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유창복 센터장이 11일 오전 서울 은평구 녹번동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개소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유성호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 직후 "서울에서 마을을 숨쉬게 하자"라고 마을만들기를 중요한 시정 방향의 하나로 제시하였다.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응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기대와 우려'였다. 거대도시 서울의 시장이 마을만들기에 대하여 시행정의 중요 시책으로 삼는다는 것은 10년 넘게 동네에서 골목에서 힘겹게 해온 풀뿌리들의 주민활동을 의미 있게 평가한다는 것이었기에 무척 반가운 것이었다. 나아가 메트로폴리탄 국제도시 서울의 수장이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에 대한 고민이 마을에 닿아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려가 깊었다. 서울시의 그 거대한 관료조직이 박 시장의 추진력을 업고 '마을을 만들겠다'고 나서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당이 안 될 거라는 우려였다. 이는 그동안 정부 주도의 마을만들기 정책이 야기한 부작용을 경험을 통해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타당한 우려였다.
1년의 호흡과 10년의 호흡 어떻게 조화시킬까 관 주도의 마을만들기 정책의 문제점은 크게 칸막이행정, 형식적 거버넌스, 조급한 성과주의,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먼저, '칸막이 행정'. 정부의 모든 실국이 각기 마을정책을 수립하고, 시장이 강조하는 정책이니 많은 예산과 조직을 동원할 것이 불 보듯 했다. 이를테면 복지관련 부서는 복지마을을, 문화관련 부서는 문화마을을 만든다고 달려들 것이라는 것이다. 정작 그 현장인 마을에서는 문화와 교육, 복지와 경제가 따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한데 엉켜 돌아가는 '종합판'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들이 모두 칸막이를 치고 각개약진 하는 식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경쟁적으로 말이다. 이때는 공무원이 열심히 일을 하면 할수록 마을현장은 골치 아프게 된다.
다음으로 '형식적 거버넌스'. 민관 거버넌스, 즉, 협치(協治)는 민과 관이 대등하게 협력하여 행정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인데, 현실은 관주도의 변형이고 민간은 그저 행정전달체계의 말단부에서 공무원의 업무를 대행하는 정도에 머물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각종 자문위원회도 의사(의사) 공공성 공간에 불과하다. 요식으로 민간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만 그 의제는 공무원이 정하고, 그 자문의 방향과 내용은 대개는 공무원이 미리 강구한 바대로 진행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마을만들기가 이렇게 된다면 큰일이다. 다른 정책분야는 몰라도 마을만큼은 마을에 실제 살고 있는 주민들이 자신들의 필요를 잘 알며, 그 해결의 방향 역시 잘 안다. 설사 정책 방향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더라도, 주민들 스스로가 필요를 인식하고 해결의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주체가 되고, 그 일에 책임과 열의를 가지게 된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거버넌스가 실현될 것이다.
'조급한 성과주의' 이야기를 해보자. 행정은 항상 가시적인 성과에 골몰한다. 시민의 세금을 쓰니 그 세금이 헛되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공복으로서 당연한 책무이다. 하지만 그 성과가 정책의 진정한 효과를 측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눈에 띄는, 계량이 용이한 가시적인 양적 지표에 매달리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간을 짓거나, 참여자 숫자 등에 집착하다 보니 정작 챙겨야 할 정책의 질적 효과는 뒤로 밀리는 경우가 있다. 또한 정부는 1년을 단위로 돌아간다. 그래서 성과를 1년 단위로 측정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6개월도 안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연초에 사업집행계획 수립하고, 4~5월에 공모하여 5~6월에 집행하면, 10~11월이면 벌써 평가를 위한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마을은 크게 보면 10년 정도의 주기로 그 성과가 드러난다. 10년은 아니어도 1년 단위의 하루살이식 성과 측정은 도리어 마을의 호흡을 거슬려 일의 성과를 그르치게 되고 만다. 1년의 호흡과 10년의 호흡을 어떻게 조화시킬까?
"도대체 마을이 무엇이냐?" "어디에 있나?" 혼란스러웠지만...
결론은 '주민주도형' 마을만들기였다. 이 점은 풀뿌리 활동가들의 공통된 처방이었다. 박원순 시장 역시 누구보다 공감하는 원칙이었다. 그리하여 서울시의 마을만들기 정책의 중심은 공무원 조직이 아니라, 민간이 주도하는 중간지원조직으로 된다. 정부는 마을공동체 담당관이라는 과 단위의 조직을 두기로 한다. 중간지원조직은 조례에 기초하여 정부가 설립하되, 그 운영은 민간이 위탁하여 인사, 조직, 사업 등 운영상의 자율성을 보장하기로 한다.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이하 '마을지원센터')가 그것이다. 마을지원센터는 위탁공모를 통해 (사)마을이 위탁받아 운영키로 되었으며, 지난 11일 개소식을 하고 공식 업무를 개시하였다.
관건은 주민주도를 실현할 주체를 세우는 일이었다. 마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마을사업을 해오던 풀뿌리단체들이 있고, 취약계층들을 중심으로 주민사업을 펼쳐온 복지단체들도 마을만들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보육과 육아, 아동청소년의 교육 등의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웃의 관계망을 형성한 주민주도형 마을들도 마포구 성미산마을을 비롯하여 삼각산 재미난마을, 동작구 성대골마을 등 서울에 이미 여러 곳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주민자치위원회를 중심으로 마을만들기를 하여 상당한 성과를 낸 곳도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마을만들기의 경험과 활동들을 토대로 서울시의 마을만들기 정책을 수용할 수 있는 민간주도의 주체가 될 민간차원의 파트너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풀뿌리 단체는 물론, 이미 마을살이를 하고 있는 다양한 주민들을 포괄하는 다양한 마을살이의 주체들이 자유로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이 필요했다. 모여서 마을이야기를 나누고, 하고 싶은 사업계획을 세우고, 서로 경험과 자원을 교류하는, 주민과 활동가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론장이 필요했다.
민간의 풀뿌리 활동가와 주민활동의 주역들은 자치구별로 마을조사를 벌였다. 마을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와 기관, 주민들을 발굴하고 사업의 내용과 여건을 조사하는 것이 1차적인 목적이었지만, 조사를 통해 그간 알지 못했던 기관이나 단체들을 발굴하고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되었으며, 자치구별 민간네트워크(일명 '마을넷')의 구성으로 연결되었다. 지금은 서울 25개 자치구 중 20여 개의 마을넷이 구성되어 정기적인 회의를 하고 있으며, 공식적인 단체를 설립한 곳도 있다.
마을넷이 자치구 마다 구성되고 논의의 밀도를 높여가고 있었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당초에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주민들의 등장이 미흡했다. 주로 풀뿌리단체와 복지단체 등 기관들이 주로 등장하였다. 서울 차원의 집담회가 몇 차례 열렸지만 아직 지역의 일반 주민들이 등장하기에는 3, 4개월은 턱없이 이른 시간이다. 마을활동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단위가 직접 호명될 필요가 있었다. '동네마을넷'이 그것이다. 2차 마을조사에 들어갔다. 실제로 마을이 형성되고 마을활동이 이루어지는 단위로 더 들어간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서초강남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치구에 크고 작은 마을이 이미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수가 대략 80여 개가 넘었다.
마을의 호명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호명된 마을이 바로 마을만들기 사업의 주체이자 사업의 단위가 된다. 동시에 사업의 성과가 축적되는 단위이며, 평가가 이루어지는 단위이다. 공무원들도 비로소 '사업지'가 눈에 들어오자 그간의 오리무중의 혼돈에서 빠져나오는 듯했다. "도대체 마을이 무엇이냐?" "어디에 있나?" "누구와 마을만들기를 해야 하나?" 등등 1/4분기 내내 무척 혼란스러워 했는데 이제 그 사업대상이 눈에 들어오자 다소 안도하는 눈치였다.
지원은 '깔대기'식으로, 평가는 '마을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