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속 유일무이한 '땡땡거리', 이런 곳이 있었어

[사진여행] 두 개의 철길이 지나는 동네, 용산 백빈 건널목

등록 2012.08.26 16:04수정 2012.08.2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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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땡땡땡'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보았더니 보기드문 풍경이 나타났다. ⓒ 김종성


용산역에서 가까운 한강변 방향으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면, 어디선가에서 '땡땡땡 ♪' 경쾌한 종소리가 들려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된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게 녹음된 기계소리가 분명하지만 언젠가 들어본 듯한 소리다.

알듯 말듯 추억과 향수를 불러오는 소리에 이끌려 소리의 진원지로 자석처럼 빨려 들어갔다. 고층 아파트들과 빌딩사이에 숨어 있는 듯 존재하는 동네 골목길을 헤매다 마주친 그곳은 바로 용산 백빈 건널목. '땡땡거리'라고도 불리는 6,70년대의 풍경을 간직한 건널목 동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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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빈 건널목은 관리원 두 분이 근무를 하는 보기드문 서울속의 유인 건널목이다. ⓒ 김종성


이름의 유래를 궁금하게 하는 '백빈 건널목'은 서울 시내에서 보기 드문 철길 건널목이다. 관리원 두 분이 근무하는 유인 건널목이란 점도 이채롭다. 철도 건널목이 대부분 없어지는 추세에 더욱 희귀하게 느껴지는 곳. 나처럼 사진을 찍는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며 관리원 아저씨는 건널목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다.

위 사진 속 두개의 철길 중 하나는 중앙선 전철이, 다른 하나는 경춘선 열차가 오간다. 언뜻 여유로워 보이지만 하루 180회가 넘게 열차가 지나간다니 일하는 분들은 제대로 쉴틈도 없이 바쁘실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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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지나갈 것 같으면 '땡떙땡' 경보기가 울리며 차단봉이 내려온다. '땡땡거리'의 유래가 탄생하는 순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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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 전철, 경춘선 열차, 화물열차 등 다양한 기차들이 지나간다. ⓒ 김종성


한적했던 골목에 '땡땡땡' 신호음이 울리면 동네 풍경은 사뭇 달라진다. 어디선가 빨간봉을 손에 든 역무원 아저씨가 나타나고 '정지' 안내판이 달린 차단기가 내려오면서 지나가던 사람들과 차량들을 일제히 멈추어 세운다. 곧이어 중앙선 전철, 경춘선 열차, 화물열차 등 다양한 기차들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하루에 180번 넘게 기차가 지나간다니 그럴만하다. 이윽고 차단기가 올라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주민들과 차량들이 부지런히 제 갈길을 가는 모습도 이방인의 눈엔 이채롭게 비춰진다.

'땡땡거리'를 탄생시킨 '땡땡땡' 종소리. 예전에는 정말로 종을 쳤지만, 지금은 메모리칩에 녹음된 소리를 쓰고 있단다. 첨단화된 것은 종 뿐만이 아니다. 경보등은 LED 조명을 쓰고 있고, 건널목 주변에는 레이저 감지기를 부착했다. 건널목에 들어온 차량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으면, 감지기가 이를 감지하여 건널목 수백 미터 앞 선로변에 설치된 기관사용 경보기에 경보등을 켠다. 기관사는 건널목에 이상이 있음을 확인하고 미리 속도를 줄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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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지나가는 건널목 덕분에 평범한 서울의 어느 동네가 영화속의 한 장면처럼 바뀐다. ⓒ 김종성


백빈 건널목 동네엔 특이하게도 또 다른 건널목이 있다. 관리원 아저씨가 알려준 이름은 '삼각 백빈 건널목'. 이제 서울에 두어 개 남아있다는 용산 삼각선이라는 것으로, 삼각형을 이룬 우회 기찻길이라는 뜻이란다. 이곳은 관리원이 없는 무인 건널목이며 선로도 하나인 단선철로로 백빈 건널목의 동생쯤 되겠다. 이 두 건널목 사이가 바로 '땡땡거리'라고 불리는 공간이다.


건널목 바로 앞에 있는 80년대 학사주점이 연상되는 막걸릿집, 용산 방앗간, 연흥철물, 여천식당 등이 옹기종이 모여있다. 그 뒤에 높이 솟아있는 아파트들과 대비되어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특히나 추억의 동요 '기차길 옆 오막살이♪'를 연상하게 하는 낮고 오래된 집들이 건널목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같은 외지인들에겐 향수와 낭만을 주는 풍경이지만 철길 옆에 사는 주민들은 열차의 소음과 진동에 시달리겠다는 생각을 하니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잡고 있는 손도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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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기도 긴 화물열차가 지나갈때면 잠시 상념에 젖기도 하게 되는 철길 건널목 ⓒ 김종성


현대식 아파트와 빌딩 속 철길과 그 옆으로 줄지어진 작은 가게들, 골목길의 집들은 사진 애호가에겐 더없이 매력적인 풍경이다. 신호에 맞춰 차들이 서고, 자전거가 서는 모습이 영화나 TV 속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왜 많은 드라마, 영화감독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두고 촬영을 했는지 알 만하다. 이 건널목 동네에서 몇 분만 걸어가면 크고 현대화된 건물의 용산역이 있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용산의 '국제업무지구 조성사업'으로 이 건널목 동네도 머지 않아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도시 개발속에서도 이 유일무이한 서울 풍경만은 조화롭게 보존됐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ㅇ 위치 ;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3가 40-560 용산 방앗간 옆


덧붙이는 글 ㅇ 위치 ;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3가 40-560 용산 방앗간 옆
#백빈건널목 #용산 #땡땡거리 #삼각백빈건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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