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수집가, 그는 언제 살인을 멈출까

[서평] 누쿠이 도쿠로 <후회와 진실의 빛>

등록 2012.07.25 10:44수정 2012.07.2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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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후회와 진실의 빛> 겉표지

<후회와 진실의 빛> 겉표지 ⓒ 비채

연쇄살인범이 빠지기 쉬운 유혹은 여러 가지다. 그중 대표적인 두 가지는 바로 '희생자에게서 기념품 챙기기'와 '범행 과시하기'다.

어떤 연쇄살인범들은 범행 현장에서 기념품을 가져온다. 그것은 목걸이나 반지, 지갑같은 희생자의 소지품일 수도 있고 아니면 희생자의 신체 일부일 수도 있다.


살인범은 이런 기념품을 자신만의 장소에 모아두고 시간이 날때마다 바라보며 음미한다. 그걸 바라보면서 자신이 몇 명의 사람을 죽였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떠올리고, 살인을 할때의 흥분을 되새기는 것이다.

범행 과시하기도 마찬가지다. 일부 살인범들은 신문 등의 언론에 무기명 제보를 해서 자신이 여태껏 사람들을 죽인 살인범이라고 말한다. 자백이 아니라 과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에게 쏠리게 될 대중들의 관심을 즐긴다.

현실 속의 자신은 별 볼 일없고 찌질한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살인범으로 돌변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살인범은 자신을 다루는 신문기사와 방송을 보면서 자신이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손가락을 수집하는 살인범

조금 더 대담한 살인범은 경찰에게 편지를 보낼 수도 있다. 자신이 여지껏 몇 차례 살인을 했고 앞으로도 살인을 할거라고 예고한다. 경찰은 당황하면서도 분노하고 살인범은 그런 반응을 즐긴다. 자신이 경찰조직을 움직이는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쿠이 도쿠로의 2009년 작품 <후회와 진실의 빛>에는 위의 두가지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살인범이 등장한다. 그는 많은 연쇄살인범들이 그렇듯이 젊은 여성들만을 노린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살인 후에 여성의 손가락 하나를 절단해서 가지고 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손가락을 소주가 들어있는 작은 약병에 담아 놓는다. 손가락이 부패하는 것을 막으려면 포르말린에 담아 두는 것이 좋지만, 포르말린을 구입하면 의심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주를 이용한다. 약병을 살짝 흔들면 그 안에서 손가락이 마치 살아있는 것 처럼 움직인다.


그는 애완동물을 키우면 이런 기분을 맛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애완동물이 죽으면 주인이 슬퍼하듯이, 이 손가락이 썩어 없어지면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미친놈'이겠지만 살인범은 아주 진지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에게 '손가락 수집가'라는 별명이 붙었다.

<후회와 진실의 빛>은 도쿄 시내의 한 공터에서 젊은 여인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시체는 칼로 난도질당했고 손가락 하나가 절단되었다. 주인공인 경시청 수사1과의 엘리트 형사 사이조는 살해현장으로 달려가고 그곳에서 참혹한 시신과 마주한다. 일본을 뒤흔들 연쇄살인범과의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연쇄살인범의 뒤틀린 내면

범인은 손가락 절단으로도 부족해서 인터넷의 익명 커뮤니티에 자신의 범행을 과시하는 글을 올린다. 게시글은 다른 사람 명의의 휴대폰, 속칭 '대포폰'을 이용해서 올렸기 때문에 추적하기가 어렵다. 과거에는 살인범들이 언론사나 경찰서로 직접 편지를 보냈는데,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기에 살인범들도 인터넷을 이용한다.

많은 연쇄살인범들이 그렇듯이, 손가락 수집가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 사람을 죽인다. 그는 젊은 여성을 죽이면서 '악'을 제거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이 글을 올린 사람이 진짜 범인이라는 것을 일반사람들이 알게 되는 순간 자신은 영웅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연쇄살인범에게는 살인 자체도 쾌감이지만 타인의 관심을 받는 것도 그에 못지 않은 즐거움으로 작용한다. 자신이 타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거기에 중독된다. 다음 범행이 실패할거라는 걱정 따위는 없다.

중요한 시합을 목전에 둔 운동선수처럼,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긍정적인 의욕만이 가슴에 충만한 것이다. 자신이 빠져든 두 가지 유혹 때문에 꼬리가 밟힐거라는 생각도 없다. 세상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범죄도 자기만족에 빠지는 순간 방심하게 된다.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그래서 위험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후회와 진실의 빛> 누쿠이 도쿠로 지음 / 이기운 옮김. 비채 펴냄.


덧붙이는 글 <후회와 진실의 빛> 누쿠이 도쿠로 지음 / 이기운 옮김. 비채 펴냄.

후회와 진실의 빛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비채, 2012


#후회와 진실의 빛 #누쿠이 도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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