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 꼭 이뤄져야

민주주의 근간 훼손한 사건... 정치적 흥정 대상 아니다

등록 2012.06.28 21:24수정 2012.06.2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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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이 4월 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민간인불법사찰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촉구 각계 인사 시국선언'에 참석하고 있다.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이 4월 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민간인불법사찰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촉구 각계 인사 시국선언'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제19대 국회 개원이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 문제로 표류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낀다. 물론 그 비애는 단순하지 않다. 분노와 자괴를 포함한 아주 복잡하고 미묘하다.

지난 6월 13일 검찰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재수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검찰의 이 발표에 "원숭이에게 맡겨도 이보다 잘 할 것이다"라는 비난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제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이 한낱 정치권의 거래 대상으로 전락한 것 같아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

나는 많은 고민 끝에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공론의 장으로 가지고 나왔다. 그러자 30년 전 미국에서 일어났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거론하는 사람이 많았다. 두 사건을 잉태하게 만든 권력의 사유화, 사유화된 권력에 충성하는 것이 마치 국가에 충성하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자들의 심리, 사건 은폐를 기도한 국가권력의 행태, 사건의 의미를 희석시키기 위해 저지른 비열한 행위 등이 서로 빼다 박았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의 수사와 재수사를 거치면서 헌정 질서의 파괴라는 측면에서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견줄 수 없을 만큼 민주주의의 가치 훼손이 심각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이런 지적은,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미국 언론이 보인 집요한 사건 추적, 자신이 임명한 특별검사의 날카로운 수사를 못마땅하게 여긴 닉슨이 특별검사를 해임하고 새로운 검사를 임명했지만 그가 닉슨의 두 번에 걸친 면담 요구도 거절하고 범법 행위를 날카롭게 추궁한 검사의 수사 태도, 사법부의 엄정한 판결, 게다가 의회에서 중계되는 TV를 시청한 미국 국민의 정치제도와 민주주의 가치에 반성적 성찰과 같은 모습을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나는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의 피해자로서 이 사건의 국정조사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정조사를 통해 현재 정치권력과 검찰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의 진실 규명은 책임 소재의 규명과 행위자의 징벌 문제는 물론이고 파괴된 민주주의 가치와 인권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라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를 테면, 내가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공론의 장으로 가지고 나오기 전에 국무총리실의 불법행위를 국무총리실은 물론이고 청와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헌법재판소, 서울경찰청, 동작경찰서 등이 인지하고 있었다.


국정조사는 이 기관에 종사하는 공직자들이 왜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을 인지하고도 피해자 구제 조치는 말할 것도 없고 사실을 바로 잡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성찰과 자기 고백, 반성을 통하여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진일보시키는 생산적인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당사자로 실형을 언도받았거나 실형은 아니더라도 형벌의 징치를 받은 이들 또한 고백과 반성을 통해 새로운 삶을 열어나갈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어야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미국에서 20세기 민주주의 이정표로 불리는 것은 단지 거짓말을 일삼는 닉슨 대통령을 사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2년여에 걸쳐 워터게이트를 둘러싸고 일어난 콕스 특별검사 파면에 항의한 리처드슨 법무장관의 사임, 의회에서 의원들이 정파에 관계없이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소신에 따라 행한 탄핵 표결, 닉슨이 임명한 4명의 대법관이 포함된 9명의 대법원 판사가 닉슨 대통령이 제출을 거부한 녹음테이프 64개 제출을 8대 0이라는(한 명의 판사는 법무장관과 절친한 사이라며 재판 회피) 만장일치로 판결하는 등 민주주의가 정의와 법을 어떻게 구현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 공적 기구의 너무도 당연한 자기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청문회를 지켜보며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결국 닉슨의 거짓말과 부패를 낳았고 미국을 도덕적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성찰과 자기반성을 하게 된 각성된 시민들은 닉슨에 이어 대통령이 된 포드가 닉슨을 사면하자 포드의 탄핵을 요구하며 대중시위에 나서 여론의 방향을 형성하기도 했다. 이처럼 민주주의 대한 미국 국민의 확고부동한 신념은 닉슨의 보좌관으로 反닉슨 명단까지 만들어 권력의 사유화에 앞장서서 닉슨에게 맹목적 충성을 바치며 백악관을 권력 남용의 진창으로 만들었던 할데만과 콜슨으로 하여금 "나는 닉슨의 개였다", "우리는 법위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라는 고백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며 당당하게 거짓말을 거듭하였던 닉슨은 권력의 사유화로 통제가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자신이 임명한 특별검사의 수사 의지, 자신에게 우호적인 법관이 과반수를 차지하였던 연방대법원의 판결, 충성스러운 보좌관들의 자기 고백 등에 의해 사임이라는 치욕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닉슨의 거짓말을 폭로한 중요하고 결정적인 증언들은 상원 청문회에서 나왔다. 살아있는 권력인 대통령의 이해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진실)을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에서 명백한 증거가 존재하는 사건에서조차 사실(진실)을 외면하는 엉뚱한 증언과 상식에 벗어난 검찰의 행태를 여러 번 목격했다. 그러나 생방송이 진행되고 그것을 지켜보는 국민의 관심과 지지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까.

아무리 정파의 이해에 매몰된 인간일지라도 국민이 지켜보는 장에서 정파의 이해에 따라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다루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도 언론이 있고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있기 때문에 정파의 쟁점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의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을까.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이 반드시 국정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당위성은 이런 점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치 워터게이트 사건이 청문회라는 생생한 현장 중계로 사실(진실)에 접근할 수 있었듯이.

만약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의 국정조사가 무산된다면 당대의 우리는 후대로부터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한 걸음 진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중요한 사안이 한낱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한 꼴을 보고 있노라니 나는 한국 사회의 천박한 민낯을 보는 것 같아 분만한 심사를 가눌 길 없다.
#김종익 #불법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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