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없는 죽음, 이건 '살인'에 가깝다

[게릴라칼럼] <골든 타임>과 <하얀 정글>에 비친 한국 의료의 현재와 미래

등록 2012.08.21 17:54수정 2012.08.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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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층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은 20대 여성이 119 구급대에 의해 부산의 어느 병원으로 실려 왔다. 다행히 정부의 지원을 받는 권역응급의료센터가 현장에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하자 응급실 담당 의사가 이들을 가로 막고 나선다. 자리가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것이다. 구급대원이 거칠게 항의를 하고서야 이 여성은 겨우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잠시 뒤 복부에 피가 차올라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지만 병원 안의 수술실이 모두 꽉 차있어 수술을 할 수가 없다. 수술실마다 뛰어올라가 양보를 부탁해보지만 여의치 않다. 결국, 근처의 병원들을 수소문한 끝에 빈 수술실과 수술이 가능한 의사, 그리고 중환자실과 인공호흡장치를 모두 갖춘 병원을 찾았다. 멀리 울산에 있는 2차 병원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다행히 환자는 그 병원으로 옮겨진 뒤 수술을 받고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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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드라마 <골든타임> 포스터 ⓒ MBC



#2.

버스에 치인 10대 여성이 의식을 잃은 채 병원으로 실려 왔다. 이번에도 응급실 담당 의사가 막아선다.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없다는 이유였다. 여성의 목 부위 경동맥에 커다란 파편이 박혀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야 겨우 응급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몸 곳곳에 부상이 심해 일반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전문의들을 불러 진단을 해보지만, 당장 목 부위 경동맥 수술을 맡아야 할 흉부외과 전문의가 다른 수술을 하고 있다. 결국 다른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멀리 대구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안타깝게도 이 환자는 이송 도중 심 정지가 오는 바람에 숨졌다.

MBC 드라마 <골든 타임>에 등장하는 장면들이다. 병원 응급실과 중증 외상 환자들을 주로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에는 비슷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드라마 속 거짓말 같은 장면들은 얼마나 사실에 가까울까.


현실은 과연 드라마 <골든 타임>보다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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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드라마 <골든타임> ⓒ MBC


#3.

강중언(34·남·가명)씨는 지난 6월 새벽 3시 높은 곳에서 추락했다. 그는 사고가 일어난 지 13분 만에 준종합병원의 응급실에 도착했다. 정부가 전국 109개 지역응급의료센터 가운데 하나로 지정한 곳이었다. (중략)

일단 환자의 기관지에 튜브를 넣어서 호흡을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진료의사는 이 조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정한 환자에게는 실시하면 안 되는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다. 나중에 살펴보니, 뇌 촬영 결과 머리에는 미미한 손상만 있었다. CT 뒤에도 환자는 지속적인 저혈압 상태였다. 그러나 출혈 부위를 확인하기 위한 초음파 등의 검사는 없었다. 응급수술을 위한 외과 의료진과의 협진도 없었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를 보면, 환자의 골반에도 골절이 있었다. 골반강 출혈이 의심됐다. 그렇지만 혈관조영술 또는 응급수술을 위한 조치가 전혀 없었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지 3시간 30분이 지난 뒤 수혈이 이뤄졌을 뿐이다. 환자는 아침 7시를 갓 넘어 사망했다.(한겨레21(842호), 2010년 12월 31일)

서울의 어느 의료기관으로부터 받은 기록을 토대로 기자가 재구성한 글이라고 한다. 물론, 병원의 이름을 비롯한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었다. 기자는 그 이유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살인'에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썼다.

별 다를 것 없어 보이는 드라마 속 장면1, 2와 현실을 그대로 옮긴 장면3 사이에는 사실 큰 차이가 있다. 여러 과목의 전공의들이 응급실에 내려와 환자의 몸 곳곳을 살피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치료를 할 수 있는 다른 병원을 수소문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드라마 속에서나 일어나는 '허구'라는 점에서 그렇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장면3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는 뜻이다. 차마 드라마로 옮길 수 없을 만큼 참혹한.

<응급의료체계 성과지표에 관한 연구>(정구영, 2008년)에 따르면 2006년 8월~2007년 7월에 전국 20개 대형 응급실의 외상 사망 환자 551명 가운데 179명은 살릴 수 있었다. 이 논문이 분석한 '예방 가능한 사망률'은 32.6%였는데, 이는 응급실에서 사망한 환자 10명 가운데 3명은 살릴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한국형 권역외상센터 설립 타당성 및 운영모델 연구>(김윤, 2010년)에서는 위의 연구 결과를 전체 사망자에 적용해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2007년 한 해 동안 응급실을 찾았다 사망한 중증 외상 환자 2만 8359명 가운데 '예방 가능한 사망률'에 해당하는 32.6%, 즉 9245명은 살릴 수 있었다.

논문의 숫자들이 잘 와닿지 않는다면 아래 아주대 중증외상특성화센터장 이국종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바란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총상을 입었던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의 치료를 맡았던 그 외과의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다친 사람이 새벽 2시에 병원 돌다가 죽는 일을 본 적 있습니까. 저희는 매일 봅니다."(동아일보, 2012년 5월 5일)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한국 병원은 낮과 밤이 전혀 다른 모습이란 걸 한국인만 모르는 것 같"다며, "인력과 장비가 없는 대한민국의 야간 의료수준은 나이지리아만도 못하"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물론 돈 때문이다. 병원 입장에서 중증 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그 수고로움에 비해 별로 돌아오는 것이 없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중증 외상 환자를 위해서라면 수술실과 중환자실 침대 몇 개쯤은 늘 비워둬야 하며, 당연히 365일 24시간 자리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수(그것도 다양한 전공을 가진)의 숙련된 의사들과 간호사들도 늘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일에는 많은 돈이 든다. 그러니 병원 입장에서는 '물 먹는 하마'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여길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시장에 맡겨서는 도대체 답이 나올 수 없는 '시장 실패'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병원과 의사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을 위해 수많은 군 부대를 운영하고 수십만 명의 군인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을 시장에 맡길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부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쯤으로만 여기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의료 선진화의 암울한 미래를 경고하는 다큐 <하얀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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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하얀정글> ⓒ 제유필름

#4.

한씨는 2004년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살던 아파트를 담보로 4000만 원을 대출 받아 2년여 동안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결국 이자를 갚지 못하게 되자 아파트는 경매로 넘어갔고, 한씨는 어머니와 함께 월세 20만 원짜리 집으로 옮겨야 했다.

다행히 2006년 자가골수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러나 병원은 수술 보증금으로 2000만 원을 요구했고, 돈을 마련할 수 없던 한씨는 결국 치료를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3년 뒤인 2009년 3월 한 씨는 어머니를 홀로 남겨둔 채 아주 먼 곳으로 떠나갔다.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연출 송윤희)에 등장하는 여러 사연 가운데 하나로, MBC <PD수첩>(2009년 4월 14일)에 방영된 내용이기도 하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한씨가 죽기 전 그 동안 지불한 치료비 4000만 원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진료비 확인을 요청한 결과 약 1900만 원이 부당 청구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병원에서 요구한 수술보증금 2000만 원에 맞먹는 금액이다. 그러나 한씨는 결국 이 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죽었다.

<하얀 정글>은 이처럼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해야만 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의료 현실을 아프게 꼬집는다. 국공립병원을 비롯한 공공 의료 기관의 비율이 전체의 7.3%(2010년) 밖에 되지 않으며, 국민건강보험이 감당하는 의료비의 비율(보장율) 역시 62.7%(2010년)에 그치고 있는 우리의 열악한 공공 의료 체계가 이 같은 안타까운 죽음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0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국민이 쓴 의료비, 즉 국민의료비는 82조 7000억 원이었고, 이 가운데 국고 지원이나 사회보험 등 공공재원에서 나온 공공의료비는 48조 3000억 원으로 국민의료비 대비 58.2%에 그쳤다. 다시 말해 나머지 41.8%에 달하는 의료비는 고스란히 환자 개개인이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료비 대비 공공의료비의 OECD 평균이 72.2%라는 사실과 비교하면 우리 국민이 짊어져야 하는 의료비 부담이 얼마나 무거운지 짐작할 수 있다. 중간에도 한참 못 미치는 것은 물론, 우리보다 못한 나라는 칠레, 멕시코, 미국 세 나라뿐이다(보건복지부 <국민의료비추계 및 국민보건계정>, 2012 OECD Health Data).

<하얀 정글>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하얀 정글>이 정말 보여주려 한 것은 사실 우리 의료의 미래다. 이른바 '의료 선진화(민영화)'가 불러올 참담한 미래.

의료 선진화 정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주식회사 삼성병원과 같은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민간보험 시장을 지금보다 더 키워 국민건강보험을 대체하도록 하는 것이다. 민영화란 말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정부는 아직까지도 그럴 생각이 없다고 발뺌을 하지만, 지난 4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병원의 개설과 운영 등을 규정한 시행규칙을 입법 예고함으로써 인천 송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6개 경제자유구역에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세울 수 있도록 했다. 의료 선진화 정책의 첫 삽을 뜬 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하얀 정글>은 이렇게 그리고 있다.

"우선 수익성이 떨어지는 진료는 없어진다. 생명과 직결된 응급실이 축소된다. 중환자실도 최소화 된다. 대신 성형외과 등 수익성이 높은 진료는 고도로 발전한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간호사 수를 줄인다. 이 모든 것으로 생긴 수익은 영리 병원 투자자에게 배당금으로 돌아간다. 즉, 자본 투자자의 수입을 늘려주게 된다. 주식회사 병원들은 작은 중소기업 병원들을 합병하게 된다. 그러면 전국의 병원들이 대기업 산하로 계열화 된다. 이 병원들은 자기네 보험에 가입한 환자만 보려할 것이다. 그러면 건강보험을 들고 가는 사람들은 퇴짜를 맞는 것이다."

우리 모두 '돈 안 되는 환자'와 '돈 없는 환자'일 수 있다

드라마 <골든 타임>이 '돈 안 되는 환자'인 중증 외상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은 '돈 없는 환자'인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돈이 안 되거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살아갈 기회를 잃어버린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언젠가 당신과 나, 또는 우리 곁에 있는 누군가가 겪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이다.

마침 대선을 앞두고 대한민국 복지의 새로운 판을 짜려는 노력들로 분주하다.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매달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의료의 새 판을 짜기 위한 다시 없을 좋은 기회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박근혜 후보는 1970년대에 건강보험(의료보험) 제도를 만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아버지로 두었다. 문재인 후보는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을 비롯한 의료 산업화 정책을 처음으로 들고 나왔던 참여정부에서 일했다. 그리고 유력한 대선 후보 중에 한 명인 안철수 교수는 의사 면허를 가진 전직 의사다. 다들 우리 의료의 미래에 대해 할 말들이 참 많을 것이다.

비단 이 세 사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여러 후보들이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을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하다. 앞으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5년이나 10년 쯤 뒤에 <골든 타임>을 다시 보면서, 우리나라 병원들도 한때는 저렇게 따뜻한 곳이었다고 안타깝게 돌아보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의료민영화 #의료선진화 #골든타임 #하얀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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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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