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기자가 '자주학습'도 몰라요?

[르포①] <동아> 1면 등장한 전남 강진 '늦봄문익환학교' 찾아갔더니

등록 2012.05.21 21:30수정 2012.05.2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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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에 있는 '늦봄 문익환 학교'. 학교 이름처럼 고 문익환 목사의 정신을 기리는 대안학교로 '배워서 남주자'가 는 학문탐구 목표다. 이 작은 시골 대안학교가 <동아일보> 1면에 등장했다. ⓒ 이주빈

전남 강진에 있는 '늦봄 문익환 학교'. 학교 이름처럼 고 문익환 목사의 정신을 기리는 대안학교로 '배워서 남주자'가 는 학문탐구 목표다. 이 작은 시골 대안학교가 <동아일보> 1면에 등장했다. ⓒ 이주빈

지난 5월 17일 <동아일보>엔 '전남 강진 비인가 대안학교 늦봄학교에선'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졸업식장서 北(북)축사 읽고 간첩죄 8년 복역 교사도'라는 소제목과 함께 시작한다. 기사의 두 번째 소제목은 '제주 강정마을 시위도 참여'이고 기사는 다음과 같다.

 

지난달에는 학생 86명이 8박 9일간 제주 강정마을로 '제주평화기행'을 다녀왔다. 4월 17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현장팀장 김모 씨와 제주해군기지사업단 정문 앞에서 '해군기지는 불법'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공사 차량 진입을 막으며 농성을 했다. 김 씨는 현장에서 집시법 위반으로 서귀포경찰에 체포됐다.

 

그리고 기사는 또 이렇게 이어진다.

 

주말을 제외하고 학생들은 매일 1시간씩 '노작' 수업 일환으로 밭을 갈고 집을 짓는다. 수업시간에는 '철학'과 '자주학습' 등을 배운다. 연중행사로는 △ 4·19체육대회 △ 5·18기행(묘비 닦기, 마라톤대회, 영창 체험) △ 6·15기념행사(이북음식 나눠먹기, 통일음악회)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북한의 축사, 간첩, 시위 등이 사전에 규정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친북, 빨갱이 등일 것이다. 그것은 곧 불온이며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그래서 뒤이어 나오는 늦봄학교 수업과정에 대해서 영리한 <동아일보> 기자는 과정에 대한 설명없이 '노작' 수업, '자주학습' '철학' 등을 나열한다.

 

'노작'은 이북 사람들이 즐겨 읽는다는 '김일성·김정일 노작'인가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자주학습'은 자주성을 강조하는 이북을 따라하는 학습인가 물음표가 붙는다. 은근한 의문에 전제되는 것은 바로 색깔 칠하기다. 기자는 영리한 기교로 시골 한 대안학교를 불온한 학교로, 학생들을 '간첩죄로 복역한 교사'가 가르치는 대로 배우는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렸다.

 

'노작', '자주학습'... 색깔 칠하기에 당한 대안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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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스스로 운영하고 있는 늦봄학교 매점. 점심시간이라 학생들이 군것질거리를 사느라 줄을 서 있다. ⓒ 이주빈

학생들이 스스로 운영하고 있는 늦봄학교 매점. 점심시간이라 학생들이 군것질거리를 사느라 줄을 서 있다. ⓒ 이주빈

<오마이뉴스>가 그 무서운 학교, 위험한 학생들을 만나러 21일 오후 전남 강진 도암면에 있는 '늦봄학교'를 찾았다. 현재 학생수는 78명, 중·고등학교 과정을 연계해서 교과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마침 학생들은 점심시간이라 장기를 두거나 매점에서 군것질거리를 사며 쉬고 있었다. 주로 학생들이 이용하는 매점 역시 학생 스스로 운영한다고 한다. 참, 이 학교 학생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인사를 매우 잘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교사들은 물론 처음 보는 기자에게까지 "안녕하세요"라며 밝게 인사했다.

 

이미 학교에선 <동아>의 보도가 가장 큰 화젯거리였다. 남형민(18) 학생은 늦봄학교 학생회장을 맡고 있다. 그 역시 지난 4월에 강정마을에 다녀왔고, '자주학습'을 하고 있으며, '노작'활동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기사 제목을 보자마자 어이없어 웃음부터 나왔어요. 기자가 기사보다 글을 너무 잘 쓰드라구요. 근데 기자가 몇 년 된 유행어도 모르면 어떡해요. '자주학습'은 유행언데. '자기주도학습' 줄임말이잖아요.

 

학생 스스로가 자기계획 세워서 영어를 하든 밀린 과제를 하든 악기 다루고 싶은 연습을 하든 말 그대로 자기가 계획 세워 자기 스스로 하는 학습이 '자주학습'이에요. 저는 '야자(야간자율학습)'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야자의 기본정신과 순수한 의도와 뜻을 같이하는 학습이죠. 서울대 가는 애들이 인터뷰 하기만 하면 '자기주도 학습'이 좋다고 하던데 왜 우리 학교만 문제 삼나요?"  

 

김슬(17) 학생은 4학년에 다니고 있다. 일반 학교로 치면 고1 과정이다. 그는 "기자가 나보다 우리 학교 행사와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웃겼다"면서도 "기자가 우리를 (특정한 방향으로) 아주 잘 몰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기사를 읽어보면 5·18이나 4·3 등 학교에서 국가가 지정한 국가기념일 행사하는 것도 잘못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기사를 읽다보면 뭔가 우리가 잘못한 것 같은데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기자가 사실에 입각해서 기사를 쓴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쓴 것 같아요."

 

김슬 학생은 요즘 자신의 '자주학습' 내용을 공개했다.

 

"오전에 숙제 없으면 책을 읽는데요, 요새 읽는 책은 <종이여자>라고, 로맨스 소설이에요. 어 근데 이런 책 읽으면 안 되나…."

 

"서울대 간 애들 인터뷰에선 '자기주도학습'이 좋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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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자주학습' 시간에 만화를 읽고 있다. ⓒ 이주빈

한 학생이 '자주학습' 시간에 만화를 읽고 있다. ⓒ 이주빈

늦봄학교에서 '철학과 영성'을 가르치는 박현 교사는 '자주학습'을 이렇게 소개했다.

 

"자주학습(자기주도학습)은 1, 2년 된 게 아니라 학교 생기면서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죠. 아이들이 자기들 계획에 의해 만든 자기커리큘럼이기 때문에 좋아하고 편해합니다. 1, 2학년 때는 뭘 해야 할지 갈팡질팡 하지만 올라갈수록 자기내용을 충실하게 스스로 잡아가요. 그게 바로 자기주도학습의 힘이죠."

 

6학년(일반고교로 치면 고3) 과정을 다니고 있는 송예인(19) 학생의 요즘 자주학습은 오전엔 영어공부를 하다가 오후엔 친구와 서로 모른 것 가르쳐주거니 독서를 하고, 저녁엔 수능 준비하는 친구들과 함께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으로 채워진다.

 

"기자가 '자주학습'이란 단어에 무슨 의도를 덧칠하고 싶어 했는지는 모르지만 학생들에게 전화 한 통만 해서 물어봤어도 이런 기사는 안 썼을 거예요. 늦봄학교 학생 중에 이 기사를 쓴 <동아일보> 기자랑 통화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어요."

 

박 교사는 "자주학습, 노작 등 사람들이 놀랄 만한 단어를 사용하며 쓴 기사를 보면서 조그만 시골학교를 힘없다고 들어서 색깔 칠하기 이용물로 삼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너무 안타깝고 속상했다"고 쓴 한숨을 토했다.

 

* 기사 이어집니다. 다음 기사는 '늦봄학교 아이들은 강정마을에 가서 무얼 했나'입니다.

#늦봄학교 #동아일보 #강정마을 #간첩 #문익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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