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서 요트를 타다

[이집트 여행정보] 알렉산드리아편

등록 2012.08.27 18:22수정 2012.08.2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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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기엔 아직 이른 계절이었다. 일정을 잡고 구체적인 세부계획까지 면밀히 검토해놓고도 그것이 반드시 지켜지리라 믿지 않은 것은 앞으로 여행할 알렉산드리아에는 내오랜 벗이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할 것도 없이 늘하는 바다수영이나 해변로에서 자전거타기 외에 좀 더 색다른경험이 하고 싶어졌다.

우리는 몬타자궁전의 앞뜰을 거닐며 곰곰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몬타자브릿지를 거의 다 건넜을때 요트클럽 간판이 보인 것은 정말로 우연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비싸다던데…여기도 그럴까?"
"우리는 클럽회원이 아닌데에도 받아줄까?"

시작부터 걱정이 많이 들었지만, 저기 바다 위에 둥둥 하릴없이 떠있는 요트 가운데 한 대쯤 타봐도 되느냐고 묻는다고 해서 우리가 손해 볼 일은 없었다. 돈 낸 다니까! 얼마야? 얼마면 돼?

사실 우리들의 지갑은 얇았지만, 외국인 얼굴들을 하고 요금을 깎겠다고 시도하고 싶지는 않았다. 시장 물건도 아니고 명색이 요트 클럽이니 말이다. 다행히 클럽 입구의 카운터에는 회원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서 규정 가격표가 있었다. 일단 거절을당하지 않아서 우리는 기뻤다.

a  티켓을 사고 있는 친구와 우리 아이들

티켓을 사고 있는 친구와 우리 아이들 ⓒ 서주


항해시간 한 시간짜리는 너무 비싸고, 15분짜리는 가다가 말 것 같았다. 우리는 중간인 30분 정도가 가격 면에서도 그렇고 행여나 아이들이 힘들어 할 지도 모르므로 길지 않아 적당하다고 결정했다.

틀림 없이 30분짜리 티켓을 끊었는데, 딱히 정해진 요트는 없었다. 직원이 우리들을 정박한 요트들 쪽으로 데려가더니 요트 주인에게 의사를 타진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두 요트의 주인들이 렌트를 허락해주었다.


아주 작은 요트였지만, 우리 일행 다섯 명이 타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구명조끼를 구비한 요트는 둘 중에 아무도 없었다. 요트 주인들은 우리를 쳐다 보며 '거 참 까탈스런 외국인들..'이라는 표정을 지었고, 친구는 자신은 수영을 할 줄 아니까 조끼 네 개만 있으면 된다고 한 발 물러섰다. 나는 강력하게 친구를 말렸다.

"수영은 나도 해. 하지만 바다수영은 달라. 아이들은 너무 어리고. 얼마나멀리 갈지 모르는데 반드시 있어야만 해"


나는 티켓을 물릴 각오를 하고 구명조끼를 우리숫자대로 구해오라고 직원에게 요구했다. 분명히 해상안전사고에 대한 부분도 티켓에 명시되어있었다.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사고라도 났다면 장비를 제대로 갖춰 승선하지 않은 우리 책임이 더 클 것이었다.

즐기려고 왔는데 목숨을 거는 기분으로 배를 탈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게다가 요트를 처음타보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날이 배 승선 이전에 어떤 준비물을 갖춰야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다행히 큰 분란없이 직원은 정박 중인 요트들에서 한두 개 씩 빌려와 숫자를 맞춰주었다. 일행중가장 막내인 마리는 신나라하면서도 요동치는 요트가 무서웠는지 승선 내내 내 친구 품에 꼭 안겨있었다.

a  여기저기서 얻어와 서로 다른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내 친구C와 우리 마리

여기저기서 얻어와 서로 다른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내 친구C와 우리 마리 ⓒ 서주


요트는 세차게 물살을 가르며 순식간에 정박지를 벗어났다. 요트가 아담하다보니 요동이 심해 꼭 붙잡고 있느라 양 팔이 쑤실 지경이 되었다. 그래도 그 속도감에 신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여 우리는 마음껏 터져 나오는대로 비명을 질러 대었다.

우리 요트맨은 할아버지셨는데 요트 주인은 아니고 요트 지기인 것 같았다. 소리를 지르는 외국인들을 처음 봤는지 연신 빙그레 미소를 지으셨다.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망망 대해 한가운데에 우리만 달랑 있었다.

우리 주위로는 그 흔하던 수상제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여기에 상어가 나오느냐고 은근히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기도 했다. 아이들은 틀림없이 즐기고 있는데 나는 온통 머릿 속으로 '이 요트가 전복되면 우선 요트 몸체를 붙잡고 애들을 하나씩 잡아와서…' 어쩌고를 궁리하느라 뒷골이 욱씬거릴 지경이었다. 친구C는 그런 나를 보고 도리질했다.

"즐겨, 아미라. 즐기라구! 좋잖아-"

그제서야 나는 다시 내 주위를 바다를 하늘을 돌아보았고, 할아버지는 요트의 속도를 약간 늦춰주셨다. 바다는 굉장히 짙푸른 색이었고 금세라도 돌고래 몇마리는 튀어올라올 것만 같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래서 눈이 시릴 지경이었다.

요트를 붙잡고 있던 양손을 떼고 두 팔을 넓게 벌려 심호흡을 하니 폐부 깊숙히까지 지중해의 내음이 밀려들어왔다. '아, 그렇지. 여기가 지중해야… 그래, 여기가 지중해야'

나는 새삼스레 내 자신이 지중해 위에 떠있다는사실을 깨달았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멋진 추억인가. 내가 요트를 타고 지중해를 항해했다는 사실이!

a  회항하는 길에

회항하는 길에 ⓒ 서주


물론 항해를 한 시간은 30분에 불과했지만, 그날의 추억은 나와 친구와 아이들의 평생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 틀림없었다. 회항하는 길에는 출항할때 비명을 지르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다리와 주변경관들과, 그리고 고대로부터의아름다운 도시 알렉산드리아 해변까지도 아주 천천히 살펴볼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위 원고는 네이버의 <마담 아미라의 이집트여행> 카페에도 동시에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위 원고는 네이버의 <마담 아미라의 이집트여행> 카페에도 동시에 실립니다
#알렉산드리아 #지중해여행 #이집트 #몬타자요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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