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태 곁에서 늘 관태를 지켜보는 어머니 필감려씨
추연만
"산만하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것에는 무척 강한 집착을 보였어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스케치북만 하나 들려주면 조용해졌어요. 하지만 누가 스케치북을 만지기라도 하면 난리가 나는 거예요. 건드리지만 않으면 아무 일도 없는데... 애들이 어디 그런가요? 그러다 보면 애들과 싸움이 나기도 하고, 소란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랬죠."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돼서야 장애인 등급을 받은 관태. 엄마는 그때까지도 아들의 장애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장애인으로 등록하는 것.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별것 아니었는데, 그땐 왜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몰라요. 마치 아이를 버리는 것 같더라고요. 엄마가 애를 장애인으로 낙인찍고 앞으로의 삶도 장애인으로 살도록 결정해버리는 것 같아서요."장애등급을 받기 이전 관태는 특수학급도 없는 일반학교에 입학했지만 다행히도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관태가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잠시 동안이었지만 선생님의 배려로 엄마와 함께 수업을 들을 수도 있었다. 이후에도 엄마는 늘 복도에서 관태의 수업을 지켜볼 수 있었다.
"사실 학교 보내는 것이 제일 무서웠어요. 수업 중에 교실을 막 돌아다닐 수도 있고, 친구들과 승강이를 벌이다 물거나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싫다고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거나 고집을 부릴 수도 있잖아요... 아무튼 학교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관태 곁을 떠날 수가 없더라고요. 오죽하면 교감 선생님은 제가 방과후수업 교사인 줄 아셨다고 하더라고요."선생님들의 배려와 엄마의 보호 덕분으로 관태는 어렵지 않게 초등학교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과정부터 엄마는 관태에게 일반학교 과정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관태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동급생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눈에 띄게 차이가 났다. 친구들은 몰라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관태는 입학 때와 그리 달라진 게 없었던 것이다.
친구들의 태도 역시 초등학교 저학년 당시와는 사뭇 달라졌다. 약하고 만만해 보이는 아이였던 관태는 거친 친구들의 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그걸 알면서도 그대로 두는 게 아이를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했고, 결국 관태를 특수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특수학교로 전학할 때도 장애인등록을 할 때처럼 아이를 버린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힘이 들어도 비장애아들 속에서 공부하며, 저들과 함께 살도록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것을 포기하고 특수학교에 보내 아예 장애인을 위한 교육만 받게 하는 건 아닌가 했지요."시간이 지나고 나니 특수학교로 옮긴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전학을 온 후 관태의 행동, 표정, 습관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특수교육 전문가들이시니 아이를 대하는 방식도 달랐죠. 일반학교에서는 수업참여가 거의 되지 않았지만, 특수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진행하니까 힘든 아이들도 한 번씩은 해 볼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고요. 특히 제가 많이 편해졌어요. 운동도, 특기 수업도, 학교에서 다 해주니까 데리고 다니지 않아도 됐고요.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는 못했지만, 수업하는 동안 나름대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런 시간조차 없었다면 저도 우울증에 시달려 힘들었을 거예요."일반학교에서는 부족하고 모자라며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아이였던 관태. 하지만 특수학교로 옮긴 후 달라졌다. 관태는 자기보다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게 됐고, 선생님과도 주고받는 대화가 가능한 관계로 발전했다. 일반학교에 있었다면 쉽게 기회를 누리지 못했을 특기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비올라와 바리스타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직도 모자란 장애인 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