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끝에 탄생한 내 생애 최고의 텃밭!

쇠스랑과 삽·호미로 일군 땀의 보람

등록 2012.07.24 10:45수정 2012.07.2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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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1일,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 지리산 섬진강 변에서 이곳 휴전선 부근 임진강으로 이사했다. 2년 전 섬진강 변에 있는 빈농가를 수리해서 겨우 살 만하게 만들었더니, 갑자기 집주인이 이사 오겠다는 것이었다. 미처 집을 구하지 못하고 지리산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 내 블로그 독자가 지금 살고 있는 연천군 동이리 집이 비어 있는데, 살아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3.8선에 위치한 동이리로 이사하였다.

a  모래와 잡초로 우거진 앞뜰을 일구어 만든 텃밭에는 완두콩, 토마토, 가지, 고구마, 수박, 옥수수, 땅콩, 서리태, 들깨 등을 심었다(6월 11일).

모래와 잡초로 우거진 앞뜰을 일구어 만든 텃밭에는 완두콩, 토마토, 가지, 고구마, 수박, 옥수수, 땅콩, 서리태, 들깨 등을 심었다(6월 11일). ⓒ 최오균


동이리 집터는 꽤 넓었다. 그래서 나는 해빙만 되면 텃밭을 만들기로 작정했었다. 그러나 1월과 2월은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때문에 꼼짝을 못하고, 3월을 맞이하여 해빙되면서부터 쇠스랑과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매일 집 주변 앞뒤에 있는 모래땅과 잡초로 우거진 자갈밭을 조금씩 일구어 약 100여 평 정도의 텃밭을 만들었다.

모든 농사 작업은 쇠스랑과 괭이, 호미, 삽 등 농기구를 이용하여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밭을 일구고 파종을 했다. 말하자면 버려진 땅을 '먹을 수 있는 정원'으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a  쇠스랑과 삽, 호미 등 농기구를 이용하여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100여평 정도의 텃밭을 일구어 냈다.

쇠스랑과 삽, 호미 등 농기구를 이용하여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100여평 정도의 텃밭을 일구어 냈다. ⓒ 최오균


a  텃밭을 일구는 데 사용한 농기구들

텃밭을 일구는 데 사용한 농기구들 ⓒ 최오균


우측 뜰에는 상추와 호박, 오이, 고추, 감자, 부추를 심어 '키친정원(Kitchen Garden)'을 만들었다. 그리고 잡초가 우거진 앞마당 모래땅에는 야생화를 심었다. 또 남은 땅은 토마토, 가지, 완두콩, 땅콩, 들깨, 수박, 고구마, 옥수수 등을 심어 역시 먹을 수 있는 텃밭으로 만들었다.

a  뒤뜰에 있는 자갈밭은 잡초를 뽑아내고 돌을 골라내어 상추, 고추, 오이, 감자, 호박, 부추 등 먹을 수 있는 정원을 만들었다(6월 11일)

뒤뜰에 있는 자갈밭은 잡초를 뽑아내고 돌을 골라내어 상추, 고추, 오이, 감자, 호박, 부추 등 먹을 수 있는 정원을 만들었다(6월 11일) ⓒ 최오균


그러나 5월과 6월은 104년 만에 찾아온 극심한 가뭄으로 텃밭은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지 않으면 땅은 금방 금이 가고, 채소는 시들어 갔다. 그럴수록 더 정성스럽게 물을 주었다.


소낙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 큰 통을 받치고 빗물을 받아 저장했다가 양동이로 퍼 날라 물을 주며 보살폈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던가? 목이 타는 녀석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나를 마치 부모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쥔장님, 목이 타들어 가요."
"애들아, 조금만 더 견디어 다오. 곧 단비가 올 거야."


가뭄에 목이 타는 녀석들과 매일 대화하며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었다. 그런대로 녀석들은 잘 견디어 주었다. 더러는 가뭄과 무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별나라로 먼저 가버린 녀석들도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6월 19일 날은 소낙비가 내리다가 주먹처럼 큰 우박이 내려 텃밭을 난도질 해버렸다. 오이, 호박, 토마토, 고추, 상추할 것 없이 우박서리를 맞은 텃밭은 벌집으로 변하고 말았다. 가뭄이 지속되다가 한여름에 날벼락처럼 내린 우박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a  상추, 오이, 고추, 호박 등 매일 싱싱한 야채를 공급해 주는 텃밭으로 변한 우측 자갈밭

상추, 오이, 고추, 호박 등 매일 싱싱한 야채를 공급해 주는 텃밭으로 변한 우측 자갈밭 ⓒ 최오균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던가! 6월 30일, 때마침 내린 단비로 채소들은 시련을 딛고 일어나 '내 생애 최고의 텃밭'으로 탄생해 주었다. 그리고 텃밭에서는 매일 싱싱한 상추, 오이, 토마토, 가지, 고추들이 밥상에 올라오게 되었다. 비록 가뭄과 우박으로 상처를 입었지만, 녀석들은 시련을 딛고 싱싱하게 자라나 주었다.

a  시련을 딛고 내 생애 최고의 텃밭으로 탄생한 앞 뜰 텃밭(7월 23일)

시련을 딛고 내 생애 최고의 텃밭으로 탄생한 앞 뜰 텃밭(7월 23일) ⓒ 최오균


새내기 농부인 나는 지난달부터 연천군에서 실시하는 '귀농교육'를 받기 시작했다. 좀 더 농업과 토양을 이해하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귀농은 결코 달콤한 낭만이 아니다. 낭만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벌레와 잡초, 가뭄과 병충해 등 수많은 고비를 넘길 수 있는 인내와 끈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모든 일은 서서히 시간을 두고 정성을 들여야만 할 것 같다. 감자를 익힐 때, 갑자기 너무 뜨거운 불로 익히다가는 다 타버리고 만다. 감자가 제대로 익기까지는 서서히 시간을 들여 달구어 나가야만 비로소 먹을 수 있는 감자가 될 수가 있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a  매일 텃밭에서 갓 따온 상추와 야채가 식타겡 오른다.

매일 텃밭에서 갓 따온 상추와 야채가 식타겡 오른다. ⓒ 최오균


지난 6개월 동안 시간과 땀, 그리고 정성을 들여 '먹을 수 있는 정원'으로 탄생한 '텃밭'은 바로 내 희망을 키우는 밭이다. 그동안 텃밭은 새내기 농사꾼인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농사는 하늘이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흙은 농사짓는 농부의 진실한 마음과 땀방울에 비례하여 수확을 가져다준다는 것 등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쌀 한 톨, 곡식, 채소들은 농부들의 땀방울이 서린 소중한 존재다. 요즈음 매일 아침 일어나면 진액이 뚝뚝 떨어지는 상추, 싱싱한 오이, 토마토, 가지를 따다가 식탁에 올린다. 모두가 손수 지은 무공해 채소들이다.

a  못생겼지만 무공해 토마토와 오이, 가지도 올라온다.

못생겼지만 무공해 토마토와 오이, 가지도 올라온다. ⓒ 최오균


손수 땅을 일구어 가꾼 채소를 식탁에 올려 먹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더구나 지금처럼 수확하는 시기에는 채소를 사기 위해 장이나 마트나 가지 않아도 되어 돈도 별로 들어가지 않는다. 쌀만 있으면 반찬은 텃밭에서 올라온 야채로 충분하다.

앞으로 농지를 좀 더 늘려 우리 식구가 먹는 식량과 야채는 자급자족 할 수 있도록 농사를 지어볼 생각이다. 시련을 딛고 성장하여 매일 식탁에 올라오는 채소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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