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북악 능선을 따라 이리저리 꼬불꼬불(곡장, 방어에 유리하도록 한 한국 산성의 특징)한 성곽을 따라 한발두발 오르고 또 오릅니다.
최방식
혜화문을 돌아 서울시장 공관. 한양도성이 사택 기단으로 쓰인 현장을 보며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한양도성을 깔아뭉개고 그 위에 집을 지은 일본인. 풍광이 좋고 잘 지어졌다고 대법원장에 이어 서울시장 사택으로 사용하는 이 땅의 공직자들. 그런 사실조차 모르는 무수한 사람들 모두에게.
숭고한 마음도 잠시. 여행자들은 몇 발자국도 안 가 배부터 채우겠다고 음식점에 들렀습니다. 와룡공원을 통과하면 창의문까지 길게는 3시간여 먹을 데가 없다는 게 핑계였습니다. "벌써 먹냐"는 이도 있었지만, 일행은 거기 꽤 이름이 알려진 '마전터'(음식점)에 들렀습니다.
음식을 고르는데 한쪽에서 "오늘이 중복" 소리가 터져 나왔고, 일부가 보양추어탕을 시켰습니다. 나머지는 보리비빔밥을 시키고, 막걸리도 한잔씩을 곁들였습니다. 마(麻, 섬유)를 삶거나 빨아 볕에 말려서 희게 하는 일(궁궐에 납품)을 하던 마전터가 성북동의 옛 이름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죠.
"중복" 소리에 추어탕 시켜놓고용이 누워 있는 지형이라는 와룡공원. 땡볕을 정면으로 맞으며 '말바위' 쉼터에 오른 여행자들은 거기 길을 막고 신분증을 검사하고 통행신청서를 제출토록 한 권부의 횡포에 짜증스러울 만도 하건만, 그날만큼은 좀 달랐습니다. 더위에 지쳐 숨넘어갈 듯 한 여행자들에게 시원한 공기(에어컨)의 쉼터 사무실이 천국이었기 때문.
10여 분 떠들고 놀다 다시 오르려는데 프랑스인 다비드가 자긴 내려가 차로 이동해 종착지인 창의문에 가서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농담인줄 알았는데, 심장에 무리가 갈 성 싶어 그런다며 거기서 보자고 합니다. 그냥 집에 가려나 싶었는데 "꼭 창의문에서 보자"고 합니다.
다시 '땀 목욕'을 하며 가파른 북악산을 오릅니다. 말바위 쉼터가 해발 100여 미터는 될 터이니, 나머지 150여 미터만 오르면 되는데 그게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가파른 북악 능선을 따라 이리저리 꼬불꼬불(곡장, 방어에 유리하도록 한 한국 산성의 특징)한 성곽을 따라 한 발 두 발 오르고 또 오릅니다.
가는 곳마다 청와대 외곽경비 군인들. 그들은 여행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무언가를 꺼내면 눈초리가 매섭습니다. 일행 중 한 여성분은 두어 차례 휴대전화 영상을 검색당했습니다. 청와대 쪽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하는 등 보안 때문인 모양인데, 왜 그분만 거듭 검색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성왕조 200여 년 법궁이었던 경복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청운대. 다시 구불구불 10여분 올라 마침내 서울이 한눈에 들어오는 북악산(백악산) 정상. 역시 군인 서너 명이 감시하고 있습니다. 너무 덥고 힘들어 한쪽 나무 그늘에 앉아 가져온 음식을 나누며 잠시 수다를 떨었습니다.
북악산에서 본 서울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정면의 남산과 좌청룡우백호의 보호 속에 아늑하게 자리한 내가 사는 도시.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이 먹고 사는 그토록 포근한 서울을 처음 마주했습니다. 인구 10만 명도 안 되던 도성이 1천만명이 넘는 거대도시로 바뀌어 거주자의 몰개성을 강요하는 시스템폭력이 무서울 정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