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70km를 알리는 이정표
신은미
북한에서의 마지막 일정이다. 분단의 비극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판문점에 간단다. 서울에 살았을 시절에도 관심이 없어 가본 적 없는 이곳을 평양에서 가게 되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 쓰라린 긴장감이 느껴진다.
판문점으로 가는 길은 조용하고 평온하다. "바로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도로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께서 평양에 오셨다"고 만룡 안내원이 설명한다. 남편이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께서도 서울에 한번 오셨으면 좋겠는데"라고. 그러자 만룡 안내원이 "남조선에 우리 동포들만 살고 있다면 문제 될 것이 없겠지만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니까 우리 인민들로서는 경호상 안심할 수가 없습네다"라고 대답한다.
'평산'이라고 적혀있는 표지판이 나온다. 내 본관은 평산인데 막상 이정표를 보니 기분이 묘하다. 얼마 더 지나니 해주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표지판이 나온다. 남편은 북한과 아무 관계가 없지만, 본관이 황해도 해주다.
우리는 궁금증이 발동해 일행들의 본관을 물어봤다. 리만룡 안내원은 전주 이씨, 리인덕 운전기사 아저씨는 경주 이씨, 그리고 설경이는 김해 김씨란다. 남편과 내 본관은 모두 북한에 있는데, 이들의 본관은 모두 남한에 있다. 서로 쳐다보며 묘한 웃음을 짓는다.
서울까지 70km... 가슴이 아픕니다남쪽 방향을 향하고 있는 우리 차량이 '서울 70km'라고 적혀있는 이정표를 지나친다. '서울'이라는 글자에 반가움과 친숙함이 마음의 눈물이 돼 울컥 솟구친다. 내 가슴이 비통함으로 마구 조여온다.
지금 나는 서로가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최전방, 최전선을 구경하러 가고 있다. 누가 누구의 적이며 왜 무찔러야 하는 대상이 됐는지 내 머릿속은 백지가 돼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딸 같은 설경이와 만룡 안내원, 그리고 착하디착한 운전수 당원 아저씨와 함께 '적군'의 차량을 타고 휴전협정지로 가고 있다는 사실만이 인지되고 있을 뿐이다.
주변 경비가 삼엄한 것을 보니 판문점에 다 온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 외국 관광객들이 도착해 있었다. 우리 부부에게 판문점을 안내해 줄 군인 아저씨가 다가온다. 내가 북한에서 본 군인 아저씨 중에서는 제일 군인다워 보였다. 키도 크고, 말소리도 씩씩하다. 앞으로 둘러볼 판문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지휘봉으로 안내도를 짚는데, 목소리에 힘이 실려있다. 판문점 입구서부터는 이 군인 아저씨가 우리 차에 탑승해 함께 비무장지대로 가게 된다고 했다.
커다란 철문이 열린다. 출발을 알리는 다른 군인의 손 신호에 차량이 움직인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차량이 멈춘다. 걸어서 들어가야 한단다. 우리 일행은 걸어서 정전협정이 맺어졌다는 건물에 닿았다. 그 건물 안에는 그 시절의 사진들과 협정 때 사용됐던 책상, 의자, 문서 자료 등이 보관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