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죽인 한국해병대마저 추모...죽음에 공평한 베트남

[서평] 권헌익의 <학살, 그 이후>

등록 2012.09.03 17:29수정 2012.09.0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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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헌익 저, <학살, 그 이후>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
권헌익 저, <학살, 그 이후>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아카이브
어렵지만 쉬운 책

오랜만에 인천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격월간 아시아문화비평지 <플랫폼>에서 원고청탁을 받았다.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권헌익 교수의 저서 <학살, 그 이후>를 읽고 비평적 에세이를 써달라는 것이었는데, 난 그 청탁을 아무 생각없이 덜컥 받아들였다. 내 논문이 한국전쟁의 민간인 학살과 관련되어 있었고 나의 평소 관심사가 냉전체제였던 바, 책도 그 맥락에서 바라보면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의 민간인 학살과 그의 추모 방법을 인류학적으로 고찰한 <학살, 그 이후>는 결코 쉬운 책이 아니었다. 저자가 한국 태생임에도 영어로 저술함으로써 겪을 수밖에 없는 번역의 난해함은 차치하더라도, 한국에서 인류학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낯선 학문이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한국을 인류학의 불모지라고 하겠는가.

게다가 또 하필 글의 소재는 베트남. 중국도, 일본도 아닌 베트남이었다. 베트남 하면 기껏해야 땅굴과 쌀국수 등을 떠올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인데 하필 그 베트남을 인류학적으로 분석하겠다고 하니 더욱 난감할 수밖에.

그렇다고 책을 읽기 전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비록 베트남의 역사를 몰라도 내가 한국인인 만큼 어렵지 않게 저자의 논지를 따라갈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베트남의 역사가 한반도와 비슷할 뿐더러 우리가 그들의 역사에 비극의 주범으로서 - 국내에서는 자랑스러운 귀신 잡는 해병으로서 - 직접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전쟁, 그리고 학살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전쟁을 겪어야 했던 베트남.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전쟁 속에서 죽어갔으며, 또 쉽게 잊혀 왔던가. 공식적인 역사는 아직도 전쟁을 냉전시대 양 세력의 대리전으로 규정하지만, 정작 참화를 겪어야 했던 이들 혹은 그 후대들은 전쟁을 좀 더 복잡하게 기억한다. 전쟁이 세계적인 동시에, 지역적이었던 만큼 전쟁에 참여했던 주체들은 냉전의 이데올로기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다. 비록 서로 죽여야 했지만,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

따라서 문제는 전쟁 이후 그 수많은 죽음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데서 발생했다. 과거를 기억하는 권한을 국가가 독점함에 따라, 여러 층위를 지닐 수밖에 없는 전쟁 속 죽음들이 냉전의 공식적인 기준으로 획일적인 추모를 받거나 잊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편 혹은 저편, 전쟁영웅 혹은 희생자. 특히 저자는 그 죽음 중에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추모에 주목하는데 민간인 학살의 경우 국가와 국민들 간의 시각차가 크기 때문이다.


전쟁 당시에는 '인민은 물이고, 우리 군대는 물고기다'라는 구호 아래 총력전의 한 축으로 군인들과 같은 희생을 겪었으면서도, 전후에는 전쟁영웅과 함께할 수 없는 희생자(특히 노인과 여자가 포함된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로 취급당해온 학살의 피해자들.

변화는 전쟁이 끝나고 한 세대가 흐른 뒤 찾아왔다. 베트남이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을 시작하자, 국가 주도의 경제 구조가 민간 지역 공동체의 가족기반 중심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에 발맞추어 지역 공동체가 과거 학살의 기억을 들추기 시작했다. 지역 공동체가 친족 네트워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과거 전통을 되살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망자에 대한 기억과 추모는 그 전통을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였던 바, 국가에 의해 굴절됐던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에 대한 문제가 전면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지역 공동체 사람들은 학살의 피해자를 단순히 익명의 희생자로 받아들이는 국가의 기준을 거부했다. 그것은 집단 사망을 모호하게 처리하는 근대국가의 폭력일 뿐이었다. 대신 그들은 전쟁이 한 세대가 흐른 이상 피해자들을 자신의 고모, 이모뻘로 여김으로써 계보적으로 이해했고, 전쟁의 희생자여서가 아니라 자신의 조상이기 때문에 추모했다.

또한 그들은 이와 함께 베트남의 망자에 대한 전통적인 의례를 되살리기 시작했는데, 이와 같은 전통 속에서 심지어 그들은 자신의 조상을 죽였던 한국군 해병대의 죽음마저도 추모했다. "인간의 모든 죽음은 '좋은 죽음'이든 '나쁜 죽음'이든 '이편'의 죽음이든 '저편'의 죽음이든 애도와 위로를 받을 절대적 권리가 있다"는 것이 그들의 전통적인 관념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민간인 학살이라는 전무후무한 기억을 극복하고 있으며, 일상성을 되찾아가 가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민간인 학살

이와 같은 베트남의 사례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 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많은 사람들. 과연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던가. 베트남이나 우리 모두 농민사회였으니, 우리 역시 그와 같은 죽음을 애도하고 위로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었을 텐데 우리는 아직도 분단이라는 구조 속에 함몰되어 모든 죽음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직도 거창양민학살 사건을 운운하거나 제주 4·3을 이야기하면 빨갱이로 취급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물론 베트남과 우리를 직접 비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쨌든 베트남은 전쟁 뒤에 통일을 이루어 하나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아직도 분단체제 속에서 각기 다른 역사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사회는 아직 강력한 국가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모든 기억은 국가가 독점함으로써 공식적인 역사만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가와 결을 달리하는 죽음은 여전히 묻히고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와 같은 죽음이 덮여서는 안 된다. 배우지 않는 과거는 또다시 쉽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디 위 책이 하나의 불씨가 되어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영령들이 다시 편히 쉬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재)인천문화재단 아시아문화비평지 <플랫폼>35호에도 실렸습니다.

학살, 그 이후 - 1968년 베트남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의 인류학| 권헌익 (지은이), 유강은 (옮긴이) | 아카이브 | 2012년 6월|15,000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재)인천문화재단 아시아문화비평지 <플랫폼>35호에도 실렸습니다.

학살, 그 이후 - 1968년 베트남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의 인류학| 권헌익 (지은이), 유강은 (옮긴이) | 아카이브 | 2012년 6월|15,000원

학살, 그 이후 - 1968년 베트남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의 인류학

권헌익 지음, 유강은 옮김,
아카이브, 2012


#베트남전 #학살,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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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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