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차에 뛰어든 아이, 이제 커피를 만듭니다"

[장애아 부모로 산다는 것⑤] '커피프린스' 관태와 어머니 필감려씨

등록 2012.09.27 14:01수정 2012.10.2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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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커피를 판매하고 있는 관태 ⓒ 추연만


"어서 오세요.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네, 감사합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굿윌스토어(장애인직업재활시설)를 찾은 날 관태(본명 이관태·22)는 매장 내 카페에서 커피를 판매하고 있었다. 주문한 커피를 만들기 위해 익숙한 손놀림으로 커피 머신을 조작하는 모습이 여느 카페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들과 다르지 않다. 손님들 반응에 따르면 관태가 만드는 커피는 특별히 맛도 좋단다. 좋은 솜씨와 준수한 외모, 이 정도면 관태를 송파의 '커피프린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저는 모든 일에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우리 관태가 이렇게 일을 하게 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거든요. 손자 걱정만 하다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관태를 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싶어요."

관태는 발달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청년. 장애인특수학교인 밀알학교를 졸업하고 1년의 전공과정을 마친 후 바로 이곳에 취업한 관태는 취업 1년 3개월 만인 지난 7월에 훈련직원 딱지를 떼고 당당히 정식직원이 됐다. 한 달에 70여만 원의 월급을 받는 관태. 엄마(본명 필감려·50)는 관태가 받는 월급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기 몫을 해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울 뿐이다.

"산만하고 고집 세고, 말썽 피우는 아이였지만 그게 장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주변에서 조심스럽게 자폐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남편도 시어머니도 펄쩍 뛰더라고요. 저 역시 내 아이에게 장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고요. 그러다 보니 다섯 살이나 되고 나서야 진단을 받았어요. 병원에서 뇌 엑스레이 찍고 뇌파 검사도 하고... '유사자폐'라는 진단을 받았지요. 그때는 앞으로 관태와 살아갈 게 무섭고 두려워서 눈물만 나더라고요."

보통 아이들보다 말이 늦은 아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만지고, 엎지르고, 떨어뜨리고, 다치는 아이. 화장대 위에 올려놓은 화장품을 다 쏟아 얼굴에 바르는가 하면 복사기에 얼굴을 대고 복사 버튼을 누르기도 하고, 자동차를 만져보고 싶어 도로에 나가 두 팔 벌려 달려오는 차를 가로막는 아이. 잠시만 눈을 떼면 다치고 망가뜨리고 엎지르고 깨뜨리고 사고를 내는 아이가 관태였다. 오죽하면 어릴 때 찍은 관태 사진은 멈춰 있는 동작이 거의 없다고. 사진 속 엄마는 늘 달아나는 관태를 잡으러 가는 모습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게 제일 무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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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태 곁에서 늘 관태를 지켜보는 어머니 필감려씨 ⓒ 추연만


"산만하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것에는 무척 강한 집착을 보였어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스케치북만 하나 들려주면 조용해졌어요. 하지만 누가 스케치북을 만지기라도 하면 난리가 나는 거예요. 건드리지만 않으면 아무 일도 없는데... 애들이 어디 그런가요? 그러다 보면 애들과 싸움이 나기도 하고, 소란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랬죠."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돼서야 장애인 등급을 받은 관태. 엄마는 그때까지도 아들의 장애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장애인으로 등록하는 것.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별것 아니었는데, 그땐 왜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몰라요. 마치 아이를 버리는 것 같더라고요. 엄마가 애를 장애인으로 낙인찍고 앞으로의 삶도 장애인으로 살도록 결정해버리는 것 같아서요."

장애등급을 받기 이전 관태는 특수학급도 없는 일반학교에 입학했지만 다행히도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관태가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잠시 동안이었지만 선생님의 배려로 엄마와 함께 수업을 들을 수도 있었다. 이후에도 엄마는 늘 복도에서 관태의 수업을 지켜볼 수 있었다.

"사실 학교 보내는 것이 제일 무서웠어요. 수업 중에 교실을 막 돌아다닐 수도 있고, 친구들과 승강이를 벌이다 물거나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싫다고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거나 고집을 부릴 수도 있잖아요... 아무튼 학교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관태 곁을 떠날 수가 없더라고요. 오죽하면 교감 선생님은 제가 방과후수업 교사인 줄 아셨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들의 배려와 엄마의 보호 덕분으로 관태는 어렵지 않게 초등학교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과정부터 엄마는 관태에게 일반학교 과정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관태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동급생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눈에 띄게 차이가 났다. 친구들은 몰라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관태는 입학 때와 그리 달라진 게 없었던 것이다.

친구들의 태도 역시 초등학교 저학년 당시와는 사뭇 달라졌다. 약하고 만만해 보이는 아이였던 관태는 거친 친구들의 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그걸 알면서도 그대로 두는 게 아이를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했고, 결국 관태를 특수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특수학교로 전학할 때도 장애인등록을 할 때처럼 아이를 버린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힘이 들어도 비장애아들 속에서 공부하며, 저들과 함께 살도록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것을 포기하고 특수학교에 보내 아예 장애인을 위한 교육만 받게 하는 건 아닌가 했지요."

시간이 지나고 나니 특수학교로 옮긴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전학을 온 후 관태의 행동, 표정, 습관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특수교육 전문가들이시니 아이를 대하는 방식도 달랐죠. 일반학교에서는 수업참여가 거의 되지 않았지만, 특수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진행하니까 힘든 아이들도 한 번씩은 해 볼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고요. 특히 제가 많이 편해졌어요. 운동도, 특기 수업도, 학교에서 다 해주니까 데리고 다니지 않아도 됐고요.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는 못했지만, 수업하는 동안 나름대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런 시간조차 없었다면 저도 우울증에 시달려 힘들었을 거예요."

일반학교에서는 부족하고 모자라며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아이였던 관태. 하지만 특수학교로 옮긴 후 달라졌다. 관태는 자기보다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게 됐고, 선생님과도 주고받는 대화가 가능한 관계로 발전했다. 일반학교에 있었다면 쉽게 기회를 누리지 못했을 특기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비올라와 바리스타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직도 모자란 장애인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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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솜씨로 커피를 내리는 관태 ⓒ 추연만


"고등학교 때 우연치 않은 기회로 비올라를 잡게 된 것이 인연이 돼 장애인 오케스트라 '사랑챔버'에서 활동한 지 4년이 돼 가요. 바리스타는 고등학교 때 밀알학교 2층에 있는 요한 카페에서 직업체험을 하면서 배웠고요. 비올라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거부하지도 않아요. 싫으면 바닥에 드러눕는 아이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죠. 관태는 바리스타 일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맛 좋은 커피를 만든다는 칭찬도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굿윌스토어에 와서도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카페 일만 하려고 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어요."   

입사 초기부터 관태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는 박용수 간사는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관태가 직장 생활에 잘 적응하고 일도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어머님 말씀대로 처음에는 카페 일만 하려고 했어요. 카페 직원들이 3교대로 일을 하니까 카페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다른 일도 해야 했죠. 그런데 관태는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라고요. 책을 좋아해서 업무시간에도 종종 구석에 앉아 책을 보기도 했고요.

관태 같은 친구는 말로 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동기 부여를 하는 쪽이 낫겠다 싶었어요. 예를 들어 '훈련직원 월급 10만 원으로는 네가 좋아하는 치즈 타르트를 100개, 카페모카 40잔을 살 수 있지만 정식직원이 돼서 월급 50만 원을 받게 되면 치즈타르트 500개, 카페모카 200잔을 살 수 있다'고 했죠. 그리고 '정식직원이 되려면 책은 쉬는 시간에만 봐야 하고, 매장 바닥에 쓰레기를 줍거나 계산대의 옷걸이를 비우는 일도 해야 한다'고 알려줬어요."

방법은 효과적이었다. 관태는 자신이 좋아하는 치즈타르트를 500개, 카페모카 200잔을 살 수 있을 만큼의 월급을 받기 위해 하기 싫어하는 매장 일도 했고 일하는 시간에 책을 보는 버릇도 고쳤다. 관태는 매장에서 일하는 다른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쉬는 시간일지라도 받은 주문에 대해서는 서빙을 해야 한다는 융통성도 배웠다.

"관태는 비교적 수월하게 취업이 됐지만, 취업이 되지 않았다면 저도 힘들었을 거예요. 성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주단기보호시설이나, 장애인복지관이 있지만 워낙 시설 수가 적다 보니 대기 인원만 수십 명이라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예요. 저도 아이를 위해 뭐라도 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다녔겠지요. 갈 데가 없다고 집에다 아이를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은 아이가 성장하는 것이 두렵다. 정신연령과 여러 신체 기능은 여전히 장애아에 머물러 있는 채 졸업할 나이가 됐다는 이유로 무작정 학교에서 밀려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졸업 후의 상황이 막막한 것이다. 말이 졸업이지 졸업 후 받아줄 직장도, 시설도 제대로 없다 보니 실제로는 가정으로 돌려 보내진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라 하겠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이 가장 두려운 것이 아이가 커가는 거예요. 나이를 먹고 학년이 올라가다 보면 자연히 졸업을 해야 하는데, 졸업을 하고 나면 갈 데가 없거든요. 다른 엄마들도 농담반 진담반 그런 소리를 해요. '고등학교를 한 10년쯤 다니면 좋겠다'고요. 그런 부모들을 위해서라도 장애인들을 위한 일터와 주단기보호시설·복지관 같은 게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카페 관리자가 되고 싶다는 관태, 그 꿈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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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에 위치한 장애인직업재활시설 굿윌스토어 ⓒ 추연만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관태가 주 5일을 근무하고 받는 월급은 세전 70여만 원 정도(시급 4580원). 이 정도의 월급으로는 완전한 자립은 어렵다. 하지만, 능력에 따라 월급이나 인센티브에 차등을 둬 완전한 자립이 가능한 수준까지 임금을 현실화하겠다는 게 굿윌스토어의 계획이라니 관태의 경제적 자립도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저는 이관태입니다. 나관중 삼국지를 좋아합니다. 게임은 한 시간만 합니다. 월급타면 혜림이 맛있는 거 사줄 겁니다. 형도 사줄 겁니다. 어머니도 사줄 겁니다. 친척들도 사줄 거예요. 커피랑 빵, 맛있는 음식을 사줄 거예요."
"관태야, 혜림이한테 놀러 오라고 해. 혜림이도 좋아할 거야."

관태는 자폐장애인치고는 낯가림도 적고 비교적 대화가 수월한 편이다. 엄마 말로는 일을 하면서 아이가 부쩍 성장했다고. 일을 통해 자존감도 높아지고 사회성도 좋아진 것이다. 관태 입에서 '혜림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엄마는 재미있다는 듯 받아친다.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 관태가 유일하게 반응하는 친구가 혜림이다.

"혜림이는 관태의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초등학교 2, 3, 4학년 때 쭉 같은 반이었어요. 관태를 많이 도와주던 속 깊은 아이였지요. 혜림이는 지금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같이 만나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거든요. 관태가 어디서 봤는지 혜림이 커피에 빨대를 두 개 꼽아서 같이 먹자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혜림이 앞이라 방귀도 참았다고 하더라고요. 관태가 그런 걸 아는 게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자폐성 장애인이라고 해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지 못하라는 법도 없지만 엄마 눈에 관태는 여전히 누군가를 책임지기보다는 보호를 받아야 할 아이다. 아이가 어른이 된 친구를 향해 '불가능한 어른의 꿈'을 꾸는 것 같아 안쓰러운 것이다.

"관태의 먼 미래를 생각해보진 못했어요. 아이의 미래를 위해 공동생활 시설을 준비하며 돈을 모으는 부모님들도 있고, 사회복지 공부를 해 스스로 전문가가 되려는 부모님들도 계시지만... 저는 부족한 사람이라 그런지 그런 계획도 없어요. 그냥 하루하루 관태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게 전부랍니다. 조금씩 독립을 연습시켜 부모가 떠났을 때도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겠지만, 관태 스스로 나가지 않는 한 억지로 떼어 놓지는 않겠다는 게 남편과 제 생각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관태에게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관태는 또박또박 답했다.

"관·리·자가 되고 싶습니다."

정식직원 3개월 만에 지점장을 꿈꾸는 관태. 관태는 욕심 많고 야무진 청년이다. 관태가 품은 꿈이 꼭 이뤄지길 기원하며 나 역시 10년 뒤, 20년 뒤 중년의 나이가 된 관태가 지점장이 되는 날 또 한 번 멋진 인터뷰를 해보리라 마음 먹는다.

'꿈은 이뤄진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 날이다.
#굿윌스토어 #밀알복지재단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이관태 #사회적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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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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