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보이스오버'로 술렁이는 교실에 갔더니...

[안내견 슬기의 희망탐방] 시각장애인의 스마트폰 교육현장을 가다

등록 2012.06.18 12:00수정 2012.06.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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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빠 품에서 곤한 잠에 떨어진 슬기(아빠는 슬기를 마주보느라 얼굴은 옆모습이 잡혀있다)

아빠 품에서 곤한 잠에 떨어진 슬기(아빠는 슬기를 마주보느라 얼굴은 옆모습이 잡혀있다) ⓒ 김경식

안녕하세요? 김슬기 시민기자입니다. 오늘은 제가 여러분을 모시고 푸른 희망의 꽃이 피어나는 꿈의 현장, 새 삶의 역동적인 힘이 불끈 솟아나는 재활의 현장으로 카메라 기자인 아빠와 함께 안내해 가겠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희망프로젝트' 프로그램을 찾아가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립니다. 어둠과 절망의 현실을, 새 삶의 내일로 바꿔가고 있는 싱그러운 희망의 꽃들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먼저,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과의 원활한 소통을 꾀하고 있는 교육의 현장, IT서포터즈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오늘 저는 평일보다 더 수선하게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써 첫 취재를 나가는 날이라 몸도 마음도 부산하고 긴장이 되어, 자꾸 느슨해지려는 아빠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영광모바일 도서관'을 찾아가기 위해 전철을 몇 번씩이나 갈아타고 아현동역에 내립니다.  그리고 '영광모바일 도서관'을 향해 서대문구 아현동의 혼잡한 길을 걸으니, 좁은 차도와 인도가 구분 없이 이어져 우리의 발길을 더디게 합니다. 많은 사람이 걸어 다니고 있음에도 오토바이, 자전거, 자동차가 구분 없이 마구 달려 위험천만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 위험한 길을 어떻게 효과적인 안내로 아빠를 잘 모시고 갈까, 염려의 눈길로 사방을 휘둘러 봅니다.

그저 천천히 한발 한발 조심스레 걸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때, 아기를 태운 유모차가 그 좁고 위험한 길로 다가옵니다. 천천히 발길을 멈추고 지나가기를 기다리자니,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시는 아빠가 그저 견줄을 당겨 '앞으로'만을 크게 외치십니다.

"아빠 지금 아기를 태운 유모차가 우리 앞으로 오고 있단 말이에요."

침묵으로 외쳐대는 제 말을 이해할 길 없는 아빠가 다시금 큰 소리로 "슬기야 앞으로"를 외치십니다.


"아이고 이 답답한 가슴…."

잠시 후, 아기 엄마가 "미안합니다"며 우리 곁을 닿을 듯 스쳐 지납니다.


"잉? 이게 무슨 상황(situation)?"
"이그, 아빠는 모르시면 그저 이 슬기만 믿고 조용히 따라오시라고요."

좌우로 꼬리를 흔들어 아빠와 친숙한 몸동작 대화를 나눕니다. '영광모바일 도서관'으로 들어서는 골목길에 올라서자니, 숨결이 거칠어오고, 다리가 후둘거립니다.

"아빠, 이제 슬기도 정말 많이 늙었나 봐요. 예전에는 이 정도 경사는 거뜬하게 올라섰었는데…. 이젠 제법 숨이 차고 다리가 휘청이네요."

순간 아빠의 걸음이 멈추고, 안타까운 한숨이 새어나옵니다.

"슬기야! 많이 힘들어? 네가 벌써 지치면 안 되는데…. 너 없이 아빠가 어떻게 남은 세월을 살아가라고 벌써 지치고 난리니?"

축축하게 젖은 아빠 음성에 다시 네 다리를 힘껏 펴고, 꼬리를 흔들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합니다.

"아빠 염려 마세요. 슬기 아직은 건강해요. 아빠를 잘 모시고 다닐 수 있다니까요."

오래된 단독주택을 개량한 도서관 문을 열고 우리 부녀가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섭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반갑게 맞아주시는 도서관 직원들이 자못 정겹습니다. 아빠의 맹학교 고등부  후배이시기도 한 박광재 관장님이 반갑게 우리를 이끌고 교육실로 들어가십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오늘부터 배우시게 될 스마트폰 강의를 해 주실 KT IT서포터즈 최수정 선생님을 소개해 드릴게요."
"아! 안녕하세요?"

아빠가 엉거주춤하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합니다.

a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 최수정씨.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 최수정씨. ⓒ IT-supporters제공


"안녕하세요? 최수정입니다. 아직은 모든 교육생이 다 도착하지 않으셨으니, 잠시만 더 기다려주세요."
"그 사이 잠시, 간단히 인터뷰를 좀 할게요."
"그럼 그럴까요? 먼저 인사부터 드리죠. 저는 <오마이뉴스>에 세계 최초 안내견 기자, 김슬기입니다. 오늘 아빠를 따라 여기 온 것은 이곳에서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전맹 시각장애인들을 상대로 스마트폰 교육을 하신다기에, 의아한 마음 반, 궁금한 마음 반으로 달려왔습니다. 우선 먼저 자기소개부터 해주시고요, 다음으로 도대체 어떻게 '터치패드' 형식의 스마트폰을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다는 지 간단하게 설명을 좀 부탁할께요."

"예, 안녕하세요?  KT IT서포터즈 최수정입니다. 먼저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달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마트폰 중, 미국 '애플'사의 아이폰은 '보이스오버'라는 기능이 내장되어 있어, 손가락으로 터치할 때마다 모두 소리로 읽어 줍니다. 그러니까 일반 컴퓨터에서 '스크린리더'를 사용해, 시각장애인들이 인터넷이나 각종 프로그램들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지요. 그럼 우리 아빠 같은 전맹이신 시각장애인도 이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실 수 있다는 거네요?"

"물론이지요. 잠시 후, 어떻게 교육이 되는가를 한 번 지켜보시면 잘 아시게 될 겁니다."
"아, 그럼 스마트폰 중, 아이폰만 그런 '스크린리더'가 내장되어 있나요?"
"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 쯤 안드로이드기반의 스마트폰도 '스크린리더'가 개발이 되어, 시각장애인들이 스마트폰 선택의 기회가 더 많아졌답니다."

"도대체 스마트폰으로 시각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요?"
"우선, 사진도 찍을 수 있고요. 다음으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도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애플리케이션만 개발되어있다면, 대부분 무리 없이 접근할 수 있으시죠. 지하철 노선이나, 전국 전화번호,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메신저도 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길 가다가도 메신저나 카톡 등도 능히 사용할 수 있으시겠네요."
"물론이지요. 그 뿐이 아니고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으며, 원하는 방송도 팟캐스트를 통해 청취 가능하답니다."
"와! 그래요? 그럼 못하는 게 거의 없겠네요."
"그런 셈이지요."

잠시 그렇게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이, 한두 분 교육생이 교육실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이내 교육이 시작됩니다.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아이폰의 '보이스오버' 소리로 작은 교육실 안이 온통 술렁거립니다. 문자를 보내시는 분, 전화를 걸어보시는 분, 아빠는 사진에 제일 관심이 많아서 연속으로 사진만 찍고 계십니다. 그러나 역시 글자를 하나 하나 더듬어 문자를 쓰거나, 글을 쓰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닌가 봅니다.

"최수정 선생님, 제가 옆에서 보기에 탐색하는 건 잘하시는 것들 같은데, 역시 글씨를 쓰거나, 숫자를 찾아 입력하는 건 쉽지 않네요."
"예! 아직은 그렇지요. 그래서 '보이스오버' 제스처 기능을 반복적으로 연습을 많이 하셔야 더 스마트하게 사용할 수가 있답니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용 '보조키패드'도 나와 있어 시각장애인의 스마트폰 사용을 원활하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와! 그렇군요~"

"그럼 이 스마트폰 교육은 이곳에서만 실시하나요?"
"네. 현재,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과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도 진행하고 있고요, 시각장애인 5명 이상 교육이 필요하다고 요청해주시면 전국 23개 팀이 있는 KT IT서포터즈가 찾아가서 스마트폰 교육을 할 수 있답니다."
"그렇군요."

"끝으로 이 교육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서로의 절망과 아픔을 씻어갈 수 있도록 이 신문을 보시는 전국의 애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겠어요?"
"그건 저보다, 김 기자님 아버님이 써 주신 시 한 수가 더욱 절실한 마음을 대변해 주실 거예요. 한 번 아버님께 부탁해서 시 낭송을 들어볼까요?
"아빠!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모두가 원하시면 그렇게 하지요. 뭐…."

a  아이폰과 모비언스 키보드

아이폰과 모비언스 키보드 ⓒ 김경식


조용한 좌중을 바라보며, 아빠가 점자 컴퓨터인 '한소네'를 꺼내어 시를 찾아 낭송합니다. 

희망 바자회

노 을
어둠의 벌판에서 눈물의 거름으로 자라난 인생들이
하나 둘 희망을 찾아 영광의 마당으로 모여든다.
절망의 가시밭에서 설움을 거름 삼아 피어난 인생들이
새삶의 빛을 찾아 희망의 보금자리로 모여든다.

음주 운전 사고로 건축사의 화려한 젊음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던 초로의 신사가
아이폰을 들고
지나온 청춘의 희망을 충전한다.
시청각장애로도 막지 못한 황혼의 학구열이
아이폰 카메라의 사진으로
싱싱한 아름다움으로 활짝 피어난다.

새로이 접어든 암흑길에서
막연한 초조감으로 서성이던 불안한 젊음이
아이폰 화면에서 행복을 클릭하고
운명의 고행길에서 우연히 찾아든 낯선 나그네도
아이폰과 함께하는 감격에 젖어
희망을 노래한다.

아이폰
그대가 있어 우리는 행복의 나래를 펼쳐
오늘을 노래합니다.
IT supporters
그대들이 준 사랑으로
우리는 희망의 전령이 되어 내일로 걸어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홈피 www.noulpoet.kr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홈피 www.noulpoet.kr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안내견 #희망 #시각장애인 #스마트폰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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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시인으로 10년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해바라기'동인으로 활동하고있으며 역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열심히 살아가고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아내와 더불어 지천명 이후의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탈시설만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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