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공성 말하면 '정치 편향'...예산 삭감하라?

서울시립대 일부 학생대표, 학생 자치언론 예산 삭감 추진

등록 2012.05.11 19:19수정 2012.05.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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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일 발행된 <대학문화> 교지 <시럽> 44호 ⓒ 대학문화

지난 5월 3일 발행된 <대학문화> 교지 <시럽> 44호 ⓒ 대학문화

2012년 5월 3일,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교지 <시럽(Syrup)>이 발행되었다. <대학문화> 교지편집위원회(이하, <대학문화>)는 1978년 창간되어 현재까지 34년째 교지를 발행해온 학생자치언론이다. <대학문화>가 발행한 이번 교지에는 표현의 자유, 한미FTA, 제주해군기지, KTX민영화, 교육공공성뿐만 아니라 시립대 학생들이 보낸 기고글 및 사진과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다.

 

교지가 배포된 당일 저녁, 학내 커뮤니티 중 하나인 서울시립대광장(이하, 광장) '이야기s' 카테고리에 '우리 학교 교지인 <시럽> 말이죠'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되었다. 이윽고 댓글들이 이어졌고, 조회수는 5월 11일 기준으로 2000건을 돌파하였다. 학생으로부터 벗어나 편향된 글을 쓰므로 <대학문화>가 학생회비 20%를 받고 있는 것은 과하고, 예산이 삭감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해적기지' 표현과 표지모델 김지윤씨 등을 지적하며 '정치적 편향성'을 주된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광장에 자주 방문하는 재학생의 숫자가 10%~20%에 머무는데다가 많은 수가 벼룩시장 및 알바 정보 때문에 찾는 편이다. 게다가 광장에서 활동하는 네티즌의 많은 수가 졸업생이기에, 이곳에서의 여론을 100% 신뢰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편향된 여론을 토대로 학내의 대표자들이 여론수렴 혹은 파악의 기구로서 사용하는 데 있다.

 

이로부터 이틀 뒤인 5월 5일,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 학생회장은 <대학문화> 페이스북 계정에 "다만, 중요한 점은 총학생회비의 20%가 간다는 것이 논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중립적일 필요는 없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총학생회비 20프로는 보다 축소해야 할 듯하네요"라며 '예산 삭감' 의견을 게재했다.

 

총학생회 관련 업무에 관하여 논하는 '중앙운영위원회' 자리에서도 그는 <대학문화>의 독자적인 내규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았고, 고성이 오가며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예체대 부회장(대의원회 부의장)은 노골적으로 "교지대 삭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기까지 하였다.

 

또한 이들은 오는 5월 17일에 열리는 2012년도 1학기 제2회 정기 대의원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대의원회의는 매 학기 2회씩 열리며 서울시립대학교 내 과학생회장 및 부회장, 단과대 회장 및 부회장, 직능별 자치기구 회장 등 86명이 모이는, 학생총회 다음으로 가장 큰 의결기구이다. 동시에 세칙 수정을 통해 교지에 관한 예산을 수정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대학문화> 교지편집위원회는 계획했던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교지대금 방어를 위해 초 비상사태이다. 회칙상으로는 20%이지만 만약 10%가 삭감되면 편집위 입장에서는 50%의 예산 삭감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폐간을 의미한다.

 

<대학문화> 교지편집위원회는 2009년 말 대의원회의 시 영향력이 적다는 불명확한 이유로 학생회비 30%에서 20%으로 예산 삭감을 이미 거친 바 있다. 그 이후 <대학문화>는 신국배판으로 발행하던 교지를 일반 잡지처럼 발행하는 B5판형 방식을 채택하고, 교지 발행뿐만 아니라 총학생회 후보 토론회 영상 제작, 2011년 졸업앨범 사태 최초 고발 및 피해자 대책위 최초 결성, 그리고 올해에는 학생총회 의결안건 제시 등의 활동을 하며, 학생자치언론으로서 지금까지 학생들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활동을 폭넓게 해왔다. 그러나 현재 편집위의 재정은 적자 상황이고 선배들의 후원금과 편집위원들의 사비를 충당하여 간신히 이어나가고 있다.

 

이처럼 서울시립대학교의 자치언론은 위기에 처해 있다. 교지 외에도 여러 학생자치언론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 사라지고 <대학문화>가 유일하다. 인문/사회과학의 위기도 심각하여 몇몇 소모임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인 인문/사회과학 동아리도 전부 사라졌으며 시립대에서 본격적으로 이와 관련한 학문 분야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치기구 역시 <대학문화>가 유일하다. 실제로 학내에서 정치나 사회과학의 이야기를 할 곳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편집실에 찾아온 학우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시립대의 언론사는 정치적인 편향성(?) 때문에 탄압을 받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서울시립대뿐만 아니라 많은 학내 언론들이 편집 논조와 성향에 상관없이 억압받고 있다. 성균관대 학보사는 1인 강사 문제를 다뤘다는 이유로 학교 측의 편집권 침해로 인해 두 달여간 파업을 진행했다가 최근에서야 학교 측으로부터 편집권 보장을 약속받았다.

 

한편, 고려대의 <고대문화> 교지편집위원회는 현 총학생회 비판 글을 교지에 실은 후 총학으로부터 학생회비에서의 교지대 분리 납부(교지대의 실질적 삭감) 압박을 받아왔다. 충남대는 교지 예산을 총학생회와 대의원들이 쥐락펴락하며 교지를 총학생회의 홍보기구로 만들기 위해 압박하고 있다.


학생운동이 쇄락하면서 전반적인 학생자치 문화가 함께 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항거하며 함께 유기적으로 협동했던 학내 자치기구들이, 이제는 특정인들의 스펙쌓기의 용도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학우들의 자치기구들에 대한 몰이해와 불신을 부추기고 끝없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그 상황에서 인문학과 자치언론들은 탄압받고 차츰 차츰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서울시립대의 상황은 수많은 신음하는 자치기구들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학생들 스스로가 학생자치의 소중함을 깨닫고 피동적인 삶이 아닌, 주체적인 의지를 가지고 학생사회와 자치기구에 참여하는 변화가 강력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서울시립대학교 대학문화 교지편집위원회 전 편집장이자 재무국장입니다.
#서울시립대학교 #대학문화 #교지편집위원회 #예산삭감 #자치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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