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연이네 가족. 아빠(황보석씨) 엄마(김진영씨) 그리고 황보혜연
추연만
여기, 한 아빠(황보석·42)가 있다. 이 아빠는 딸(황보혜연·9·자폐성장애3급)만 바라보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다. 남들 눈에는 부족하고 모자란 아이로 보일지 몰라도 아빠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귀한 딸이기 때문이다. 딸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이 아빠는 세상에 둘도 없는 '딸 바보'임이 분명하다.
2.3kg의 저체중아로 세상에 나온 혜연이. 혜연이가 두 살이 되던 무렵, 딸이 두세 차례 경기를 일으킬 때 아빠는 딸에게 큰 문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사는 '코넬리아드랑게 증후군'(성장장애·정신지체·다모증·골격과 외모의 이상 등을 특징으로 하는 선천성 희소병)이라는 희귀 질환이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
좀 더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큰 병원이라는 큰 병원은 다 다녀봤다는 아빠. 혜연이가 다섯 살 되던 때, 보통 아이에 비해 뇌간이 좁아 지능과 근육발달 등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자폐성장애)를 확진받았다. 다행히도 코넬리아드랑게 증후군은 아니었다.
젖조차 제대로 빨지 못해 주사기로 분유를 흘려 넣어주던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감격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게 가슴 벅찬 시간이 또 있었을까. 그러나 기쁨도 잠시. 혜연이는 한 학기 만에 학교를 나와야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딸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당시 혜연이가 학교에서 받았을 충격과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혜연이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아비로서 말로 할 수 없이 속상하고 화가 나지요. 꼬집혀서 피를 줄줄 흘리고 온 날도 있고, 여기저기 다쳐 오는 날도 많았어요. 친구들의 따돌림과 집단 괴롭힘, 선생님들의 무관심, 다른 부모님들의 불편한 시선... 혜연이도 저희 부부도 참 힘들었습니다."지금 혜연이는 밀알학교(장애인 특수학교) 초등부 2학년에 재학 중이다. 혜연이는 일반학교에서 1학년 한 학기를 마치고 반 년을 쉰 뒤, 다음 해 밀알학교로 전학갔다.
통합교육이란? |
일반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학생을 장애유형이나 장애정도에 따라 차별을 두지 않고, 비장애 또래학생들과 함께 교육받게 하는 방식. |
혜연이는 자폐성장애3급으로 일반아이들에 비해 근육발달과 지능·언어기능 등이 떨어지는 아이다. 하지만 경계성지능장애(IQ 71~84사이의 지적능력을 갖춘 아이)로 보일 만큼 상태가 양호해 일반학교 아이들과 통합교육을 받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실제 학교생활은 쉽지 않았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아직은 혜연이와 같은 장애아를 품고 배려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입학한 뒤 두 달간 혜연이는 한 번도 여자화장실을 사용해보지 못했습니다. 옆 반 아이들이 혜연이가 화장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여자화장실 문을 막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혜연이가 의사를 잘 전하지 못하는 아이다 보니 (저희도) 두 달이 넘도록 모르고 있었어요."어느 날, 우연치 않게 그 장면을 보게 된 엄마(김진영씨·37)는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엄마의 심정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왜 여자 화장실에 들어오는 것을 막았느냐'는 질문에 별일 아니라는 듯 해맑게 웃으며 "장난이에요"라고 답했단다.
철없는 아이들을 야단치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나 싶어 선생님을 찾아갔다. 두 달 넘게 집단 괴롭힘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선생님 역시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남자아이들이 혜연이가 남자화장실을 사용한다고 일러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혜연이를 야단친 적은 있다고 했다.
장애아의 입학통지서... 부모는 고민에 빠진다
▲혜연이 아빠 황보석씨는 혜연이가 보호자의 돌봄 없이도 행복하게 살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추연만
친구들은 여자화장실 가는 것을 막고, 선생님은 혜연이에게 왜 그랬느냐는 이유도 묻지 않은 채 남자화장실에 가면 안 된다고 혼을 낸 것이었다. 이를 알고 있는 친구들도 혜연이의 편이 돼 주지는 않았다. 혜연이 엄마는 아이들보다는 선생님에게 서운한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선생님께서 혜연이를 좀 더 배려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초등학교 1학년은 선생님이 하늘이고, 선생님 말씀이 최고거든요. 선생님이 '장애가 있는 친구를 도와줘야 한다' '배려해야 한다' '놀리고 따돌리면 안 된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이렇게 가르쳤다면 아이들도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분은 좋은 선생님이였지만, 통합교육이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부족했던 것 같아요."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대부분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통지를 받고 일반학교와 특수학교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힘들더라도 일반 아이들과 섞여 지내며 그 속에서 발전을 기대할 것인지, 아니면 장애를 인정하고 특수학교에 보내 장애인으로서의 교육을 받게 할 것인지를 말이다. 아예 장애 정도가 심해 특수학교를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무엇이 내 아이에게 맞는 결정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특수학급이란? |
정신지체아·시각장애아·청각장애아·지체장애아 등 특수교육 대상자의 통합교육을 위해서 고등학교 이하의 각급 학교에 설치된 학급. |
장애아를 일반학교에 보내는 것도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겪어야 할 어려움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장애아들을 위해 만들어진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이 되레 장애아들을 그들과 분리시키고, 놀림과 차별의 원인을 제공하는 이유가 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일반 아이들은 장애아들을 비하해 '특수'라고 놀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차별과 왕따, 심지어 손쉬운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것이 통합교육의 또 다른 현실이다.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는 통합교육 제도 안에서 장애아들은 오히려 혹독한 차별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혜연이의 일반학교 생활은 짧았지만, 통합교육의 문제점에 그대로 노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구들의 왕따와 집단 괴롭힘, 통합교육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교사들의 무관심과 배려부족, 학교에 배치된 전문 인력의 절대적 부족 등은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혼자 남아 밥 먹는 아이... 그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