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소녀' 살해사건, 5년 복역 출소 앞두고 재심

CCTV 확인해보니...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증거' 발견돼 재심 결정

등록 2012.06.30 15:20수정 2012.06.30 15:20
0
원고료로 응원
'수원역 노숙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5년이 확정돼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J(33)씨에 대해 대법원이 '재심'을 결정했다. 이로써 오는 8월 J씨의 만기출소를 앞두고 사건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특히 상해치사 범행을 저질렀다는 범행시각의 범행장소(고등학교)에 J씨는 노숙생활을 하던 수원역에 있었던 것으로 CCTV에 확인돼 무죄 판결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게다가 J씨가 범행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J씨의 범행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이 CCTV 촬영영상이 J씨의 사건이 아닌 공범 무죄 사건에서 제시돼  '재심'에 이르게 된 것은 어쩐지 씁쓸하다.

과학수사를 강조하는 수사기관(경찰, 검찰)이나, 공판중심주의 실현을 강조하는 법원이 공판과정에서 J씨가 요청한 CCTV를 확인했다면 사건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이 난다면 수사기관은 부실수사, 법원은 부실재판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J씨는 항소심 선고 이후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징역 5년형이 확정됐다. 살인(상해치사) 범행을 전면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J씨가 본인으로선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아보지 않은 이유가 더 이상 검찰과 법원을 믿지 못해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사뭇 궁금해 진다. 사법불신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이번 사건에 대해 검찰과 법원의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 사건 개요= 2007년 5월14일 새벽 5시30분경 수원의 한 고등학교 본관 입구 통로 화단에서 수원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K(당시 15세)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수원역에서 노숙하던 J씨와 G씨가 이날 새벽 2시께 수원역 2층 대합실 밖 에스컬레이터에서 만난 K양을 평소 절도범으로 의심하던 노숙녀 A(여)씨로 착각하고, 수원의 한 고등학교에 끌고 가 2만 원을 훔친 것에 대해 추궁하다가 화가 나 얼굴과 온몸을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며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고도 근시가 있는 J씨가 어두운 밤길에 안경을 쓰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 1층으로 내려가던 중 2층으로 올라오던 K양이 A씨와 비슷한 색(노란색)의 옷을 입고 있어 착각했다는 것이다.


1심인 수원지법 제11형사부는 2007년 8월 J씨의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하고, 상해치사죄를 인정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J씨는 처음에 범행을 부인했으나 나중에 "검사님의 인간적인 설득으로 저의 양심이 더 이상 거짓을 허락하지 않아 사실대로 진술하게 됐다"고 범행을 자백했다. 또 검찰에서는 "피해자(K양)를 구타 중에 A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나 신고 되는 것이 두려워 때려죽이게 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으나, 법정에서는 살인의 범의에 대해 부인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다른 노숙인들이 구타현장을 목격했음에도 피해자가 사망한 이후 사체를 숨기는 등 범행은폐를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단지 범행현장을 황급히 빠져나와 원래의 노숙장소인 수원역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피해자를 살해한 자가 취할 수 있는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에게 구타 도중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가 생겼다면 흉기를 사용하거나 목을 조르는 등 좀 더 적극적인 수단을 택했어야 하나, 피고인은 당초 주먹과 발을 이용한 구타행위만을 계속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로 피해자가 상당한 정도의 상해를 입을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었더라도, 피해자를 살해하려는 확정적 또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살인의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해야 하나, 상해치사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살인에 대해)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J씨 "허위 자백한 것" 항소→ 항소심 "징역 5년" 감형

그런데 J씨는 "수사기관은 물론 원심법정에서도 상해치사 범행을 자백했으나, 경찰에서는 형사의 폭행과 강압수사에 의해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거짓으로 진술했고, 검찰에서도 강제적인 수사가 이루어졌으며, 원심법정에서는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서 사실대로 진술을 하지 못했다"며 "실제로 사건 당일 피해자를 때린 적이 없고, 범행 장소인 고등학교에도 간 적이 없음에도 수사기관과 원심법정에서 허위로 범행을 자백한 것"이라고 범행을 전면 부인하며 항소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제6형사부는 2007년 12월 "피고인의 수사기관 및 원심법정에서의 자백은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다만 "절도 여부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상해치사의 범행이 발생했고, 그 결과도 당초 의도했던 것은 아닌 점 등에서 1심 형량은 지나치게 무겁다"며 J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에서의 피고인의 자백 진술, 또 피고인은 범행현장에서 범행과정을 재연하기도 했던 점, 검찰에서 처음 피의자신문을 받을 당시 당초 범행을 부인하다가 곧 범행을 자백하면서 범행을 부인했던 이유에 대해 '겁이 나서 부인했다'고 답변했고, 2회 피의자신문에서는 범행을 모두 자백했으며, 원심재판부에 범행을 시인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내용의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했던 점, 피고인이 막연히 경찰에서 폭행을 당하는 등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주장할 뿐 구체적인 내용이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점 등에 비춰 보면 피고인의 자백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계속 살인을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무죄로 판단하며 상해치사죄를 인정했다. 이후 J씨가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징역 5년형이 확정됐다.

J씨 CCTV 확인 안한 검찰과 법원, 공범사건에서는 CCTV 확인되며 반전

그런데 검찰은 2008년 1월 K양의 상해치사 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통해 당시 18세였던 A씨 등 4명을 추가로 재판에 넘기며 반전이 일어났다. 검찰은 가출 청소년이었던 A씨 등 4명이 사건 당일 수원역에서 노숙하던 K양이 자신들의 돈 2만원을 훔쳐간 것으로 생각해 수원의 한 고등학교로 끌고 가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며 기소했다.

한편 J씨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당시 노숙하던 수원역에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수원역 내 무인카메라(CCTV) 녹화영상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검찰조사 과정이나 재판 공판절차에서 그에 관한 심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가 J씨의 항소심 판결이 확정된 후, 추가 기소된 가출 청소년들의 상해치사 사건 1심에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수원역 내에 설치된 여러 대의 무인카메라를 녹화영상을 확인했는데 범행과 관계없는 J씨의 모습을 봤을 뿐, J씨 일행이 K양을 만나거나 밖으로 끌고 가는 모습 등 범행과 관련한 특이사항은 전혀 발견되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며 반전이 일어났다. 이들 가출 청소년들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2010년 7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 역시 첫 검찰조사에서 범행을 부인하다가 나중에는 모두 범행을 자백했다. 이 사건은 J씨의 경우에서도 그랬듯이 뚜렷한 물증은 없고 범행을 부인하던 이들이 뒤늦게 한 자백만이 있어 수사기관의 회유와 강압수사 논란을 불러왔다.

한편, 검찰은 J씨가 법정에서 자백을 번복하는 허위 진술을 했다며 위증 혐의로 다시 기소했으나 대법원 제3부(주심 박일환 대법관)는 지난 14일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무죄 주장하며 재심 청구했으나, 서울고법 기각

이에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J씨는 이들의 진술 번복에 따른 무죄와 CCTV 등을 근거로 다시 무죄를 주장하며 재심을 청구했다.

J씨는 "초동수사를 담당한 경찰이 피고인이 노숙했던 장소이자 피해자를 만났던 수원역사 무인카메라를 확인하고도 이에 대해 침묵하다가 공범(가출 청소년) 사건의 재판과정에서 이를 확인했음을 새로 인정했고, 항소심 공판절차에서 범행장소(고등학교) 인근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피고인의 모습이 촬영되지 않았다는 점이 심리되지 않았으므로 경찰의 진술 및 영상물 확인결과는 재심대상(항소심) 판결의 소송절차에서 제출할 수 없었던 '새로운 증거'로서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제9형사부는 2011년 6월 "범행시각 무렵에 피고인이 범행장소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발견했음에도 수사관이 이를 숨기고 있다는 사정이 보이는 않고, 재심대상사건의 수사 또는 공판과정에서 범행장소(고등학교), 수원역 인근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을 확인하지 않았다거나 또는 그 영상에 피고인의 모습이 없다는 주장은 단지 수사 또는 심리의 미진을 지적하거나 진술증거의 증명력을 다투는 취지일 뿐이므로, 담당형사의 진술은 '새로운 증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재심청구를 기각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새로운 '명백한 증거' 있음에도 재심 받아들이지 않은 건 위법"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상해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는 J씨가 신청한 재심 기각결정에 대한 재항고(2011모1112)를 받아들여,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재심대상(항소심) 판결에서 J씨가 상해치사 범행을 저질렀다는 증거로는 오로지 J씨의 종전 자백진술과 이에 부합하는 공범 G씨의 진술만이 채택됐을 뿐이었는데, J씨와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는 공범(가출 청소년)들이 종전 진술을 바꿔 무죄를 선고받아 실제로는 상해치사 범행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J씨의 종전 자백 진술대로라면 수원역 내 무인카메라 녹화영상에 상해치사 범행과 관련된 J씨의 모습이 나타나야 함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관계에 비춰 추정되는 K양의 사망시각도 J씨의 종전 자백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는 재심대상판결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는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되는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재심대상(항소심) 판결에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에 정한 재심사유가 있음에도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이런 증거들이 '새로 발견된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해 재심청구를 기각하고 말았다"며 "이런 원심의 판단은 재심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재판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이를 지적하는 재항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으므로, 원심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도록 하기 위해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노숙소녀 #재심 #수원역 #상해치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게 뭔 일이래유"... 온 동네 주민들 깜짝 놀란 이유
  2. 2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3. 3 팔봉산 안전데크에 텐트 친 관광객... "제발 이러지 말자"
  4. 4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5. 5 공영주차장 캠핑 금지... 캠핑족, "단순 차박금지는 지나쳐" 반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