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출입금지'... 이 말에 충격받는 개가 있다

[안내견 슬기가 보는 세상④] 안내견에 대한 안 좋은 시선, 슬픕니다

등록 2012.06.11 11:37수정 2012.06.1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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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세계 최초의 안내견 기자 김슬기입니다. 지난 8일, 우리 아빠가 근무하시는 중도실명자들의 재활기관 안마수련원에서 모든 훈련생들과 교강사들이 인천대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왜냐고요?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이 주최한 '사단법인 인천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개설 30주년' 기념식과 '시각장애인 한마음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지요.

그곳으로 저도 함께 따라가 시각장애인들의 한바탕 잔치를 취재하려고 합니다. 이날 프로그램의 참여자들 중 1급 시각장애인인 중증 장애인들은 '인천시각장애인 심부름센터'에서 운영하는 차량으로 인천대공원에 가기로 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안내견인 저와 함께 가는 관계로 그 차량에는 탈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차량에 태워야 하는 관계로 자리가 비좁았던 것이죠.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이해하고 다른 교통편을 통해 '인천대공원'까지 한숨에 달려갔습니다.

쉬다가 당한 봉변

 앉아 쉬고 있는 슬기

앉아 쉬고 있는 슬기 ⓒ 김경식


수많은 시각장애인들과 그들의 활동을 보조하는 활동보조인들, 그리고 여러 관계자들로 운동장이 떠들썩합니다. 우리는 운동장 한쪽에 마련된 천막 안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잔치에 빠질 수 없는 흥겨운 음악들이 스피커를 통해 쾅쾅 울려옵니다.

잠시 후, 기념식이 시작되고, 지역구 국회의원과 유관 단체에서 단체장들이 나와 축하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또 몇 분의 모범 시각장애인들과 후원 단체들이 각종 표창장과 감사패를 받습니다. 이후에는 맛있는 도시락이 배달돼 참가자들을 즐겁게 합니다.

아빠와 엄마도 급한 손길로 간단히 요기하고, 운동장 이모저모를 둘러보기 위해 황급히 자리를 떠납니다. 오후에는 여흥 프로그램과 각종 운동 경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보다 저희는 이날 프로그램에 참가한 분들 중 몇 분을 만나 인터뷰하고, 행사의 취지도 관계자들로부터 들어야 했기 때문에 급한 발길로 공원 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화장실에 먼저 들러야 한다는 아빠의 뜻에 따라 먼저 화장실로 향합니다.

제가 또 누굽니까. 오늘 같은 경우는 취재기자기도 하지만, 아빠의 단 하나뿐인 안내견 아니겠어요? 능숙한 솜씨로 아빠를 모시고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 소변기 앞까지 안내합니다.


이후 아빠를 이끌어 다시 밖으로 나오는데,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 학생들이 화장실 앞에 서서 웅성거리고 있습니다. 여자 화장실에 간 엄마를 기다리며 근처 벤치에 아빠를 앉히고 저도 그 앞에 다리를 뻗고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학생이 발로 제 발을 밟으려 다가옵니다. 화들짝 놀란 제가 땅바닥에 엎드려, 길게 뻗었던 두 발을 거두고 상체를 급히 일으켰습니다. 때마침 엄마가 나타나 그 학생의 행동을 제지합니다.

"가만 있는 애를 왜 밟으려 그러니?"

멋쩍은 듯 뒤로 물러서는 남학생 주변으로 친구로 보이는 여러 명의 학생들이 몰려듭니다. 어디서고 이런 폭력에 노출된 채, 저와 아빠는 늘 불안과 초조함 속에 보행을 하곤 합니다.

놀란 엄마의 비명으로 깜짝 놀란 아빠도 갑자기 경계 태세를 갖추며 남학생 쪽으로 시선을 던집니다. 황급히 다른 곳으로 이끄는 엄마의 안내로 우리는 다시 공원 내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원 내 수목원 앞에서 봉변 아닌 봉변을 당하고 맙니다.

안내견은 갈 수 있는 곳... 개라서 못 들어간다?

 슬기와 아빠

슬기와 아빠 ⓒ 김경식


"여기는 개를 데리고 입장할 수 없습니다."

경비로 보이는 70대 어르신께서 우리 앞을 가로막으며 돌아가라고 제지했습니다.

"이 개는 그냥 개가 아니라 안내견입니다. 수목원뿐만 아니라, 어디에도 들어갈 수 있어요."
"그건 모르겠고... 아무튼 여기는 안됩니다."
"안내견 입장을 막으면 법적으로 제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300만 원까지 벌금을 맞을 수도 있어요."
"그래요? 그럼 법적으로 해보셔야지 뭐..."

빈정거리는 듯한 어르신의 말씀에 아빠의 인내가 바닥을 드러냅니다.

"그럼 여기 책임자가 어디 있습니까?"

"저기 관리사무소로 가보시우..."

"어르신의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법적으로 허용된 안내견의 출입을 막으셨으니 문제 삼아야겠습니다."
"흥!"

일체 대꾸없이 돌아서는 어르신 앞에서 아빠가 언성을 높여 계속 묻습니다.

"어르신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그러나 묵묵부답인 수목원 출입구 앞에서 엄마가 황급히 아빠를 이끌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건물로 향했습니다.

"저 공원 관리 사무소가 어디인가요?"
"왜 그러시는데요?"

유아용 유모차를 빌려주고 관리하는 듯한 여직원이 묻습니다.

"안내견을 데리고 수목원에 입장하려는데, 못 들어가게 해서요."

아빠가 화가 난 표정으로 언성을 높여 항의합니다.

"법적으로 보장된 안내견의 출입을 시립공원에서 막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건 저쪽에 있는 관리사무소로 가셔서 말씀해보시죠."

쭈뼛거리며 대답하는 여직원을 향해 아빠가 또 몹시 화가 난 억양으로 말을 맺었습니다.

"전 꼭 이거 법적으로 문제 삼을 것입니다."

그런데 건물 밖으로 나온 엄마가 울그락불그락 화가 난 얼굴로 아빠 앞에 다가섭니다.

"당신 도대체 지각이 있는 사람이야? 그러고도 선생이라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어? 아까 말씀하신 분은 70대나 80대쯤 돼 보이는 어르신이야. 그분이 모르고 말씀을 그렇게 하실 수도 있지. 그렇다고 당신이 어르신에게 그렇게 언성을 높여가며 싸움박질하듯 덤벼들어도 되는 거야? 그리고 저 여직원은 유모차 관리 담당인 듯한데, 저 여직원에게 따지고 덤벼들어야 무슨 소용 있어?"

"어르신이라고 사람을 그렇게 깔보고 비아냥거려도 되는 거야? 법적으로 한 번 해보자고 하잖아. 게다가 관리사무소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옥신각신 열이 오른 음성으로 말싸움을 한창 하시던 엄마아빠는 다시 관리사무실을 찾아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한참을 걷고, 몇 번을 더 물어서야, 한 건물에 도달했습니다. 거기서 우리 사정을 말하고 관리사무소가 어디냐 물으니, 아래 층으로 가보랍니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갑니다. 엄마는 주춤거리는 발걸음으로 조심스레 직원에게 묻습니다.

"저, 여기가 공원 관리사무소인가요?"
"예. 무슨 일이신가요?"


40~50대로 보이는 남자 직원이 응대합니다. 그러자 아빠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안내견을 동반하고 수목원에 들어가려 했는데, 제지당했습니다. 안내견은 법적으로 보장된 시각장애인의 보조견입니다. 출입을 통제하시면 벌금을 부과 받는 등, 불이익 처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젊은 직원이 앞으로 나서며 말을 잇습니다.

"아, 그건 직원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제 책임입니다. 바로 시정 조치하겠습니다."


맥이 풀린듯, 아빠의 어조가 다소 수그러듭니다.

"그렇지요? 그럼 지금 바로 입장할 수 있게 전화 좀 해주시겠습니까?"

"그러죠... 지금 다시 가보세요."

왔던 길을 되돌아, 한참을 다시 걸어 수목원 앞에 닿았습니다. 문 앞에 나와있던 그 어르신 경비와 한 여직원이 나와 우리를 맞습니다.

"나는 여기 책임자도 아니고, 이 분이 책임자니 이 분하고 얘기 하시우..."

"미안합니다. 저희가 안내견에 대해 잘 몰라서..."


말끝을 흐리시는 여자분과 뒤로 빠져 책임을 모면하려는 경비의 태도 모두 눈에 거슬렸습니다. 아까 책임자를 찾을 땐 누구도 나와보지 않더니 말이죠. 게다가 어르신은 법적으로 해보자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나 몰라라 하며 뒷짐을 집니다. 엄마와 한바탕 설전으로 화가 한풀 꺾인 아빠가 경비에게 사과를 합니다.

"어르신 아까는 제가 죄송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한 남학생에게 제 안내견이 밟힐 뻔한 터라... 너무 화가 나서..."
"안에 들어가면 측백나무도 있으니 좋은 냄새 많이 맡으시고, 좋은 시간 갖으시우..."

그제서야 살았다는 듯, 덕담하는 경비가 곱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이곳저곳을 살피며 돌아다니려니, 아직도 화가 많이 나 있던 두 분이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며 돌연 발길을 돌려 밖으로 나갑니다.

"아빠 이러면 안 돼요. 오늘 사람들 인터뷰도 해야 하는데..."

묵묵부답. 견줄만 끌어 앞으로 향하는 아빠에게 무슨 말이 먹히겠습니까. 언제쯤 안내견 기자의 취재권과 보행권, 그리고 안내견으로서의 본분을 다 할 날이 올까요. 저기 공원에서는 TV 공개방송 녹화에 각종 운동 경기로 떠들썩한데... 제대로 취재 한 번 못 해보고 이렇게 돌아서야 한다니...

"슬기야 미안하다. 언제쯤 우리 슬기의 출입이 자유로울 날이 올까. 우리 슬기랑 더불어 행복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날이 올지... 10일, 다시 연안부두에 나가 사진도 찍으며 새롭게 취재해 보자. 응?"
"아빠는 그땐 그때고, 오늘은 약속된 인터뷰를 해야 하잖아요."
"슬기야, 미안해. 도저히 이런 기분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겠어. 너도 봤잖아, 그리고 당했고. 어쩌겠니... 오늘 취재는 10일에 다른 소재로 바꿔 다시 써보자. 응? 슬기야..."

하는 수 없이 아빠의 뜻에 따라 힘겨운 발길을 옮겨, 집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무거운 발길에 후두두 비애의 눈물이 떨어집니다.

"아이고. 피곤하고 참담한 이놈의 안내견 신세. 은퇴할 날도 멀지 않았는데... 우리 아빠는 나 없이 대체 어떻게 살아갈는지..."

한숨이 거푸 무거운 입술을 비집고 나옵니다.

"털 날리니... 다른 손님들이 싫어해요"

 연안부두에서 쉬고 있는 슬기

연안부두에서 쉬고 있는 슬기 ⓒ 김경식


지난 10일, 사진 멘토 선생님과 동료 시각장애인 사진작가 그리고 아빠와 저. 이렇게 여러 명이 장애인콜택시를 불러 연안부두로 향합니다. 그런데, 콜택시 기사님이 말씀하시네요.

"저는 개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석달 전 까지만해도 애완견을 키우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솔직히 이 개, 털이 너무 날리네요..."

아빠는 그저 아무 말 없이 한숨만 내쉽니다. 연안부두에 도착해, 몇 시간 동안 사진 촬영을 하는데, 저는 영 흥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까 그 기사님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한동안의 사진 촬영을 마치고 다시 장애인콜택시를 부르기 위해 아빠가 전화를 겁니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한동안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합니다.

"왜 그러세요?"

사진 멘토 선생님이 기다렸다는 듯 궁금해 묻습니다.

"안내견 털이 너무 날려 기사들 말이 많다네요."

풀 죽은 아빠의 대답에 멘토 선생님이 불끈 화를 냅니다.

"장애인택시가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을 갖고 털이 날린다느니, 다른 사람한테 해롭다느니 말을 하면 어쩌자는 거죠?
"그러게 말입니다."

잠시 후, 도착한 택시 기사님에게도 똑같은 이야기가 흘러 나옵니다.

"저번에도 한 번 태워드렸는데, 털이 많이 날려, 다른 승객들에게서 말이 좀 나오더라고요."
"네..."

아빠의 풀 죽은 대답이 제 부아를 돋구고,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합니다.

'아빠, 우리 그럼 항상 걸어 다녀야 하는 건가요? 우리는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고요...'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www.noulpoet.kr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 www.noulpoet.kr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안내견 #시각장애인 #사진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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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시인으로 10년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해바라기'동인으로 활동하고있으며 역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열심히 살아가고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아내와 더불어 지천명 이후의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탈시설만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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