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게이트' 핵심인물 김한조씨 별세

지난달 26일 밤 별세... 병원관계자 "스스로 곡기 끊은 듯"

등록 2012.08.04 11:04수정 2012.08.0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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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한조씨 지난 1992년 10월 김한조씨가 자신의 인생역정을 회고하면서 낸 책 <백만장자의 빚> 표지. ⓒ 열림원


1970년대 한·미 관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의 핵심인물 김한조(91)씨가 지난달 26일 별세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김씨는 지난달 20일 영양 상태가 매우 악화된 상태로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 중환자실에서 지내다 이날 오후 11시 37분께 숨을 거뒀다.

이 병원 관계자는 "김씨의 선행 사인은 위장기능 약화로 병원에 오기 전에 본인 스스로 영양 섭취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조국에 돌아온 뒤 모함과 멸시, 무관심 혹은 외면으로 지내왔다"


김씨는 연희전문 영문과를 중퇴한 뒤 1953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아메리칸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에 화장품회사 '존 앤드 비 디(John & Bee Dee)'를 설립한 뒤 한 해 2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사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 무렵 김씨가 연루된 '코리아게이트'가 불거졌다. 1976년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박동선 씨 등 한국인들이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50만~100만달러를 미국 의원 등에게 제공해 매수공작을 벌였다"고 대서특필한 것.

지난 1995년 김씨가 낸 자서전 <코리아게이트>에 따르면, 그는 1973년 한국 방문 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비밀리에 로비를 부탁받았다. 이후 미국에서 주한미군 철수의 위험성을 환기시키는 등 여론을 조성하고, 포드 대통령의 한국 방문과 박 대통령의 미국 언론 인터뷰를 주선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이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로 세상에 드러나자 미국 내 반한 정서가 고조되고 양국 관계가 경색됐으며, 미 언론은 닉슨 대통령이 물러난 워터게이트 사건에 빗대 이를 '코리아 게이트'로 불렀다.

김씨는 로비스트 박동선(77)씨와 함께 한국 정보기관의 지원을 받고 미국 정·관계 인사들을 매수한 혐의로 유죄가 선고됐다. 박씨는 의회 증언을 하고 실형을 면했지만, 이를 거부한 김씨는 위증과 매수 혐의로 기소돼 1979년 7~11월 미국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이후 김씨는 지난 1981년 귀국해 서울 흑석동에서 혼자 살았다. 최근 건강이 악화되면서 조카가 그를 돌봐온 것으로 알려졌다.

귀국 후 가족을 그리워하며 당뇨 등 병마와 싸워온 김씨는 다른 노인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고 주변 지인들에게 "사업도 망하고 재산도 다 빼앗겼다, 국가를 위해 개인만 희생당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자서전에서 "파출소 한번 가본 적이 없는 내가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은 엄청나게 치욕적인 일이지만 4000만 국민을 생각할 때 참을 수 있었다, 내가 보여주었던 애국심을 정부와 우리 국민이 높이 평가해 모든 국민의 애국심으로 연결되리라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조국에 돌아온 뒤 모함과 멸시, 무관심 혹은 외면으로 지내왔다"고 토로했다.

고인의 빈소는 따로 차려지지 않았고 유해는 미국에서 급히 귀국한 아내와 아들 등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장됐다.
#코리아게이트 #김한조 #박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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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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