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녀석들' 알아서 믿어준 디도스 특검

[取중眞담] 범행동기-청와대 개입의혹 모두 '개인관계' 결론

등록 2012.06.21 21:46수정 2012.06.2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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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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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발생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거부) 공격 사건을 수사한 '디도스 특검' 박태석 특별검사가 21일 역삼동 특검 사무실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발생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거부) 공격 사건을 수사한 '디도스 특검' 박태석 특별검사가 21일 역삼동 특검 사무실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거부) 특검이 시작했을 때 핵심단어는 '윗선'이었다. '과연?'이라는 꼬리표가 붙긴 했지만 일말의 기대가 있긴 했다. 박태석 특별검사는 수사착수 일성으로 "국민의 물음표를 해소하겠다"며 자신만만했고, 10명의 현역 파견검사와 100여 명의 경찰관이 투입된 대규모 수사팀이 구성됐으니 그럴 만 했다.

 

하지만 21일 발표된 수사결과는 물음표를 지우지도 느낌표로 바꾸지도 못했다. 특검 수사 이전부터 논란이 됐던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사건 개입 의혹은 최구식 전 새누리당 의원과의 친분 때문인 것으로 일단락됐고, 최 전 의원의 개입 여부도 본인의 진술과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간단하게 무혐의로 결론 내렸다.

 

문제는 '무혐의 내사종결'의 근거가 객관적 사실이 아닌 대부분 특검의 '판단'이라는 점이다. 특검팀은 최 전 의원의 개입 의혹에 대해 "진주 지역 의원이라 서울시장 선거와 이해관계가 없다", "한나라당 홍보위원장이지 나경원 캠프 홍보위원장은 아니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나 후보를 위해 범행을 지시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단순 지자체장을 뽑는 것 이상의 의미로 평가되던 선거에서 공당의 주요직책에 있는 인물이 '이해관계'가 없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오세훈 전 시장의 후임 선출을 넘어 '정권 안정론'과 '심판론'이 격돌한 선거였다. 그밖에 특검이 제시한 무혐의 근거는 통화기록을 바탕으로 한 최 전 의원의 동선, 본인 이름으로 된 금전거래 정도뿐이다.

 

김 전 수석이 중요한 수사정보를 최 전 의원에게 넘긴 것도 "언론사 재직 시절 친분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최고위 공직자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수사 비밀을 누설 할 정도로 대단한 '친분'이라는 것이다. 결국 디도스 특검의 핵심 키워드였던 '윗선'은 사라지고 친구 사이의 '의리'만 남은 꼴이 됐다.

 

그들은 '비열한 관계'... 알 수 없는 믿음의 근원은?

 

개인 친분 관계는 디도스 공격의 주역들에게서도 주요하게 등장한다. 최초 범행을 구상했다는 최 전 의원의 비서 공아무개, 그와 함께 디도스 공격을 결정한 김아무개 전 국회의장 비서, 이들의 사주를 받고 직접 해킹에 나선 K업체 대표 강아무개. '윗선'이 없다보니 이들의 범행동기도 소설처럼 엮인다.

 

결과적으로 특검이 밝힌 이들의 범행동기는 검찰 수사에서 반발짝도 못 나갔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사람이 뒤에 있다"는 공씨의 발언은 강씨가 "잘못 들었을 수 있다"고 진술해 단순 공갈로 끝났다. 당시 박희태 국회의장 전 비서 김씨가 나경원 전 의원 보좌관들과 통화한 내역을 삭제한 것도 "의전 일정을 논의 한 통화", "오해가 될까 삭제했다"는 진술을 특검은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이런 판단 아래 특검팀은 "김씨와 공씨가 도박 사이트 운영으로 큰 돈을 번 고향친구 강씨의 이야기를 듣고 참여하고 싶은 욕심에 온라인 도박 합법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며 "이들은 정치권에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었고, 강씨는 이들을 이용해 불법사이트 인허가를 받고 더 큰 돈을 벌고자 한 것"이라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순수'했던 최 전 의원과 김 전 청와대 수석의 관계와 비교하면 이익을 쫓는 이들의 관계가 조금은 비열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들도 서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사건을 벌였다는 것이다. 김씨와 공씨는 '강씨의 기술이면 절대 걸리지 않는다'는 믿음, 강씨는 이들이 '정치권에 영향력 있는 대단한 녀석'이라는 믿음을 가졌다는 게 특검팀의 발표다.

 

특검팀 발표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기 때문이다. 대체 디도스 해킹으로 어떤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는가? 보여줄 수 있다 치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나? 그것도 아니라면 왜 실패한 이후에도 이들 사이에 9000만 원이라는 금전거래가 이뤄졌나? 이러한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선관위 디도스 공격'과 '온라인 도박 사이트 합법화' 사이에 연결할 수 없는 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특검팀은 "본인들 말로는 나경원 후보 측에 얘기해서 정치적 배려를 받고 싶었다는 진술도 있다"며 "결과적으로 나 후보가 선거에 패배했기 때문에 이들의 목표가 이뤄지지 않아 사실을 어디도 알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정말 윗선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범행 동기가 설득력 있게 제시돼야 한다. 이 답변으로 앞선 물음표들을 없애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선 경선 앞둔 정치권... "국정조사만이 답"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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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발생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거부) 공격 사건을 수사한 '디도스 특검' 박태석 특별검사가 21일 오전 역삼동 특검 사무실에서 수사결과 발표문 50페이지를 1시간에 걸쳐 모두 낭독한 뒤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 권우성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발생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거부) 공격 사건을 수사한 '디도스 특검' 박태석 특별검사가 21일 오전 역삼동 특검 사무실에서 수사결과 발표문 50페이지를 1시간에 걸쳐 모두 낭독한 뒤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 권우성

특검팀의 수사발표 이후 야권의 '국정조사' 요구가 거세다. 민주통합당 '4·11 부정선거 및 디도스 사건 조사 소위'는 특검팀 발표 직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려했던 것처럼 꼬리자르기식 수사의 연장선일 뿐"이라며 "피고인들과 지인 등 관련자들로부터 윗선 개입 정황에 관한 추가 진술이 나왔음에도 술김에 저지른 우발적 범죄로 이번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최구식 전 의원에게 수사 상황을 귀띔해 준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불구속기소한 것이 100여 명의 수사 인력과 수십 억 원을 들인 특검의 낯 뜨거운 유일한 성과"라며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기를 문란하게 한 사건이 특검을 통해 제대로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이제 국민은 국정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가 나서는 국정조사가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여야 모두 대선후보 경선을 앞둔 상황에서 얼마나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설령 된다고 해도 이미 사건 관련자들이 모든 사안에 입을 맞출 충분한 시간이 있었고 증거 보존도 불확실하다. "국정조사만이 답"이라는 말에 느낌표를 붙이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해 연말 정국을 뒤흔들었던 디도스 사태는 경찰과 검찰을 지나 특검의 손까지 거쳤지만 여전히 물음표 투성이다. 과연 국정조사까지 진행돼 인물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를 넘어선 실체를 밝힐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디도스 #특검 #새누리당 #최구식 #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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