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뉴스, 미군선전영화, 공보처 기록영상 등을 재구성해 완성한 다큐멘터리 <미국의 바람과 불> 포스터
시네마 달
어린 아이들이 영어로 부르는 'ABCD송'이 반복해서 스크린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흑백화면 속 한국사회는 미군정의 주도하에 착착 재편됩니다. 숨 가쁘게 돌아가던 화면은 제주 4·3항쟁 당시 상의가 벗겨진 채 숨진 여인의 주검과 화염에 휩싸인 산간마을과 군경을 오래도록 포착합니다.
'대한뉴스' 등 기록영상물을 재편집해 완성한 다큐멘터리의 도입부 장면 중 일부입니다. 영화는 1945년 전후부터 영어 광풍이 휩쓸고 있는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얼굴을 조명합니다. 그런데 그 얼굴에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믿음은, 마치 기독교와도 같았다'는 시놉시스처럼, 항상 성조기가 겹쳐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내레이션이나 자막 등 감독의 의도를 배제한 이미지만으로도 영화의 질문은 끊이지 않습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이고, 미국과 하나님은 왜 동격이며, 우리는 현재 어디에 있고, 우리의 민낯은 어떤 모습인지…, 한미관계 60년을 되짚어 보게 합니다.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탐구와 성찰의 텍스트로 손색이 없는 독창적 다큐멘터리 <미국의 바람과 불>(7월 26일 개봉)입니다.
수은불망..."은혜를 입었으면 잊지 말라" 영화는 비탄과 격정의 파노라마인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을 배경음악으로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폭격기들이 한반도를 폭격하는 기록필름으로 열고, 닫습니다. 헌데, 이 장면 낯설지 않습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걸작 <지옥의 묵시록>에서 미군 헬기부대가 바그너의 '발퀴레 서곡'을 확성기로 틀어놓고 베트남 민간인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장면과 묘하게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6·25 전쟁 60주년기념사업위원회 주관으로 평화염원 범국민한마당이 성대하게 열립니다. 미국 등 참전국에게 감사와 보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장에서 3군 의장대가 행진을 준비하고, 영화는 전쟁 당시 피난길에 오른 피난민 행렬을 교차해서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