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연 지키려면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편지] 순위 경쟁 비례대표, 정당성을 잃었습니다

등록 2012.05.12 15:32수정 2012.05.1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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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비례경선 문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해법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5월 9일 추성호 시민기자의 글을 게재한 데 이어, 최승현 시민기자의 반론을 싣었고, 조명훈 시민기자의 재반론을 실습니다. 다른 의견의 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김재연 당선자님!

 

앞서 추성호씨, 최승현씨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재연씨는 한국외국어대 학생 운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었습니다.

 

☞ 첫글 : 추성호 <사퇴하십시오, 할 수 있는 선택은 그것뿐입니다>

☞ 반론 : 최승현 <그냥 독배 마셔라? 김재연 사지로 내몰지 말아야>

 

저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지만, 한총련에 대한 탄압은 잦아들 줄 모르던 그때도 꿋꿋이 진보적 학생 운동의 대의를 지키며 수배 생활을 마다 않던 재연씨의 모습을...

 

재연씨가 저와 함께 민주노동당 한국외국어대 학생위원회를 이끌었던 게 아마 2005년 즈음이었죠? 학교 안팎의 탄압에도 진보적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동분서주하던 그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또 2006년에 제가 외국어대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지지하다 대학본부로부터 무기정학 징계를 받았을 때, 부당 징계 철회 투쟁에 재연씨가 보내준 아낌없는 지지도 저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이 99%를 대변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제19대 총선이 치러진 지난 4월 11일 오후 서울 대방동 통합진보당 종합상황실에서 이정희, 조준호 공동대표와 윤금순, 김제남, 김재연, 조윤숙 비례후보가 당선이 확정된 노회찬, 강동원, 오병윤 후보 사진에 당선축하 꽃을 달아주고 있다.
제19대 총선이 치러진 지난 4월 11일 오후 서울 대방동 통합진보당 종합상황실에서 이정희, 조준호 공동대표와 윤금순, 김제남, 김재연, 조윤숙 비례후보가 당선이 확정된 노회찬, 강동원, 오병윤 후보 사진에 당선축하 꽃을 달아주고 있다.권우성
제19대 총선이 치러진 지난 4월 11일 오후 서울 대방동 통합진보당 종합상황실에서 이정희, 조준호 공동대표와 윤금순, 김제남, 김재연, 조윤숙 비례후보가 당선이 확정된 노회찬, 강동원, 오병윤 후보 사진에 당선축하 꽃을 달아주고 있다. ⓒ 권우성

그래서일까요, 지난 통합진보당 청년 비례대표 선거에서 재연씨가 당선됐을 때, 저는 참 기대를 많이했습니다. 한국외국어대에서 보여줬던 그 당당함과 야무짐이라면, 썩어빠진 기성 정치판에서 누구보다 멋지게 우리 사회 99%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전 지금 통합진보당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김재연이라는, 한국진보 정치의 소중한 자산에게 사퇴를 강요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말이죠.

 

제가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선출에 대해 처음으로 불미스런 소식을 접한 것은 청년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 불거진 이른바 '소스코드 수정' 논란 때문이었습니다. 저 또한 '소스코드 수정'이 갖는 의미를 잘 모르는 대부분의 통합진보당 당원 중 하나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겠거니 하고 지나쳤습니다. 또 '총선 이후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청년비례후보 선출위원회의 입장을 듣고 그동안 진보 운동이 보여 준 역량이라면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얼마든지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랬던 제게 총선 이후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비례후보 선출 과정이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라는 발표는 정말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이의엽 정책위의장의 반박 기자회견 내용이 사실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잇따른 언론보도를 접하고, 또 밤새 치러진 전국 중앙위원회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저의 바람은 점점 실망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정당성 상실한 순위 경쟁 비례대표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 재검증을 위한 공청회에 김재연 당선자가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 재검증을 위한 공청회에 김재연 당선자가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남소연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 재검증을 위한 공청회에 김재연 당선자가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여기서 이른바 '당권파'와 '비당권파' 사이 논점이 되는 부분을 일일이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이번 비례후보 선출 과정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이른바 '당권파' 측에서는 이번 선거가 '부실'인 것은 맞지만 '부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부실 선거의 책임을 비례후보 당선자에게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은 앞으로 2차, 3차의 조사를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은 이번 비례후보 선출 과정이 진보진영 전체가 부끄러워해야 할 만큼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것이고, 이 사실은 선거 결과의 신뢰 여부와 직결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부정 선거냐 아니냐, 또는 부정의 주체가 누구냐 하는 논란과 무관하게 이 선거에서 확정된 순위 경쟁 비례대표 명단은 이미 정당성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대통령 선거에서 몇 개의 투표함에서 부정 선거가 발견돼도 선거 전체를 무효라고 외친다"는 김창현 중앙위원의 말(지난 5일 전국운영위원회 당시)이 설득력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순위 경쟁 비례대표 명단에 포함된 후보들이 일괄 사퇴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청년 비례후보 선출 과정은 여타의 선거에 비해 공정했는가'라는 점입니다.

 

전국 중앙위원회가 순위 경쟁 비례대표 명단 후보들의 일괄 사퇴를 결의하자 재연씨는 "공명정대한 과정을 거쳐 선출된 저는 합법적이고 당당하다"며 사퇴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당시 김재연 후보와 함께 청년 비례후보 선거에 참여했던 김지윤, 이윤호, 조성주 후보 측은 "투표 기간 중이었던 3월 11일 오전 7시, 시스템개발업체에 의해 투표 프로그램의 소스 파일이 수정됐고, 수정 이전의 원본 파일은 백업되지 않았으며, 소스코드 수정 내역도 별도로 기록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소스코드 수정이 선본의 요구에 따른 작업이었다'는 선출위원회의 주장에 대해서도 김지윤, 이윤호, 조성주 후보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한편, 한 대형 IT업체 팀장은 "소스 코드를 변경하려면 관리자 계정으로 들어가야 하며, 이는 투표함을 열어본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습니다(<프레시안> 보도 내용 참고). 이런 상황에서 청년 비례후보 선출 과정이 "공명정대했다"는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 있을 수 있을까요.

 

마녀사냥? 정치공세?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 재검증을 위한 공청회를 단독으로 강행한 이정희 공동대표가 김재연 당선자와 나란히 공청회에 참석하고 있다.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 재검증을 위한 공청회를 단독으로 강행한 이정희 공동대표가 김재연 당선자와 나란히 공청회에 참석하고 있다.남소연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 재검증을 위한 공청회를 단독으로 강행한 이정희 공동대표가 김재연 당선자와 나란히 공청회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진보진영의 생명은 '정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보수 기득권 체제에 균열을 내고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이, 통합진보당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이 진보진영의 '정당성'을 인정해 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실, 더 나아가 부정 의혹으로 누더기가 된 이번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선출 과정은 우리 진보진영의 정당성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의심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두고 '마녀사냥' '정치 공세'이라고 운운하는 것은 진보 정치 지지자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말처럼, 진보진영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이 아닌 '종파'의 눈으로 현 사태를 바라보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입니다.

 

이런 의심을 하루 빨리 털어내지 않으면, 진보진영의 정당성을 흠집 내는 데 혈안이 돼 있는 검찰 등 보수 기득권 세력이 균열 사이로 파고들 것입니다. 그리고는 진보진영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기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선출 과정에 책임이 있는 대표단, 선관위원회, 사무총국 등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재연씨를 포함해 비례대표 경쟁 명부에 포함된 후보들도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것이 진보 정치가 거듭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재연'이라는 자산을 지키려면...

 

저는 최승현씨가 추성호씨를 비판한 것처럼, 재연씨에게 '잘못이 있든 없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면서 그만 두라'는 게 아닙니다. 또 '사람들이 충격 받았고 실망했으니 자리를 내놓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맨 처음 재연씨에게 글을 쓴 추성호씨도 절대로 그런 취지로 사퇴를 권하진 않았습니다. 그 점에서 '자신의 양심을 믿고 살아온 사람을 떳떳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고 피바람의 소용돌이로 몰아서야 되겠느냐'는 최승현씨의 비판은 오독인 동시에, 지금도 통합진보당 당원으로서 진보 정치를 확고히 지지하는 추성호씨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대신 저는 재연씨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렇게 부실과 부정 의혹으로 점철된 선거로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한들, 진보 정치의 지지자들이, 나아가 국민들이 과연 재연씨를 당당한 진보정치의 대표자로 바라볼까요?

 

김재연 당선자님!

 

저는 진심으로 재연씨가 한국 정치를 대표하는 진보 정치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눈 앞의 의원직에 연연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진보진영이 국민들 앞에서 스스로 정당성을 회복하는 길에 앞장서 주십시오. 저는 그것이 진보진영도 살고, 김재연이라는 진보 정치의 소중한 자산 또한 지키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통합진보당 #청년 비례대표 #김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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