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붓으로 색칠한 동산, 바로 이거였구나

[호주 교포의 미국 여행기③] 그 이름도 신기하네, '색칠한 녀석'이라니...

등록 2012.09.17 20:49수정 2012.09.1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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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물줄기는 언제나 사람의 시선을 끈다 ⓒ 이강진


한라산 높이에 버금가는 고도에 있는 호숫가라 한여름이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싸늘하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폭포를 찾아 나선다. 두 개의 폭포에서 제법 많은 물이 흘러내린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며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확실히 물은 생명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간단하게 한 군데 폭포 구경을 끝내고 근처에 있는 화산국립공원에 들어선다. 용암이 분출된 곳이다. 용암이 분출된 사이로 관광객이 걸어다닐 수 있도록 화산암을 다듬어 길을 만들어놨다. 용암이 4km 나 흘러내렸다고 한다. 아직도 용암이 흘러내린 곳은 검은 돌로 뒤덮혀 죽음의 색을 띄고 있다.


그러나 죽음의 땅을 조롱하듯 중간중간에 녹색의 푸른 잎을 피우고 있는 몇 안되는 작은 나무들의 저항을 본다. 이 천박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 했을까. 비옥한 땅에서 자라고 싶었을 것이다. 자그마한 나무를 통해 어려운 운명을 헤쳐나가는 강인함을 본다.     

용암이 분출된 정상을 자동차로 오른다. 1차선 도로기 때문에 올라가는 시간과 내려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정상에 오르니 전망대가 지어져 있고 멀리 침엽수가 촘촘히 자라고 있는 사이로 뱀 같은 도로가 보인다. 다른 쪽으로는 화산암으로 뒤덮인 검은 평야가 전개된다. 우주인들이 달 착륙을 하기 전 이곳에서 착륙 연습을 했다고 한다. 왜 이곳을 연습장소로 택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삭막함으로 가득한 곳이다. 

전망대 아래로 깊게 파여 있는 용암이 분출된 곳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도록 길이 있다. 관광객 틈에 끼어 분화구를 중심으로 산책한다. 멀리 눈 덮인 산이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다. 주위에는 관광객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며 다람쥐가 재롱을 떤다.

암벽과 강 사이를 걷는 재미... 참 쏠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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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화구에는 1950년대에 지었다는 전망대가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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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곡한 침엽수를 가로수 삼아 하는 자동차 여행은 재미가 쏠쏠하다. ⓒ 이강진


다시 길을 떠난다. 갈 곳을 안내해 주는 친척이 있어 편하다. 운전할 필요도 없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잠깐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뜨니 거대하고 뾰족한 봉우리들이 보인다. 나무는 없고 암벽으로 이뤄진 산이다. 스미스 록 주립공원(Smith Rock State Park)에 온 것이다.


웅장한 돌산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 사이로 작은 강이 돌덩이로 이뤄진 산들의 삭막함을 아우르며 흐르고 있다. 암벽 등반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등반 장비를 가득 짊어진 채 걸어가고 있다. 이곳은 암벽 등반으로 유명한 곳이다. 멀리 산 중턱에는 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산 중턱에 매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깎아지른 산을 등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맞보는 재미는 어떤 것일까. 삶은 죽음과 함께 하기 때문에 값어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암벽 등반을 하지 않는 젊은이들은 하이킹 코스를 따라 걷는다. 이곳은 암벽 등반에 버금 되는 어려운 코스부터 천천히 강을 따라 걷을 수 있는 코스, 그리고 짧은 코스부터 긴 코스까지 하이킹 코스가 다양하다. 우리는 강을 따라 걷는 가장 쉬운 코스를 택해 산책한다. 암벽과 강 사이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이킹을 마치고 말끔한 식탁이 마련된 휴식처에서 점심을 먹는다. 간단한 산책을 하고 난 후의 감미로운 피로를 거대한 돌산을 보며 풀어낸다. 친구로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 주차장 근처를 서성거리며 절벽 아래에 펼쳐진 풍경을 즐긴다. 주차장에는 암벽 등반객을 태우고 온 자동차도 있다. 스미스 록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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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 록의 웅장한 모습과 하이킹을 즐기는 관광객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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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 록 등반객을 위해 전문적인 암벽 등반 서비스를 하는 자동차 ⓒ 이강진


시간이 많으면 이곳에서 며칠 쉬면서 산을 오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자동차에 몸을 싣는다. 친척이 안내하는 다음 장소는 어떤 곳일까 기다려진다.

황량한 광야가 전개된다. 가끔 집은 보이지만 농사를 지을만한 땅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황량한 땅에서 이웃도 없이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일까? 주관이 뚜렷한 사람일까, 아니면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사는 순박한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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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자라지 못하는 황량한 주위에 깨끗하게 포장된 도로 ⓒ 이강진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는 나에게 새로운 모습이 전개된다. 신의 솜씨인가? 자연이 자그마한 동산을 만들고 진한 색을 칠해 놓았다. 뚜렷하고 선명한 주위와 대비되는 색에 잠시 취한다. 이름도 "색칠한 녀석(Painted Cove)"이라는 앙증스러운 이름이 붙여져 있다.

신이 그린 작품, 이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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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와 대비되는 색으로 사람의 시선을 끄는 자그마한 동산 ⓒ 이강진


자동차로 조금 더 들어가니 엄청나게 큰 '색칠한 녀석'이 버티고 있다. 바위 동산 중간에 신의 붓이 지나간 아름다운 모습이다. 안내판에는 오래전에 밀려온 화산재에 의해 이러한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덧붙여 이런저런 설명이 있긴 하지만 무지한 나로서는 이해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신을 끌어들인다.   

사진을 좋아하는 친척은 태양을 등지고 사진 찍기에 열중이다. 지난 번에 왔을 때는 아침이었는데 오늘은 오후라 바위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고 한다. 계속 셔터를 누르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 자연의 모습을 한 폭의 사진에 담을 수 있는 예술가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친척은 셔터를 누르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인간의 한계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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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로 칠한 것과 같은 커다란 동산이 많다. ⓒ 이강진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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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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