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계곡에서. 왼쪽 부터 남편, 금강산 해설원 전은심, 필자, 여성 안내원 설경이, 남성 안내원 리만룡.
신은미
마음은 훨훨 날아오르고 싶으나 나이가 잘 따라주지 않는가 보다. 금강산에 들어가는데, 힘들어하는 기색이 우리 두 부부 얼굴에서 나타난 모양이다. 설경이는 팔짱을 끼며 부축해주고, 금강산 해설원 소녀는 남편을 부축한다. 오랜만에 팔짱을 껴 본다. 다정함이 느껴진다.
설경이와 나는 금강산을 내려오는 내내 팔짱을 낀 채로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남자친구와의 결혼 준비 이야기, 그리고 우리 아이들 이야기와 설경이네 부모님 이야기... 그중에서도 영어가 전공이었던 설경이가 대학수업 시간에 본 영화 <타이타닉> 이야기는 우리 둘 모두를 영화 속에 다시 한 번 흠뻑 빠져들게 했다. 덕분에 힘들 새 없이 하산했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가만 있어봐... 여기가 북한인데, 이 아이가 <타이타닉>을 봤다고?' 내가 깜짝 놀라 "그 영화를 어디서 봤다고? 수업시간에 봤다고?"라고 묻자 설경이가 답했다.
"네. 영어시간에 그 영화를 교재로 썼습네다. 그런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습네다." 그렇다. 설경이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며 하산하는 동안 나는 여기가 북한이라는 것과 설경이가 북한사람이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설경이와 <타이타닉> 영화 얘기를 하면서도 산을 거의 다 내려와서야 '이 아이가 어떻게 그 영화를 볼 수 있었단 말인가'라고 의아해하며 제정신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금강산의 아름다움보다, 지금 내 눈은 남편을 부축하며 함께 걸어가던 현지 해설원의 모습, 그리고 내 머릿속은 방금 설경이와의 나눴던 정담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남쪽의 산들과 마찬가지로 산 밑에는 시원한 음료수들과 고소한 지짐이가 갈증과 허기진 배를 채우고 가라고 유혹한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목란관'이라는 식당에서 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고소한 냄새를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전식이라고 위로하면서 먹고 가도 되겠다는 정당성을 마련했다. 산행 후 맛본 대동강 맥주와 녹두 지짐이는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순식간에 달려든 아가씨들... "사진 찍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