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병에 효자 '있다'... 이런 병원이 경남에만 있다니

간병인 구할 길 없는 시골병원에서 대한민국 의료 현실을 보다

등록 2012.08.02 14:36수정 2012.08.0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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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보호자없는병원연석회의, 경남고용포럼, 강성훈 경남도의원은 2011년 8월 11일 오후 마산의료원에서 "경남보호자없는병원사업 진행보고와 확대 시행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 윤성효


저는 지금 충남 당진의 한 병원에서 97세이신 할머니의 병수발을 들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2년 전 위암 진단을 받으셨고 당시 95세란 연세 때문에 의료진은 수술도 항암치료도 권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병세가 조금 늦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치료의 전부였습니다.


기나긴 투병 생활이 될 것이기에 가족들은 간병인을 구하려 했으나 시골 병원에서 간병인을 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 2년 동안 할머니는 여러 번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고 급기야 저희 어머니는 지난주에 쓰러지셨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절실히 와닿던 순간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어머니는 지난 2년간 변변히 외출도 못하시면서 보내셨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평소 정말 깔끔하신 분이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셔서 방문 밖에 나가시기 전에 꼭 머리를 빗으시던 할머니셨기에 기저귀 사용을 정말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는 할머니와 항상 함께 계셨죠.

특히, 상태가 안 좋아져서 입원하실 때면 누군가가 반드시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우신 나머지 본인 스스로 호흡기와 수액바늘, 소변줄 등을 빼버리시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병원에서는 손발을 침대에 묶어주겠다고 하지만 세상과의 이별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의 손과 발을 묶을 순 없어 가족 모두가 번갈아가며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할머니 간병에 매달린 우리 가족, '긴 병에 효자 없다'

저는 그동안은 일본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가 위독하시다고 연락을 받았을 때에나 얼굴 조금 빼꼼 내밀곤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10년여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제가 생각했던 상황보다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일자리보다 간병인을 먼저 구해봤지만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간병인을 구하지 못해 부모님과 교대로 병원으로 출퇴근을 한 지도 어느덧 3개월입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저는 입원 환자의 가족들이 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간병인 하루 일당 7만 원. 적지 않는 금액인데도 이곳 종합병원에서는 간병인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간병인들 입장에서는 24시간, 밤에도 고통 때문에 쉽게 잠들 수 없는 할머니 같은 환자들의 병수발을 드는 데 비하면 적은 금액이기 때문에 꺼리고, 시골의 보호자들 입장에서는 빠듯한 수입에 매일 7만 원이란 금액을 지불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같은 악순환은 시골병원의 간병인 구인난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보통 중환자가 생기면 인근의 대도시로 올라가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합니다. 물론 의료시설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시골엔 자녀들이 남아 있지도 않고, 간병인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 가족도 처음에는 인근 대도시로 할머니를 모실까 싶었지만 워낙 고령이신데다가 고향에 계시고 싶어해 외지에서 간병인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숙식문제와 비용 문제 등으로 이내 그만두고 말더군요. 간병이 워낙 힘들다 보니 당연히 좀 편한 환자를 찾게 되는 그분들을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농촌의 고령화는 계속되는데 간병인 시스템이 그에 못 미친다는 점입니다.

'보호자 없는 병원', 언제까지 부러워만 해야 하나요

그러던 가운데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병원이 있습니다. 바로 '보호자 없는 병원'입니다. 민주통합당 김두관 대선경선 후보가 경남도지사 시절에 정착시킨 간병인 제도라고 해서 뭔가 하고 알아봤죠.

보호자나 외부 간병인이 24시간 대기하지 않아도, 소득에 따라 하루 1~2만 원의 금액으로 병원에 고용된 간병인이 기본적으로 환자들을 돌봐주는 병원이라고 합니다. 고령화된 농촌과 저소득층을 위해서 전국적으로 확대됐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이 '보호자 없는 병원'은 경상남도에만 존재한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보호자에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간병을 기대하지만 보호자도 지치기 십상입니다. 하루 24시간 중 단 몇 시간만이라도 편히 쉴 수 있다면, 보호자 없는 병원처럼 간병인 비용에 대한 부담만 조금이나마 덜어도 환자를 대하고 생업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은 덜하지 않을까요.

우연히 병원에서 필리핀 이주여성을 보았습니다. 몸 곳곳이 골절된 것 같은데 어찌된 사연인지 가족이나 간병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찾아오지도 않더군요. 사연인즉, 건설현장 노동자로 살아가는 남편이 매일 현장에 나가 일하는데도 7만 원이라는 간병인 비용을 댈 수 없어 환자 혼자 지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약 10년을 일본에서 가족 없이 살았습니다. 물론 아파서 입원한 적도 있습니다. 그땐 외국에 혼자 사니 병원에 입원해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 사실에 대해 당연히 받아들였지만, 가족이 있는 이주여성과 시골의 노인들은 왜 그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병실에 앉아 있으면 텔레비전 뉴스를 볼 일이 많아집니다. 최근 들어서는 대권 경쟁이 본격화 됐다는 보도가 주요 뉴스인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대권 레이스 기간 동안 각 후보들이 '보호자 없는 병원 확대'처럼 국민들의 삶에 가장 밀접한 다양한 정책을 내줄 수 있기를 기도해봅니다.
#보호자없는 병원 #김두관 #간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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