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써본 '인색함', 사람 냄새 나는 사진전

제2회 Team-P 사진전에 다녀와서

등록 2012.07.01 20:27수정 2012.07.01 21:12
0
원고료로 응원
a

제2회 Team-P 사진전 초청장 앞면 '"우리가 써본" 인색함'이란 주제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 이명재


나는 '인색'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재물을 필요 이상으로 아끼는 것은 사람을 작게 만든다. 이것은 자주 소설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찰스 디킨슨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 영감이나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에 나오는 탐욕스런 전당포 노파 따위가 그런 사람들이다. 이것은 꼭 소설 속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도 흔하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한없이 풍성하되 이웃을 위해서는 턱없이 인색한 사람들.

지방 중소 도시인 우리 김천에서 한 사진전이 열렸다. 6월 28일부터 7월 1일까지니까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난 지난 금요일(6월 29일) 사진전을 관람했지만 오늘 다시 한 번 더 전시장을 다녀왔다. 타이틀이 좀 튀는 느낌이다. '"우리가 써본" 인색함'이라니. 사진은 시각 예술의 영역에 속하고 눈으로 완상해야 하는 것이니만큼 여기서의 '인색'은 수전노를 연상하게 하는 단어 인색(吝嗇)은 아닐 터이다. 정확히 잡히지는 않지만 어딘지 색(色)과 연결될 성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초청장의 글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우리가 써본 인색(人色)함"
사람, 사람 냄새가 나는 사진전입니다.

김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사진작가들이 함께 힘을 모아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사진전을 기획했습니다.

가끔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색(色)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러고 성격이나 기분들을 색(色)을 빌어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색(人色)을 소재로 한 인물 사진전을 열게 되었습니다.

개성 있는 젊은 김천의 사진작가들은 어떤 사람의 색(人色)을
사진에 담아내고 있는지 이번 사진전을 통해 확인해 주세요.

- Team-P 일동 - 


그렇다. 사진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젊은 작가들이 지방에 사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 냄새를 피우고 싶었던 거다. 나는 이번 사진전이 여느 사진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면 두 번이나 찾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산업화 사회를 지나 고도의 정보화 사회에 접어든 현실에서 삶의 정답이 첨단 과학이 아니고, 물질이 아니고, 그것으로 인한 편리함에서 찾지 않고 사람에게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키 워드가 '인색(人色)함'인 것 같다. 정물을 쉽게 앵글에 담아 인화해서 전시한 사진들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을 금세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전시회 첫 관람을 하는 날 입구에 놓여 있는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겼다.

"마음의 인색(吝嗇)함이 아닌 색(色)을 찍어(印) 사진으로 모은 인색(印色)함. 제2회 Team-P 사진전을 축하합니다."

그게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최 측이 내 세운 '인색(人色)'이 소재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나는 작품에 접근해 가는 기능 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니까. 참가 작가들로 보나 작품의 규모로 보나 또 전시 면적으로 보나 전시관의 위상을 따져 볼 때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사진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축하 꽃을 보내 주어 입구에 도열되어 있었고, 또 더 많은 사람들이 축전을 보내 전시회를 축하해 준 것만 봐도 도외시해서는 안 될 사진 전시회임이 분명하다.

8명의 전시 초대 작가는 나름대로 각자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인물을 공통 주제로 설정하고 작품을 만들었으면서도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철학은 각양각색이었다. 그것을 일일이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작가들이 시대의 아픔을 공통으로 느끼고 있고 그 아픔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한 점이다. 시대와 동떨어진 예술 작품은 한 수 접고 다가가는 나에게 중소도시 김천에서 이런 의식 있는 사진전이 열린다는 것은 여간한 사건이 아니다.

오태환은 '눈물'이란 제목으로 작품을 출품했다. 잔뜩 쌓인 폐자재를 배경으로 한 사람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요즘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눈물을 뜻하는 한글 모음 'ㅜㅜ'를 굵고 짙게 찍은 사각 판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는 모습에서 환경오염으로 병들어 가는 지구에 대한 슬픈 심상을 드러내 주고 있었다. 편리라는 이름의 문화가 우리 당대에는 역기능이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후손을 생각할 때 여간 큰 고통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어서 등장인물은 슬픈 것이다. 관람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김현욱은 '동료'라는 제목으로 6명의 외국인을 소재로 작품을 출품했다. 소개 글이 따뜻했다. 이렇게 되어 있었다. "저와 함께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들입니다. 얼굴색이 다른 외국인들을 만난다면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마시고 , 따뜻한 눈인사와 미소를 보내 주십시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의 수가 50만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여러 가지 차별 대우로 사회 문제를 야기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을 우리의 이웃, 나의 친구로 생각한다면 이런 인권 유린성 불공정 대우로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과거 우리가 유럽과 미국 등지에 가서 일할 때 받은 불공평한 처우를 생각한다면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배려하며 애정을 갖고 대할 수 있을 것으로 작가는 믿고 있다.

a

작가와 함께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그의 선한 눈길이 마음과 마음을 통하게 만드는 것 같다. ⓒ 이명재


윤용원의 '큐브'는 사진을 그림처럼 입체화한 작품이다. 사진의 '큐비즘'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실험적 작품이어서 보는 이의 눈을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인물의 얼굴을 토막 내어 입체성을 최대한 살린 작품이다. 그렇다 보니 눈의 방향과 귀의 위치 그리고 코의 높낮이, 머리 결이 따로따로여서 좀 흉물스런 몰골을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에 볼 수 있었던 교묘한 입체성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파블로 피카소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미술에서의 큐비즘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예술가이다. 사진에서도 이런 조류가 감지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Team-P의 지도 강사이기도 한 김현옥의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나는 처음 모델뿐만 아니라 사진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작품들을 보고 유명한 대가의 작품을 잠깐 빌려 온 것으로 착각했다. 옆에서 전시 사진들에 대해 간단 간단 설명해 주던 김현옥은 그의 작품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놀라움을 표하는 나에게 '저도 이 정도의 실력은 됩니다!'라며 웃었다. 그가 운영하는 카페에 드나드는 외국인 손님들을 모델로 찍은 작품이었는데, 어느 잡지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사람의 눈을 사로잡았다. 사진에 대해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a

최헌종의 '보이지 않는 독 "FTA"' 낫 등 농기구밖에는 더 이상 우리의 무기도 없고 물러설 곳도 없다는 듯이 방독면을 한 전라의 남성이 서 있는 모습이 처연하기만 하다. ⓒ 이명재



나는 지방 중소도시에서 열리고 있는 이 사진전을 '의식있는' 또는 '색깔 있는' 사진전이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방에서 시대의 흐름에 호흡을 함께 하며 나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영남'이라는 틀 속에서는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번 사진전의 압권은 최헌종의 '보이지 않는 독 "FTA"'라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아이디어 자체가 농사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농부 사진작가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다. 모델이 방독면을 하고 전라(全裸)의 상태로 서 있다. 방독면을 쓴 사이로 빛나는 눈은 미국과 우리 정부를 향하며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거기에 낫과 괭이 삽 등으로 몸을 가린 채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는 듯 무언의 항의를 하고 있다. 농사는 숫자로 나타나는 이익의 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은 평면 예술이다. 사실을 전달하는 것으로 오래 위력을 과시해 왔다. 하지만 작품 사진은 그 속에서 생활을 유추해 낼 수 있고 살아온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조망해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한 장의 사진 속에 작가의 세계관과 철학까지 함축하고 있다. 몇 년 전 내가 목회하고 있는 시골 교회를 찾은 한 사진작가가 찍은 우리 교회 사진 속에서 교회의 규모를 가늠할 수 없었던 데 적이 놀란 적이 있다. 그가 나의 사정을 헤아린 결과였다. 이런 점에서 사진의 미학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지방에서 열린 아마튜어 사진작가들이 연 전시회를 다녀와서 기뻤던 것은, 이런 노력들이 중앙과 지역의 문화 균분이 되지 않는 가운데 열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우리의 문화는 중앙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천의 순수 아마추어 사진 작가들이 경비를 갹출해서 치른 이번 전시회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생업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하는 데에 여러 가지 제한이 따르겠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제3, 제4의 Team-P 사진전으로 이어가길 간절히 바란다.
#제2회 TEAM-P 사진전 #김천지역 아마튜어 사진작가 #인색함 #김현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군산 갯벌에서 '국외 반출 금지' 식물 발견... 탄성이 나왔다
  2. 2 20년만에 포옹한 부하 해병 "박정훈 대령, 부당한 지시 없던 상관"
  3. 3 광주 찾는 합천 사람들 "전두환 공원, 국민이 거부권 행사해달라"
  4. 4 남자의 3분의1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5. 5 "개발도상국 대통령 기념사인가"... 윤 대통령 5·18기념사, 쏟아지는 혹평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