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딱 하나뿐인 펜... 그냥 드립니다

수제 필기구 만들어 기부하는 신현문·신현우씨 형제

등록 2012.07.25 14:45수정 2012.07.2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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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비슷비슷하지만 같은 게 하나도 없는 수제작 펜

비슷비슷하지만 같은 게 하나도 없는 수제작 펜 ⓒ 신현우


세상에는 좋은 샤프도 많고, 값비싼 볼펜도 많습니다. 어떤 볼펜은 디자인이 독특하고, 어떤 필기구는 모양이 화려합니다. 하지만 대개의 필기구들은 돈만 있으면 살 수 있고 모양이 똑같은 것들도 있습니다.


꼴은 닮았지만 꼭 같은 건 하나도 없어 세상에 딱 하나뿐인 수제 필기구, 하나뿐이라서 나눔이 아니면 가질 수가 없는 필기구가 있습니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고, 욕심을 부린다 해도 마음대로 가질 수가 없으니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최고로 아름다운 필기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나하나를 깎고 다듬어서 만드는 수제 필기구, 땀으로 깎고 정성으로 다듬어 아무런 조건 없이 건네주고 받아들이는 필기구니 나누는 마음이 꽉 찬 아름다운 필기구입니다.

a  평산특수목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평산특수목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 임윤수


- 공장에서 찍힌 샤프가 아닌 한 사람의 손을 온전히 거쳐 만들어진 샤프인 것을 보고 그 마음과 정성에 정말 감동하였습니다. (줄임) 학교 현장에서 늘 장애를 가진 학생을 만나고 함께 웃고 성장하는데, 오늘은 다들 마음에 따뜻함을 하나씩 품었습니다.

-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장에 다니는 5학년 이○○입니다. 저는 선생님께 오늘 우든펜을 처음으로 받고 알게 되었습니다. 손으로 직접 만든다는 것을 선생님께 듣고 나서 놀라웠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어떻게 이렇게 이쁘게 만들 수 있는지 신기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만드세요. 그리고 우든펜 잘 받았습니다. (줄임) 우든펜으로 예쁜 글씨 쓰겠습니다.

- 명품이 따로 없습니다. 정성껏 만들어서 국토 최남단 가파초등학교까지 보내주신 연필 잘 받았습니다. 정성으로 만든 연필에 걸맞게 아름답고 고운 글, 꿈이 담겨 있는 글만 쓰도록 지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간직하도록 지도하겠습니다.


a  우든펜을 만들기 위해 적당한 크기로 1차 가공된 나무들

우든펜을 만들기 위해 적당한 크기로 1차 가공된 나무들 ⓒ 신현우


경기도 광주에 있는 평산특수목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글 중에서 갈무리한 글들입니다.

평산특수목재는 두 형제, 신현문·신현우씨가 함께 근무하며 건축자재나 실내 장식에 사용되는 천연무늬목을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아름드리 원목을 가져와 특수처리를 하고, 특수기계 등을 이용해 필름처럼 얇게 가공해 대형 화장지를 감은 두루마리처럼 무늬목을 감은 롤을 생산합니다.


형제 중 동생 신현우는 필자와 대학시절 함께 자취했을 만큼 절친한 친구입니다. 우든펜을 만들어 기부하고 있다는 것을 진즉에 알던 중, 24일 친구도 만날 겸 평산특수목재에 다녀왔습니다.

지난겨울, 형인 신현문 사장은 어느 일간지에 실린, <글씨를 그리고 있는 아이들>이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기사를 읽은 신현문 사장은 아이들에게 글씨를 잘 쓸 수 있는 동기를 유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을 몇 날 며칠 하다보니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필기구, 나무를 깎아 만드는 우든펜을 제작해 나눠주면 글씨 쓰기에 관심을 갖게 될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거기까지에 이르자 더 이상의 머뭇거림 없이 우든펜을 제작해 기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답니다.

재능기부로 만든 '우든펜', 도서벽지 아이들에게 기증

a  가마솥 더위속에서도 직접 우든펜을 가공하고 있는 신현문 사장

가마솥 더위속에서도 직접 우든펜을 가공하고 있는 신현문 사장 ⓒ 임윤수


a  하나하나의 펜을 이렇게 손으로 깎으니 같은 게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하나의 펜을 이렇게 손으로 깎으니 같은 게 있을 수 없습니다. ⓒ 임윤수


a  깎고 다듬다 보면 먼지도 많이 나고 힘도 들지만 가슴이 뜨끔거릴 만큼 보람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깎고 다듬다 보면 먼지도 많이 나고 힘도 들지만 가슴이 뜨끔거릴 만큼 보람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 임윤수


나눠줄 마음도 있고, 펜을 만들어줄 재료도 있었지만 하나하나를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 수제품이다 보니 함께 만들어줄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수제 펜을 만들 수 있는 재능을 가진 분들을 수소문하고, 재능 기부를 부탁하니 '우드워커', '우든펜만들기', '나무가꿈꾸는세상 우드토피아', '좋은 목공예방' 카페 회원들이 기꺼이 재능을 기부해준다고 하였습니다. 

재능을 기부해 주신 회원 중에는 몽당연필에 침 꾹꾹 발라가며 글씨를 썼을 것으로 어림되는 나이 드신 회원, 몽당연필 세대도 있고, 샤프펜슬 세대로 짐작되는 젊은이들도 있었다고 하지만, 좋은 재능을 좋은 일에 기부하겠다는 마음과 손길은 모두 같았을 것입니다.

우든펜 기부를 처음으로 생각할 때는 글씨를 예쁘게 쓰는 학생들을 선별해 격려의 선물로 전달하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글씨를 예쁘게 쓰는 학생을 선별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시골 마을 소규모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부였습니다.

a  두 형제가 재능을 기부받아 제작해 나눠주는 우든펜. 꼴은 닮아있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제펜입니다.

두 형제가 재능을 기부받아 제작해 나눠주는 우든펜. 꼴은 닮아있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제펜입니다. ⓒ 신현우


a  하나하나를 손으로 깎아 만든 우든펜

하나하나를 손으로 깎아 만든 우든펜 ⓒ 신현우


국토의 동·서·남·북 끝단에 있는 학교, 도서벽지 학교, 전교 학생 수가 30명 미만인 학교들을 선정해 재학생 수만큼의 우든펜을 보내주는 것으로 기부 방법을 결정하였답니다. 

이 결정에 따라 우선 국토 최남단에 있는 가파초등학교, 제일 동쪽에 있는 울릉도 남양초등학교 태하분교, 서쪽에 있는 흑산도초등학교 홍도분교, 북쪽에 있는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파초등학교에 손으로 만든 우든펜을 올 초부터 나눠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우든펜 나눠주기는 애초 생각대로 도서벽지 학교에만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장애 학생들 소식이 들리면 그들에게도 나눠줘야 했고, 자랑스러운 소식이 들리면 그들에게도 주어야 했습니다.

우든펜은 매월 첫 주 2~3개 학교로 보내지고, 지금까지 약 1700자루가 지급됐다고 합니다.

"경기 어렵지만, 나누고 함께 가다보면 좋은 날도 있을겨"

a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제필기구를 만들어 기부하는 평산특수목재 신현문 사장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제필기구를 만들어 기부하는 평산특수목재 신현문 사장 ⓒ 임윤수


처음에야 글씨 좀 잘 썼으면 하는 바람, '나만의 필기구'를 나눠준다는 마음이었답니다. 하지만 우든펜을 받아든 학생들이 이렇게 기뻐하고 저렇게 고마워하는 마음들을 전하는 글을 읽으면서 신현문 사장은 도리어 커다란 기쁨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펜을 갖게 되어 정말 기쁘다는 아이도 있고, 연필을 잡은 손맛과 촉감이 좋아서 글씨가 잘 써지는 것 같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세상에 하나뿐인 보람이 되고, 글씨를 예쁘게 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떠오르는 소식들은 나무를 깎는 손길을 쉬지 못하게 하는 기쁨이 되더랍니다.

a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친구에게 줄 것이 없는 필자는 28년 전 모습을 선물합니다. 사진 왼쪽이 필자, 오른쪽이 평산특수목재 신현우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친구에게 줄 것이 없는 필자는 28년 전 모습을 선물합니다. 사진 왼쪽이 필자, 오른쪽이 평산특수목재 신현우 ⓒ 임윤수

어딘가에,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우든펜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요즘 같은 가마솥 더위에서도 두 형제는 줄줄 흐르는 땀을 쓱쓱 닦아가며 나무를 깎고 다듬고 있었습니다.

힘들고, 각박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우리 주변엔 나누고 베풀며 사는 사람도 이렇게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부금을 내고, 어떤 이들은 재능을 기부합니다. 평산특수목재 두 형제는 우든펜 제작에 소요되는 제반 경비는 물론 재능과 땀, 마음과 정성까지 아낌없이 나누고 있습니다.

친구 신현우에게 요즘 경기가 어떠냐고 물어봤습니다. 우든펜 나누기는 언제까지 할 거냐고도 물었습니다. 어렵다고 합니다. 건설 경기의 지표가 무늬목 산업인데, 건설 경기라는 말이 무색한 요즘 무늬목 산업이라고 좋을 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주변 여건은 점점 어려워지고 무늬목 판매는 전에 비해 훨씬 못하지만 그래도 요즘 살맛 난답니다. 조건 없이 나눠주는 우든펜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와 글씨를 그리고 있던 아이들이 글씨를 쓰려고 노력하는 모습 덕분이라고 합니다.

모든 어린이에게 다 나눠주지는 못하지만 처음 먹은 마음, 전교 학생 수가 30명 미만인 도서벽지 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우든펜 기부는 황소 같은 걸음으로 뚜벅뚜벅 실천해나갈 거라고 합니다.

"어렵지만 나누고, 힘들지만 함께 가다보면 분명 좋은 날도 있을 거야"라던 두 형제의 말과 나눔이, 씨가 되고 싹으로 터서 더 많은 사람이 나누고 더불어 사는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a  두 형제가 자란 부여 고향집, 지금도 노부가 생활하고 계셔서 주말마다 찾아가고 있는 고향집 마당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글씨. 두 형제는 사회와 동고동락하며 정을 나누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두 형제가 자란 부여 고향집, 지금도 노부가 생활하고 계셔서 주말마다 찾아가고 있는 고향집 마당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글씨. 두 형제는 사회와 동고동락하며 정을 나누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 임윤수


#우든펜 #평산특수목재 #신현문 #신현우 #수제작필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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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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