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서 아이들 강제노동? <동아> 심했다
늦봄문익환학교의 '노작', 그 실체를 아시나요

[르포③] 늦봄문익환학교 찾아갔더니... "노동의 존귀함 일깨우는 게 불온한가"

등록 2012.05.24 08:54수정 2012.05.2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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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이용하는 매점 건물도 학생들이 힘을 합쳐 지었고, 매점의 운영 역시 학생들이 스스로 하고 있다. 늦봄학교에서 '강요'하거나 '강제'하는 교과과정은 없다. ⓒ 이주빈

학생들이 이용하는 매점 건물도 학생들이 힘을 합쳐 지었고, 매점의 운영 역시 학생들이 스스로 하고 있다. 늦봄학교에서 '강요'하거나 '강제'하는 교과과정은 없다. ⓒ 이주빈

'늦봄문익환학교'는 전남 강진 백련사 아래 멀리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채 열 동이 안 되는 건물이 옹기종기 둘러앉은 모양이 마치 아이들이 공기놀이할 때 앉는 모습과 비슷하다.

 

비인가 대안학교지만 늦봄학교에서는 영어, 수학, 국어 등 일반교과도 가르치고 있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학교 설립정신은 고 문익환 목사의 정신을 잇겠다는 것이다. 이 정신은 '배워서 남주자'는 말로 요약된다.

 

그렇다 보니 늦봄학교에는 일반 학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교육과정들이 있다. <동아일보>가 늦봄학교 학생들이 광우병 집회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좌편향적인 체험활동과 교육내용에 치우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체험학습'도 그런 교육과정 중 하나다.

 

물론 기사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학생들은 여러 분야의 직업을 이해하기 위한 직업체험 활동을 하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오래전부터 그들 스스로가 당사자였던 광우병 집회에 참여한 것이다. 하지만 <동아>는 광우병 집회에 참가가 체험학습의 목적인양 호도했다.

 

"<동아>, 우리 아이들이 강제노동 당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기사 썼다"

 

또한 늦봄학교엔 '나이테'라는 자기여행 과정이 있다. 한 학년을 마치고 상급학년으로 올라갈 때 떠나는 여행으로 일종의 '학년걸이' 같은 것이다. 남형민 학생회장은 자신의 '나이테' 경험을 소개했다.

 

"1학년 마치고는 해남 땅끝을 출발해서 학교로 돌아가는 여행을 했구요, 2학년 마치고는 소록도 한센환자 분들 찾아가서 4박 5일 동안 봉사활동 했어요. 3학년 마치고는 지리산 종주를 했어요. 나이테를 다녀오면 '우리 힘으로 못할 게 뭐 있나' 싶을 정도로 친구가 친구를 넘어 가족과 형제 같은 느낌으로 다가와요."

 

체험학습, 나이테 등과 함께 늦봄학교 소중하게 여기는 교육과정이 있다. 그것이 바로 문제의 '노작' 활동 시간이다. <동아>는 이 노작을 두고 "주말을 제외하고 학생들은 매일 1시간씩 '노작' 수업의 일환으로 밭을 갈고 집을 짓는다"고 보도했다.

 

늦봄학교 한 교사는 "<동아일보>가 없는 룰까지 만들어 놓고 우리 아이들의 노작 활동을 마치 강제수용소에서 강제노동 당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기사를 썼다"며 "예전에 <한국논단>이라는 극우잡지가 있었는데 그 수준만도 못한 기사"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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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만화 캐릭터 '우주중사 케로로'의 이름을 딴 한 노작활동 조. 이들은 텃밭에 상추를 심었는데 다른 조에 비해 재배를 잘하고 있었다. 케로로 조 텃밭 뒤로 하얗게 핀 꽃은 무꽃, 한 조가 '방치농법'으로 무를 재배해 구내식당에 내다팔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 이주빈

인기만화 캐릭터 '우주중사 케로로'의 이름을 딴 한 노작활동 조. 이들은 텃밭에 상추를 심었는데 다른 조에 비해 재배를 잘하고 있었다. 케로로 조 텃밭 뒤로 하얗게 핀 꽃은 무꽃, 한 조가 '방치농법'으로 무를 재배해 구내식당에 내다팔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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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텃밭을 가꿀 때 쓰는 도구들을 조별로 가지런히 정리해두고 있다. 늦봄학교에선 교장, 교사, 학생은 물론 누구도 예외없이 노동을 한다. 단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한다. ⓒ 이주빈

학생들이 텃밭을 가꿀 때 쓰는 도구들을 조별로 가지런히 정리해두고 있다. 늦봄학교에선 교장, 교사, 학생은 물론 누구도 예외없이 노동을 한다. 단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한다. ⓒ 이주빈

"모든 노동하는 분들에 대한 존귀한 마음 잃지 않게 하는 것"

 

그렇다면 늦봄학교의 '노작'의 실체는 무엇일까. 노작은 '노동작업'을 줄인 말이다. 문익환 목사가 평소에 노동하는 이들의 노고를 잊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쌀 한 톨이라도 대하라고 했던 마음가짐을 이어받자는 취지다.

 

노작 활동은 <동아>가 보도한 것처럼 텃밭을 가꾸는 일도 포함되긴 한다. 학생들은 조를 짜서 자신들이 재배하고 싶은 채소 등을 기르는데 거의 '방치농법' 수준이다. 이를테면 기자가 방문했을 때 한 조는 자신들 텃밭에 무를 기르고 있었는데, 무는 이미 꽃까지 피어 상품으로 내다 팔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나마 '우주중사 케로로' 조가 일구는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상추 정도가 판매할 정도는 되어 보였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경작한 채소 등을 자신들이 식사를 하는 구내식당에 판매한다.

 

박현 교사는 "아이들은 직접 땀을 흘려보고, 그 땀의 대가로 자란 채소가 작은 돈이지만 나에게 다시 재물로 돌아오는 노동의 귀중한 과정을 공부한다"며 "자신의 노동이 귀중하듯 세상 모든 노동하는 분들에 대한 존귀함을 마음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이 과정의 중요한 목적"이라고 소개했다.

 

노작 활동은 텃밭 가꾸기도 있지만 마을 농사짓는 분을 찾아가거나 주유소를 방문하는 것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선택은 학생 스스로 한다. 그러니까 <동아>의 보도처럼 노작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농부들의 고생 생각하며 감사하게 먹는 것이 그렇게 불온한 일이냐"

 

남형민 학생회장은 "<동아> 기사를 보고 농사를 짓는 아버지가 전화해서 하시는 말씀이 '걔들이 그렇게 나오면 동아일보사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즐거운 방법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겠다'고 하셨다"며 "밥을 먹으면서도 봄부터 가을까지 벼 기르느라 고생했을 아버지와 같은 농부들의 고생을 생각하며 감사하게 먹는 것이 그렇게 불온한 일이냐"고 따졌다.

 

이승요 늦봄학교 교장은 "'배워서 남주자'는 것은 나누고 도우며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자는 의미"라며 "옷을 하나 입더라도 옷을 만드느라 고생하신 분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밥을 한 숟갈 들더라도 농사지으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을 어쩜 이렇게 이념의 영역으로 끌고 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박현 교사도 "학교라는 공간은 좌우 이념을 떠나 진리를 찾고 삶의 행복 찾는 곳"이라며 "그런데도 학교라는 나름의 신성한 영역까지 침탈해서 자기들 이념의 이익에 유리하게 기사를 포장하는 모습을 보며 차라리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쓰게 웃었다.

 

한편 <동아>의 늦봄학교 보도 이후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늦봄학교 색깔 칠하기에 나서자 늦봄학교를 후원하고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광주·전남노회, 광주기독교회협의회 등 교계는 "<동아일보>의 늦봄학교에 대한 편파적이고 왜곡적인 보도를 용납할 수 없다"며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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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의 늦봄학교에 대한 허위 왜곡보도를 규탄하고 있는 기독교장로회 관계자들. 교계는 "동아일보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이주빈

<동아일보>의 늦봄학교에 대한 허위 왜곡보도를 규탄하고 있는 기독교장로회 관계자들. 교계는 "동아일보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이주빈

#늦봄학교 #동아일보 #기독교 #문익환 #대안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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