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도국 역할 부족"... '인터넷 아버지' 쓴소리

[현장] 인터넷 30주년 잔칫날, 망 이용 대가 놓고 '불협화음'

등록 2012.05.30 17:44수정 2012.05.3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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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아시아에서 '인터넷의 아버지'로 통하는 전길남 일본 게이오대학 교수가 30일 오전 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인터넷 3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 한국 인터넷 탄생과 발전 과정을 발표하고 있다. ⓒ 김시연

한국과 아시아에서 '인터넷의 아버지'로 통하는 전길남 일본 게이오대학 교수가 30일 오전 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인터넷 3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 한국 인터넷 탄생과 발전 과정을 발표하고 있다. ⓒ 김시연

"'인터넷 강국'보다 다른 나라를 선도하는 '인터넷 선진국'이 돼야 한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69) 일본 게이오대 교수에게 30일은 생일이나 다름없었다. 이날 오전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인터넷 3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전 교수는 "기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도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인터넷 부작용 해결 방법 모르고 선도국 역할도 미흡" 

 

전 교수는 1982년 5월 국내 최초로 구미 한국전자기술연구소(현 ETRI)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있는 컴퓨터를 인터넷 전용선(SDN)으로 연결한 주인공으로,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린다. 당시 인터넷 속도는 1초에 150자(바이트) 정도를 전송할 수 있는 1200bps(초당 비트수)로 지난 30년 사이 1천~1만 배 가까이 늘었다.

 

이날 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인터넷 30주년 기념식'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한 전 교수는 "한국은 인터넷 30주년을 축하할 수 있는 세계 두 번째 나라"라면서 "지금 우리 인터넷이 세계 톱을 다투게 된 건 95년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등 인터넷 초기 10여 년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제대로 열심히 한 결과"라며 뿌듯해 했다.

 

다만 전 교수는 "한국은 인터넷의 새로운 기회와 문제를 가장 먼저 경험한 국가 중 하나지만 사생활 침해, 오용 등 문제 처리 방법도 모르고 인터넷 선도국 역할도 미흡하다"면서 "우리가 먼저 잘 분석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해 곧 비슷한 일을 겪게 될 다른 나라를 돕는 게 인터넷 선도국으로서 우리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넷 프로토콜(통신규약)인 TCP/IP를 만들어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빈트 서프 구글 부사장은 이날 동영상을 통해 한국이 인터넷 30주년이 됐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서프는"미국이 69년 ARPANET(아파넷; 인터넷 원형)을 개발했지만 83년 TCP/IP로 대체한 걸 감안하면 한국이 우리보다 앞선 것"이라면서 "한국은 유무선 광대역 통신의 선두에 있다"고 추켜세웠다.

 

"한국 인터넷 속도 최고"... "모바일도 '한국식'으로 승부"

 

국제 인터넷주소(도메인) 관리 기관인 ICANN 스티브 크로커 회장 역시 동영상을 통해 "한국의 인터넷 실정은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는 것, 미래는 더 빠르다는 걸로 축약할 수 있다"면서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 브로드밴드 보급에 20조 투자 계획을 밝히는 등 한국 속도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날 컨퍼런스엔 전 교수 뒤를 이어 김상헌 NHN 대표를 비롯해 이기형 인터파크 대표, 권강현 삼성전자 미디어솔루션센터 전무 등 인터넷 업계와 학계를 대표하는 후진들이 '덕담'을 쏟아냈다.

 

최근 글로벌 출시된 갤럭시S3를 들고 나온 권강현 전무는 "오프라인 시대는 매장, 온라인 시대는 포털이 주도권을 가졌다면 지금은 '온 디바이스' 시대로 넘어오면서 고객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면서 "예전엔 제조사가 다 만들어 공급했지만 이젠 70~80%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고객이 완성하는 구조"라고 밝혔다.

 

김상현 NHN 대표는 "지난 10여 년 포털이 인터넷 트렌드를 선도해 왔다"며 "포털 성공 요인은 한국의 지역적, 문화적 특수성을 감안한 서비스 덕분"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국내 포털 첫 화면을 외국 코스 요리와는 다른 우리 전통적인 한상차림과 비교한 뒤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주는 게 한국식 포털 첫 화면의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모바일 시대는 한국 포털에 위기이자 기회"라면서 "모바일 시대에도 검색, SNS, 쇼핑 등 사람들이 필요한 것은 PC 시대와 유사하고 사람마다 주어진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 포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작은 상에 담아내는 게 포털의 미래"라고 밝혔다.

 

김상헌 NHN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인터넷 3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 네이버를 비롯한 한국 포털의 진화와 미래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김시연

김상헌 NHN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인터넷 3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 네이버를 비롯한 한국 포털의 진화와 미래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김시연

KT "망 이용대가 내라"... 잔칫집 분위기에 찬물

 

이런 잔칫집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건 통신업계를 대표한 유태열 KT 경제경영연구소 소장이었다. 유 소장은 "인터넷 초기엔 선순환이 가능해 이용자 정액요금제나 콘텐츠 사업자의 망 투자가 없어도 문제될 게 없었다"면서도 "지금은 가입자가 포화돼 순환 구조 작동이 불가능한 데 콘텐츠 기기는 폭증하고 일부 이용자와 '콘텐츠 사업자(CP)'가 트래픽을 독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트래픽 과다 유발로 블랙아웃 등 폭발에 대비해야 하는데 망 가치를 못 느껴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통신 사업자와 포털, CP간에 트래픽 유발에 따른 이용료 정산 체계가 필요하고 이용자 요금 구조도 프리미엄 서비스 제공 등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네트워크 구축 비용을 콘텐츠 제공자와 이용자도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국내 ICT 업계는 기가인터넷, LTE 등 속도 경쟁과 더불어 네트워크 차별 제공을 금지하는 '망 중립성' 논쟁도 뜨겁다. 하지만 통신업계는 최근 포털이나 콘텐츠 업체들에게 트래픽 유발에 따라 망 이용료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KT는 지난 2월 삼성전자 스마트TV 서버 접속을 차단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앞서 스티브 크로커 ICANN 회장은 "미국의 인터넷 발전은 한국보다 느리지만 빨라지려고 하지도 않는다"면서 "(의사 결정을 할 때마다) 많은 논쟁과 논의가 있고 의견 수렴을 통해 수정안을 내는 데도 평론가들은 너무 빠르다고 한다"며 '속도'보다 폭넓은 의견 수렴을 강조했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인터넷의 장기적 발전보다는 눈앞의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국내 기업들을 향한 따끔한 충고인 셈이다.  

#전길남 #인터넷30주년 #망중립성 #KT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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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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