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김에 성폭행'이 변명거리 되는 나라

'결혼이 성범죄 대책'이 된다는 지도층도 역겹다

등록 2012.09.01 10:59수정 2012.09.01 10:59
0
원고료로 응원
질투가 힘이 된다는 말에 동감한다. 그런데 분노도 굉장한 힘이 되나보다. 한동안 글쓰기를 멀리하던 나는 지금 분노에 휩싸여 노트북 자판을 두드려대고 있다. 머릿속 생각을 손가락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전남 나주에서 8살 아이가 이불에 싸인 채 납치되고 성폭행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땐 그냥 머리가 아프기만 했다. 아이는 으슥한 골목길을 혼자 다니다 그런 것도 아니고 집에서 부모랑 같이 자던 중에 이불 채 납치됐다는 상황이 어이없을 뿐이었다.

그런데 후속보도에 따르면 용의자가 잡혔고 자백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피의자가 '술을 많이 먹어 정신이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하는 대목에서 토할 것 같은 분노가 일었다. 온 나라가 다 아는 조두순이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12년형만 받았던 것도 '술김에 그랬다'는 논리가 통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았던가. 나주의 용의자도 '술김에…'란다. 

이번 사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단다. 해당 경찰서가 얼마나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을지 어렴풋 상상이 된다. 임기 말의 대통령이 분연히 나섰으니 뭔가 달라질까. 기대는 안한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술김에…'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자주 절감하니까.

'술김에…'라는 말이 통하는 한국, 절망스럽다

조두순이 12년만 있으면 자유로워지는 것도 '술김에…' 힘이고 국회의원이 성추행을 저질러도 '술김에…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재선에 성공한다. 일반 시민들도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술김에… 정신이 없어서'라며 깊이 고개를 숙이면 선처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술김에…'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술 때문에 심신이 미약해지고 사리분별을 할 수 없었다'는 피의자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납득한다는 말이다. '의도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에 공감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술김이 다시 설득력을 얻는다면 나는 이런 것들을 스스로 납득해야 한다.


알코올이 온 몸과 정신을 지배해 어디에 있는지, 무슨 짓을 하는 지도 몰랐던 나주의 그 피의자는 가정집에 살금살금 들어가 가족들이 아무도 기척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행동을 최소화하면서 아이를 이불 채 싸들고 나올 수 있었다. 만취해 자신이 어디를 가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인적이 드문 다리 아래로 아이를 끌고 가야한다고 판단했으며,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아이 몸 속 대장이 파열되고 중요부위가 찢어질 정도로 '짐승짓'에 열중했다.
   
밤길에 성폭행을 당하면 '피해자가 밤늦게 돌아다녀서…', 술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하면 '그런 자리에 동석을 했으니까…' 등등의 이유를 대면서 피해자가 사건 유발을 시킨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 사회가 우리나라다.

나주 사건에선 어쩌면 거실이 밖에서 빤히 보이는 집인데도 문단속을 하지 않아서거나 엄마라는 사람이 사건 당일 피시방에 있다가 밤늦게 와 애가 없어진 줄도 모른 게 문제라는 식으로 피해자 가족을 비난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벌써 포털사이트 뉴스 중에는 범인이 엄마의 피시방 지인이고 엄마가 게임중독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떴다.


어쩌면 '결혼을 못해서…'라는 변명이 통할지도 모르겠다. 집권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성범죄 막으려면 결혼을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라이니 말이다. 우리나라 성폭행 가해자는 변명할 거리가 참 많다. 나주의 피의자가 '미혼이었던데다 술김이었고 보호자가 아이를 충분히 보호하지 않아 나로선 불가항력 상황이었다'고 주장하며 '평생 속죄하며 살겠다'고 눈을 내리깔면…. 이번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지켜보겠다.   
#술김에 #나주 성폭행 #이불 #결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고장난 우산 버리는 방법 아시나요?
  2. 2 마을회관에 나타난 뱀, 그때 들어온 집배원이 한 의외의 대처
  3. 3 삼성 유튜브에 올라온 화제의 영상... 한국은 큰일 났다
  4. 4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현상들... 서울도 예외 아니다
  5. 5 "과제 개떡같이 내지 마라" "빵점"... 모욕당한 교사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