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숲, 거기엔 한 가지 나무만 있지 않다

[포토에세이] 오대산 월정사에서 만난 꽃들

등록 2012.07.17 16:59수정 2012.07.1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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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물양지 습지의 그늘진 곳에서 자라나는 물양지(오대산 월정사)

물양지 습지의 그늘진 곳에서 자라나는 물양지(오대산 월정사) ⓒ 김민수


숲은 큰 나무로만 이뤄져있지 않다. 가까이 다가가면 숲을 이루는 작은 생명들을 만날 수 있다. 숲 초입에는 숲의 경계를 이루는 초목과 작은 꽃들이 저 깊은 숲에 무엇이 있는가를 가늠하게 한다.


한 여름이면 범인들은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여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그곳에서 그들만의 향연을 펼치는 계절이 여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a 물양지 꽃잎이 떨어진 것이 이빨 빠진 개구쟁이처럼 보인다.

물양지 꽃잎이 떨어진 것이 이빨 빠진 개구쟁이처럼 보인다. ⓒ 김민수


숲이 큰 나무로만 이뤄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자연이 주는 위로의 메시지다. 꽃도 피어있지만, 예쁜 꽃만 피어있는 것이 아니라 이빨 빠진듯한 꽃들도 있고, 냄새가 고약한 꽃도 함께 공존하는 것이 숲이다.

오로지 잘난 사람들만 대접받고 활개치는 사람들 사는 세상과는 다른 곳, 그곳이 숲이다.
그래서 속세에서 시달린 사람들이 숲에 들어가면 치유를 받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숲은 '힐링'의 공간인 것이다.

a 물양지 옹기종기 모여 피어나 그늘진 숲속을 화사하게 만든다.

물양지 옹기종기 모여 피어나 그늘진 숲속을 화사하게 만든다. ⓒ 김민수


오대산 월정사는 한낮 여름임에도 20도 정도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어 쌀쌀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근자에 내린 비로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는 우렁찼다. 그 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 길과 숲의 경계에 노란 꽃들이 피어있다.

'물양지'라는 꽃이다. 양지꽃이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이라면, 물양지는 초여름에 피어나는 꽃이다. 양지꽃이 이름 그대로 양지를 좋아한다면, 물양지는 습진 곳과 그늘을 좋아하는 꽃이다. 양지꽃은 바닥을 기며 피어나지만, 물양지는 껑충 키가 크다. 여름 풀들의 키보다 작으면 피어나기 힘든 까닭이다.


a 노루오줌 노루오줌의 꽃은 그나마 잘 말라 있어야 볼만하다.

노루오줌 노루오줌의 꽃은 그나마 잘 말라 있어야 볼만하다. ⓒ 김민수


물양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만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꽃들이 피어나 숲을 장식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숲의 액세서리가 아니라 주인공이다. 숲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서로를 주인공으로 알고 살아간다. 더불어 삶의 비결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네 사람 사는 세상도 그러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숲에는 인간의 입장에서 너무 예쁘다거나 인간의 몸에 좋은 것들(예를들면 산삼 같은 것)도 있지만, 그들은 인간의 눈에 띄는 순간 대부분 숲과 결별하게 된다. 그러니, 숲에서는 너무 잘난 것들은 오히려 화를 자처하는 꼴이 된다. 그저 잘나지 못했어도, 차라리 못난 것이 오래오래 그 숲에 살아남는다.


a 노랑물봉선 늦여름에 피어나는 꽃인데 어느새 피어나기 시작한다.

노랑물봉선 늦여름에 피어나는 꽃인데 어느새 피어나기 시작한다. ⓒ 김민수


못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감내해야 할 아픔이 큰 인간의 세상, 그런 낙인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색깔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담력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잘나지 않아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 보살핌을 받고 귀하게 여겨지는 그런 세상은 그냥 꿈 속에서나 가능한 세상일까? 그런 세상이라야,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세상이 아닐까?

잘난 사람들은 자기만을 위해서 살지 않고, 자기보다 못났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섬기는 세상, 그래서 잘난 사람 조차도 비웃음의 대상이 되지 않는 그런 세상을 나는 꿈꾼다.

a 큰제비고깔 보랏빛 꽃, 거반 피어나 열매를 맺었고 남은 꽃들도 열매를 맺을 터이다.

큰제비고깔 보랏빛 꽃, 거반 피어나 열매를 맺었고 남은 꽃들도 열매를 맺을 터이다. ⓒ 김민수


a 하늘말나리 하늘을 바라보며 피어나는 하늘말나리, 숲 속의 요정을 보는듯하다.

하늘말나리 하늘을 바라보며 피어나는 하늘말나리, 숲 속의 요정을 보는듯하다. ⓒ 김민수


이르게 피어난 노랑물봉선, 제때가 약간은 지나간 큰제베고깔, 한창 제때를 살아가는 하늘말나리. 그 어느 때건 피어있는 꽃은 아름답다.

새싹을 틔우는 순간부터 흙 속에서 기나긴 겨울을 나는 그 모든 순간들이 다 장엄하다. 그것은 그들의 삶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사람들의 삶도 그러한 것이다.

남의 것을 훔치고 빼앗는 조폭적인 삶이나 사기꾼의 삶이 아닌 수고하고 땀흘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순간순간의 모든 삶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 아닐까?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가난을 대물림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하는 사회시스템을 유지하는 사회라면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을 것이다.

a 속새 작은 대나무를 닮은 속새, 항암작용이 뛰어난 식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속새 작은 대나무를 닮은 속새, 항암작용이 뛰어난 식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 김민수


속새, 작은 대나무 밭에 선 느낌이 들게하는 식물이다. 그냥 그렇게 봤는데 약초로 귀하게 사용이 된다고 하니 다르게 보인다. 물론, 인간의 관점에서다. 사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식물의 쓰임새들은 지금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무궁무진할 것은 자명하다. 우리 인간은 그들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듯 행세할 뿐이다.

숲에서 만난 것들은 모두가 달랐다. 설령 같은 꽃이라도 달랐다. 그러나 그들은 그 다름을 통해 더불어 숲을 만들었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는 미성숙한 사회다. 다름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내가 가진 생각만이 정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이 정의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사회, 획일적인 이념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 땀흘려 수고하며 일할 의지만 있으면 소박하지만 기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런 나라를 꿈꿔본다.

큰 숲. 거기엔 한 가지 나무 혹은 큰 나무만 있지 않다.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자잘한 그러나 위대한 자연의 섭리가 작용하며 큰 숲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위의 사진들은 7월 14일,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산책길을 산책하면서 담은 것들입니다.


덧붙이는 글 위의 사진들은 7월 14일,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산책길을 산책하면서 담은 것들입니다.
#물양지 #큰제비고깔 #노루오줌 #하늘말나리 #속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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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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