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화장실에 피아노를? 왜 그랬을까

강원도 화천 산골마을, 어느 어죽탕 집 이야기

등록 2012.05.15 09:39수정 2012.05.1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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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이 있는 식당, 미술 전시실인지 식당인지 구분이 모호했다.
풍경이 있는 식당, 미술 전시실인지 식당인지 구분이 모호했다.신광태

"이 식당에 올 때마다 사장님께 말씀을 여쭙고 싶었는데, 오늘 시간 좀 되시겠어요?"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에 있는 조그만 어죽탕 집. 옛날에 초라한 초가 정도였을, 농촌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ㄷ자 형태의 집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중고품 악기들이다. 이곳이 골동품 가게인지 식당인지 판단이 모호해진다.

'음식점임을 알리는 커다란 간판도 없는데, 어떻게 이곳이 식당인줄 알고 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까!'라는 궁금증은 있었지만, 바쁜 주인을 붙들고 물을 수 없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봄비가 내리는 오늘 같은 평일이면 그나마 좀 한산 하겠거니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이 어죽탕 집을 다시 찾았다.

40대 이후에는 찬 음식보다 어죽탕과 같은 따뜻한 음식 섭취가 좋다

 이것이 이장인표 어죽탕이다. 동동주는 서비스로 제공 받았다.
이것이 이장인표 어죽탕이다. 동동주는 서비스로 제공 받았다.신광태

이 집 주인인 이장인(57세)씨는 중학생 시절 친구를 따라 한번 왔던 이 마을이 무작정 좋았다. 이것도 인연이란 생각에 이곳에 어죽탕 집을 차린 것은 12년 전인 2000년. 산골 분위기에 맞는 식당을 구상했다. 그래서 평소 음악을 좋아해 모아두었던 LP판과 피아노, 기타를 실내 공간에 배치했다. 그리고 한지 작가인 부인 최순자(60세)씨는 식당 내부에 열심히 그림을 그려 넣었다.


"구만리에 있는 새로 생긴 식당 있잖아요. 거기 가 보셨어요? 정신 사나워 어디 가겠어요."

새로운 식당이 생겼다는 말에 호기심을 가지고 이곳을 찾은 촌 아낙들은 이 식당을 평가절하 했다.


"시골에 사시는 분들께서 '새로 생긴 식당은 외형부터 깨끗하고 뭔가 화사하게 리모델링이 되었을 거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우리 집을 찾았는데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고 충분히 그렇게 생각을 하실 수도 있었을 겁니다."

 영락없는 평범한 농가 주택으로 보이지만, 이곳은 엄연한 어죽탕 전문 식당이다.
영락없는 평범한 농가 주택으로 보이지만, 이곳은 엄연한 어죽탕 전문 식당이다. 신광태

당시 어죽탕이란 이름도 생소하지만, 처음 도전하는 음식의 맛이 있느냐 없느냐도 문제였다. 민물 잡고기라는 것은 종류별 또는 부위별로 맛이 다르다. 아무 민물고기나 갈아서 어죽을 만든다고 어죽탕 고유의 맛을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 당시 알게 되었다. 남편 이씨가 다양한 물고기를 이용해 어죽탕을 만들어 내고, 최종적으로 맛을 결정하는 것은 부인인 최씨가 맡았다.

"그렇게 2~3년이 지나자 한 번 다녀간 손님들이 다른 손님들을 모시고 찾아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는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한 홍보는 소비자들에게 다소 과장으로 비추어 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실제로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음식에 대한 설명과 이곳 북한강 최상류 국내 최고의 청정지역에서 잡히는 민물고기를 이용한 어죽탕 임을 강조했다.

 화천 어죽탕은 북한강 최상류에 서식하는 다양한 어종으로 만들어 신선함을 더한다.
화천 어죽탕은 북한강 최상류에 서식하는 다양한 어종으로 만들어 신선함을 더한다. 신광태
"어죽탕에 넣는 주 어종은 누치, 매자, 민물새우, 잉어, 붕어, 모래무지 등 다양합니다."

어죽탕을 만들 때 주로 어떤 어종을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망설임 없이 대답해 준다. 또 기호에 따라 후추를 넣는 사람들도 있지만, 감칠맛과 어죽탕 고유의 향을 살리려면 산초가루를 넣는 좋다고 덧붙인다.

"요즘 도시민들은 덥다는 이유로 에어컨이나 냉방에 익숙해져 있어요. 또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는 찬 음식을 많이 찾게 되는데, 그것이 결국 자신의 체질변형을 가져온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따라서 40대 이후에는 가끔 찬 음식을 드실 수 있겠지만, 따뜻한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볼 수 있지요."

그래서인지 이곳 어죽탕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창문을 열면 강 상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천정에 매달린 선풍기 2대면 한여름에도 끄떡없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바람이 강변 상류에서 하류로 관통할 수 있도록 창문을 배치해 놓은 것이 이씨의 말을 증명한다.

화장실에 피아노가 있어야 하는 이유

이씨는 젊은 시절에 음악을 좋아했다. 좋아했다는 것보다 심취했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란다. 그래서인지 뜨락이며 뒤란 할 것 없이 망가진 악기들이 즐비하다. 오래되고 망가진 풍금은 식당 입구에 전시를 해 놓고 아직 쓸만한 피아노와 기타는 실내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화장실에도 피아노를 배치해 놓은 이유가 뭘까!

"화장실에 안방처럼 커튼도 드리우고 피아노도 가져다 놓은 경우는 내 살다 살다 처음 봅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사색하기 좋고 편해야 하는 장소가 화장실입니다. 화장실을 찾는 사람들이 그것(피아노)을 보고 아름다운 선율을 떠올릴 수 있다면 큰 행복 아니겠습니까."

이런 말을 듣는 경우 뭔가 특별한 게 더 있을 것 같다는 호기심이 든다. 그래서 그와 나눈 대화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이야기가 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이장인씨.
이야기가 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이장인씨.신광태
- 밖을 보니까, 음식 콘테스트에서 입상을 한 상패도 눈에 뜨이던데, 왜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걸어 두었나요?
"그것은 몇 년 전에 화천군에서 추진한 음식 콘테스트에 어죽탕을 출품해, 입상으로 받은 상패인데, 원래는 단순한 수상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야기가 있는 음식 콘테스트에 입상을 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때 수상을 하면 보기 좋게 입구에 걸어둘 생각입니다."

- 이야기가 있는 음식이란 게 뭔지 생소한데요.
"어떤 음식이든지 스토리는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어죽탕은 조리과정 그런 내용 말고, 음식과 음악이 어울린 특별한 맛에 대한 스토리를 알려주고 싶다는 것이 이야기가 있는 음식이다 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 너무 심오한 부분에 대해서는 (제 무지 때문에) 질문을 하지 않겠습니다. 혹시 어죽탕 효능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음식은 의학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드시면 어디에 좋다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경험을 하신 분들의 말을 빌자면, 빈혈이 있던 사람이 우리 집 어죽탕을 먹고 좋아졌다거나, 감기몸살, 속 쓰림이 심했던 사람, 관절이 좋지 않았던 분들이 효능을 말하는 경우는 자주 있었습니다."

- 처음 이곳으로 오실 때 사모님(최순자씨)께서 반대가 심하셨을 것 같은데...
"우리 집사람은 여기 오기 전, 인천시 어느 미술협회에서 활동을 했는데, 꿈이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구원해 드린 거지(웃음). 처음 이곳을 리모델링하고, 악기와 골동품을 비치하고, 실내 조그만 공간에도 그림이나 작품을 만들어 비치하는 것은 내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신났던 것은 나보다 집사람이었다는 것이 솔직한 말입니다. 덕분에 이렇게 근사한 공간을 갖게 된 것 같아 (집사람에게) 늘 감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죽탕 #화천 #이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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