참 편안하겠다'라는 것이었다.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긴다면 십중팔구는 저 세상으로 가겠지만, 물을 바라보던 당시에는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이 물 역시 이중적인 면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이 필요하지만, 그 물은 사람을 유혹하기도 한다. 강이나 호수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 아닐까?
작품을 읽는 내내 '왜 제목이 달의 뒷면일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달은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같기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달의 한쪽 면만 바라보게 된다. 맑은 하늘에 손가락으로 뚫은 구멍처럼 떠 있는 달. 사람들은 달의 뒷면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물론 앞면에 무엇이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주인공도 달을 바라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한다. 인간이 달에 갔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조차 알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하긴 우리가 알고있던 사물과 사람들의 이면을 어느날 갑자기 알게 되는 것, 그것은 확실히 두려운 일이다.
달의 뒷면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비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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