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인상) 지불능력
임상훈
위 그림은 독일과 스웨덴 금속노조의 산별교섭 패러다임을 설명하기 위해 그려본 것이다. 이 그림에서 산별교섭에 참가 혹은 산별협약에 적용되는 기업들의 임금인상 지불능력은 최저 0%에서 최고 10%까지이다. 중간 수준의 임금인상 여력이 있는 기업은 다수인 반면 최저율과 최고율의 인상 지불능력을 가진 기업은 소수라고 가정한다.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독일과 스웨덴 금속노조는 공통적으로 연대임금의 쟁취라는 산별교섭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즉, 두 나라 모두 산별노조는 임금인상 여력이 높은 기업의 노동자와 임금인상 능력이 적은 기업의 노동자가 동일한 수준의 연대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연대임금 패러다임은 미국 산별노조가 산업 수준에서 임금을 표준화하여 노동자들이 개별 기업에 고용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임금을 낮추는 것을 막고자 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독일과 스웨덴 노조는 연대임금을 현실화하는 데 서로 다른 교섭전략을 취한다. 독일 금속노조는 임금인상 지불능력이 취약한 기업에 속한 노동자의 고용을 고려하여 낮은 수준의 임금인상에 합의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스웨덴의 금속노조는 산업의 경쟁력을 고려하여 한계 기업의 도산과 소속 노동자의 실업을 초래하는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한다.
이러한 산별교섭의 전략은 독일의 노조로 하여금 실업수당이 중심이 되는 복지제도를 구축하게 하는 반면 스웨덴의 노조는 높은 세금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중심이 되는 복지제도를 구축하게 한다.
위와 같이 독일과 스웨덴, 그리고 미국의 경우와 달리 한국에서 산별교섭 패러다임이나 그를 위한 교섭전략은 아직 분명하게 형성되고 있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인다.
먼저 독일처럼 임금인상 지불능력이 낮은 기업의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산업 수준에서 낮은 임금인상에 합의할 경우 임금인상 지불능력이 높은 기업의 노동자들이 강하게 저항하게 되는데, 한국의 산별노조가 이들 노동자들을 설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산별노조가 대체로 임금인상 지불능력이 높은 기업별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되면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쉽다. 한국 산별노조가 주축 부대인 이들을 설득하기란 매우 어렵다.
한편, 스웨덴처럼 한계 기업의 도산을 초래할 수 있는 임금인상을 요구하기도 어렵다. 한국의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기 때문에 한계 기업의 도산은 소속 노동자의 실업으로 이어져서 이들이 받을 고통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산별노조운동의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산별교섭의 패러다임의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기는 곤란하다. 산별교섭의 패러다임은 연대임금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교섭 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산별노동조합이 산업정책과 복지제도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세우는 것도 전제된다.
그런데 연대임금의 패러다임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교섭 전략과 산업정책 대안, 그리고 복지제도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회피할 수 없는 논쟁이 존재한다. 그것은 산별노조운동의 핵심세력으로 누구를 설정하여야 하는가이다. 현재처럼 대기업 노동자들이 계속 핵심세력으로 존재하면서 산별교섭의 패러다임과 교섭 전략, 그리고 산업정책과 복지제도 대안을 마련할 것인가? 아니면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마련할 것인가?
본인은 후자의 입장을 지지한다. 해외의 사례나 한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연대임금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집단은 대체로 중소기업 노동자/비정규직 노동자 보다는 임금지급 능력이 높은 대기업 소속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경우 대기업이 도급관계에서 누리는 원청의 지위나 상품시장에서 차지하는 독점적 지위를 고려할 때 대기업 소속 노동자들이 산업정책에서 혁신적인 대안을 세울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산별교섭의 패러다임으로 연대임금이 채택된다 하더라도 산별중앙교섭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산업/업종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교섭방식을 활용하면서 한국적 교섭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그리고 금융노조의 산별교섭을 지켜보면 이들 노조들이 상대하는 사용자들은 임금인상지불능력에 기초하여 볼 때 아래 그림처럼 몇 가지 집단으로 유형화된다.
금속산업의 경우 주로 업종과 도급관계를 중심으로 사용자들이 상위 지불능력 기업, 중위 지불능력 기업, 하위 지불능력기업 등으로 나뉜다. 또한, 보건의료산업의 경우 대학/비대학과 수도권/지역, 그리고 민간/공공 등을 중심으로 사용자들이 서로 다른 지불능력을 보인다. 한편, 금융산업의 경우 은행/비은행, 민간/공공 등을 중심으로 상위 지불능력 기업, 중위 지불능력 기업, 하위 지불능력기업 등으로 사용자들이 구분된다. 물론 산업에 따라 상위-중위-하위간 차이가 달리 나타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