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미사 기다리는 것도 불법시위인가요?"

[르포②] '늦봄 문익환 학교' 학생들이 강정마을에서 한 일은...

등록 2012.05.23 15:15수정 2012.05.2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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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보도 이후 시골 대안학교였던 늦봄학교가 일약 전국적인 명문이 됐다며 농담을 하고 있는 이승요 교장과 박현 교사, 그리고 학생들. ⓒ 이주빈


"<동아일보> 기사대로라면 담배꽁초 줍고, 5.18 묘비 닦아드리고, 해군기지 찬성반대를 떠나 강정마을 어르신들에게 재롱잔치 해드리는 것이 모두 '빨갱이짓'이겠네요. 왜 우리들의 순수한 행동에 빨강 색칠을 하는지 슬퍼요."

늦봄학교 남형민 학생회장이 슬퍼하는 까닭은 17일자 <동아일보> 기사 때문.

지난달에는 학생 86명이 8박 9일간 제주 강정마을로 '제주평화기행'을 다녀왔다. 4월 17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현장팀장 김모 씨와 제주해군기지사업단 정문 앞에서 '해군기지는 불법'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공사 차량 진입을 막으며 농성을 했다. 김씨는 현장에서 집시법 위반으로 서귀포경찰에 체포됐다.

늦봄학교 학생들은 기사가 기본적인 사실관계마저 왜곡했다고 주장한다. 강정마을에 평화기행을 가서 학생들이 한 일은 강정천변 등 마을 청소하기, 어르신들에게 노래 및 춤 공연하기, 심지어 경찰이 버린 쓰레기까지 청소하기, 백배 절하며 명상하기, 미사에 참여하기 등이었다는 것이다.

<동아> 기사에 보도된 그날도 학생들은 "공사 차량 진입을 막으며 농성"한 적이 결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생들은 공사장 앞에서 매일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이 하는 백배 명상절을 마친 다음 미사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는 것이다. 이때 불법 공사 차량이 진입했고 학생들은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고 '김씨'라고 기사에 적힌 김종일 강정마을 현장팀장이 이를 항의하다가 연행돼 저녁에 풀려났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주장은 강정마을 주민들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21일 강정마을회, 강정청년회, 강정노인회, 강정부녀회, 일강정민속보존회 등은 '늦봄학교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는 글을 발표했다.

"늦봄학교 학생들이 강정에 왔다간 것은 비밀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에 드러나야 한다. 아이들은 너무나도 순수하고도 자율적인 방법으로 마을주민들에게 공연과 율동, 노래들로 마음을 달래주었었다. 그리고 마을주변과 강정천 일대 청소는 물론 늦봄학교 학생들을 에워싸고 체포연행 협박을 하던 경찰버스 주변에 경찰들이 버린 쓰레기까지 말끔하게 청소하는 활동을 벌였다.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리지만 참된 평화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학생들이었고 강정주민들은 크게 감명을 받았다. 감사의 인사를 몇 번이고 전해도 모자랄 만큼 강정주민들은 많을 것은 학생들로부터 받았다."

"강정마을 긴장감, 아이들 때문에 순식간에 해제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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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있는 늦봄학교 학생들. ⓒ 늦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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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어르신들을 초청해 재롱잔치를 하고 있는 늦봄학교 학생들. ⓒ 늦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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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공연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강정마을 주민들. ⓒ 늦봄학교


늦봄학교 학생들의 강정평화기행에 동행했던 박현 교사는 "해군기지 찬성반대 주민들간의 갈등, 공권력과 주민들의 긴장감 등 마을을 둘러싸고 있던 긴장감이 아이들에 의해 순식간에 해제되어버리는 놀라운 광경을 지켜봤다"며 "그 묘하게 한적했던 마을에 80명 가까운 우리 아이들이 골목골목 뛰어다니고 인사하고 다니니까 마을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주민들께서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남형민 학생회장은 "<동아일보> 기사 내용을 보면 마치 저희가 이념 교육을 세뇌당해서 누가 시키면 그대로 따라하는 자기결정권·자기선택권조차 없는 꼭두각시로 만들었다"며 "어떻게 한 인격체를, 한국이라는 사회의 민주시민인 한 구성원의 존재를 이처럼 잔인하게 무시할 수 있나"고 따졌다.

송예인 학생도 "강정마을 기행은 우리 학교가 가기 전에 10개도 넘는 학교가 이미 평화기행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 학교 중엔 일반학교도 있는데 왜 유독 우리 늦봄학교만 문제 삼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학생은 "명상음악에 맞춰 절 드리고,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미사시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것이 불법시위라면 세상에 불법 아닌 것이 뭐가 있나요"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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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실 한켠에 있는 고 늦봄 문익환 목사 사진. 늦봄학교는 고인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만든 대안학교다. ⓒ 이주빈


<동아>에 정정보도 요구했지만 거부... 법적 대응 계획

이승요 늦봄학교 교장은 "<동아일보> 기사는 이념적 편향적 목적이 소름끼칠 정도로 분명한 보도"라며 "그 이념적 편향의 희생물로 우리 아이들을 삼았다는 것이 너무 슬프고 분노스럽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동아일보>는 강정 문제를 평화의 문제가 아닌 이념의 문제로 만들기 위해 이 기사를 계획적으로 작전하듯 보도한 것 같다"며 "이런 평화체험이 일반 학교까지 번져가는 추세를 막기 위해 손발을 묶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동아> 보도 이후 한 핚교는 강정마을 방문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현 교사는 "차라리 교사들에게만 녹슨 이념의 공격질을 해댔다면 뻔히 아니까 '에구 또 시작이네' 하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갈 수도 있다"며 "하지만 이 착한 아이들 가슴에 애꿎은 이념의 상처를 남기게 된 것 같아 어른으로서 한국 사회 치부를 보여준 같아 한없이 미안할 뿐"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늦봄학교는 보도 직후 <동아일보>에 정정보도를 요구했지만 기사를 쓴 해당기자가 이를 거부함에 따라 언론중재위 제소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보도 내용이 늦봄학교 학생들과 교사, 학부모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보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상의해 법적 대응을 해나갈 계획이다.

다음 기사는 '늦봄학교 노작을 아시나요'입니다.
#강정마을 #늦봄학교 #동아일보 #빨갱이 #제주해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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