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 파업으로 이어진 거죠"

호주 언론 연맹 총재의 눈에 비친 한국 언론 노조 파업

등록 2012.06.11 10:45수정 2012.06.1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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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을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지난 1월 30일, MBC 파업 소식을 전해 들을 때에도 이렇게 오래도록 '정말' 무한도전을 못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KBS, YTN, 연합뉴스, 국민일보가 모두 파업에 동참하는 전대미문의 심각성을 보면서도 그래도 설마…'생각'이라는 것이 있었다. 곧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으쌰으쌰' 응원을 한다는 마음만 갖고 있었으니 너무 안일되고 무딘 감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파업은 해결점을 보이지 못하고 한 달 두 달,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4개월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IFJ(International Federation of Journalist : 국제기자연맹)에서 한국 언론 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서는 그 소식을 아는 사람조차 제대로 없는 것 같았다. 

호주 멜버른 SBS(Special Broadcasting Service ; 호주 내 소수민족들을 위해 호주 정부가 운영하는 국영 방송) 라디오 한국어 방송에서 필자와, 또 함께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조진선씨가 호주 언론 엔터테인먼트 예술 연맹 (Media, Entertainment & Arts Alliance)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시드니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 연맹의 크리스토퍼 워렌 (Christopher Warren) 총재는 IFJ 의 헤드를 역임한 바 있는 호주 언론계 베테랑이다.

멜번과 시드니의 거리가 만만치 않아 부득이 시외 통화로 인터뷰를 했고 이 내용은 워렌 총재와 미리 조율한 대로 SBS 스튜디오에서 바로 녹음을 한 후 한국의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송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먼저 현재 한국에서 다섯 개 언론사 노조가 공정보도 회복 그리고 정부가 임명한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장기 파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 특히 MBC의 경우 4개월 이상 파업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워렌 총재는 "지금 한국에서 5개 언론사들이 함께 파업 중이라는 것은 언론 자유를 보장 받지 못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한국 뿐 아니라 모든 언론계에 큰 이슈로 봅니다"면서 "언론이 독립적인 부분을 인정 받지 못하고 게다가 정부의 관여를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워렌 총재는 또 언론은 어떤 선입관도 없이, 누구의 간섭이나 영향을 받지 않을 때 비로소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 국민들이 모든 일에 대해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갖게 되는 것인데, 그것이 정부, 권력 등에 지배를 받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a Christopher Warren 총재 호주 언론계 베테랑인 워렌 총재는 국제 기자 연맹 헤드를 역임했고 현재 호주 언론 엔터테인 아트 연맹 총재로 재직 중이다.

Christopher Warren 총재 호주 언론계 베테랑인 워렌 총재는 국제 기자 연맹 헤드를 역임했고 현재 호주 언론 엔터테인 아트 연맹 총재로 재직 중이다. ⓒ 제공 : 호주엔터테인아트 연맹

▲ Christopher Warren 총재 호주 언론계 베테랑인 워렌 총재는 국제 기자 연맹 헤드를 역임했고 현재 호주 언론 엔터테인 아트 연맹 총재로 재직 중이다. ⓒ 제공 : 호주엔터테인아트 연맹

"따라서 파업을 결행 한 언론인들의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한 그는 "파업 언론인들은 정말 큰 용기를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도 짐작한다고 덧붙였다.
 
공정보도를 위한 언론의 독립성 등에 관해 오랫동안 일을 해 온 워렌 총재는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개념 있는 언론인들이 얼마나 심한 어려움을 겪어왔는지 이미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제 언론 노조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그동안의 상황에 대해 파악을 하고 있다면서 "특히 MBC의 경우 기사를 쓴다든지 매체를 통해 보도함에 있어 많은 부분에서 제약을 받고 정부 권력층이 여러 각도에서 간섭을 해 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파업중인 언론 종사자들은 특히 자사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너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라는 현실을 설명하고, 이런 주장의 정당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워렌 총재는 "정부가 언론계의 높은 지위에 앉을 사람을 임명하고, 같이 연대하고, 그래서 선입관이 배제된 공정보도를 하려는 것을 막고, 방해하고 일일이 간섭을 했으니 이런 상황까지 몰고 온 것 아니냐"면서 한국 뿐 아니라 그 어느곳이든 모든 언론인들은 독립적이고, 자치적이어야 한다고 다시 강조했다.
 
즉 권력 지향을 완전히 배제하고 원칙을 지키며 그래서 언론인으로서의 자긍심에 조금도 의심되지 않는 상황에 놓일 때 비로소 공정보도가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언론사 곳곳에 배치한 높은 직위의 사람을 정책 홍보에 이용한다는 것은 언론이 지켜야 하는 기본에 위배되는 것이고 결국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맥락에서 개념있는 '진짜의 언론인'들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파업에 돌입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면서 이들이야말로 언론인이 지켜야 할 자세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집권당의 한 핵심 인사가 이번 언론사 파업은 '사내 문제'일 뿐이므로 노조와 경영진이 해결해야 할 일이고, 정치권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데, 이 주장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묻자 "자, 언론은 언론 그대로 독립성을 인정했어야 옳은 것이었다. 너무나도 기본적인 문제다"라면서 그런데  자신이 조사한 현재 한국의 상황은 정치 특히 특정한 한 정당이 언론을 자신들의 정책을 미화시키고 전달하는 중간 매체 정도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언론을 이렇게 사용하면 당장은 그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될지 모르지만, 긴 안목으로 볼 때 자신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공정한, 정당한 보도를 하는 언론 매체를 존재시켜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정당하다는 확신이 있다면 어떤 부분에 비판을 받더라도 있는 그대로 공정하게 보도해 주는 언론이 많아야 훗날 자신들의 일도 제대로 보도해 줄 것 아니냐고 워렌 총재는 강조했다. 정치는, 언론에, 이용이든, 방해든 어떤 것으로도 결코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고 그는 힘주어 덧붙였다. 

그렇다면 호주에서는 공영 방송인 ABC(Australian Broadcasting Cooporate), SBS (Special Broadcasting Service) 의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하고 있을까. 
 
워렌 총재는 "정치관련 인사는 절대로...절대로 이 방송의 보드 멤버(Board Member)가 될 수 없다"면서 "이것은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나 현재에 어떤 식으로든 정치와 관련 있는 사람이 보드 멤버가 된다면 해당 언론사가 적게든 크게든 영향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에 호주는 법률에서 특별한 정당과 관련있거나 정치에 관여된 사람은 이 분야의 일자리를 가질 수 없도록 규정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은 '언론인'만 가능하다고 그는 의미있는 설명을 했다. 

워렌 총재는, YTN 파업 때 부터 최근으로는 지난 5월까지 여러 차례 한국 언론 상황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한 국제 기자 연맹 (IFG ; International Fair Journaism)의 이러한 일련의 서포트가 과연 한국의 언론 자유 회복을 위한 싸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들이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는 언론 자유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동료'로서 지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총재는 설명했다. 어떤 정부가 되었든 그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언론이 있어야 그 사회가 공정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런 나라가 바로 잘 사는 나라인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워렌 총재는 "힘든 싸움을 이어가는 한국의 언론인들에게 세계의 언론이 그들의 파업을 지지하고 있다는 걸 다시 확인시켜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힘들겠지만 반드시 용기를 내어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을 회복하기 바란다는 메시지도 전했다. 특히 최근 KBS 노조의 요구가 다 받아들여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선에서 타결을 봤다는 것은 희망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너무나 당연히 가져야 할 것을 침해 당한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으나 부디 한국의 언론 파업이 잘 마무리 되어 공정 보도가 가능해지길 기대한다는 응원 메시지를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전화기를 내려 놓고, 녹음 파일을 저장하고, 2분도 되지 않아 이메일로 날아든 그의 사진을 보면서 좀더 자랑스러운 일로 다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런 생각에 잠시 빠져들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이라는 전제가 붙지 않을 일. '가슴 아픈 일'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아도 될 일...가능하다면 빠른 시일 안에 워렌 총재와 다시 통화를 하게 되길 희망해본다.
 
"언론 노조 파업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럼요. 그 옛날에 신문고 등 많은 제도를 우리는 갖고 있었던 역사가 있습니다. 왕이 지배하는 시절에도 '민심이 천심'이라면서 백성들의 솔직한 소리를 전달하는 신하를 '충신'이라 했던 나라가 우리 나라 입니다."
 
그렇게 '유치한 자랑질'이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제대로 보도하고, 그래서 국민들이 '제대로' 알 때, "국민이 권력"인 세상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언론노조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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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 45 년차. 세상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사를 찾아 쓰고 싶은 사람. 2021 세계 한인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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