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판추석 무렵 익어가는 벼이삭
최일화
고향과 가족이 항상 평화롭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가난 속에서 함께 자라며 남다른 우애를 쌓았던 형제자매들이 부모의 재산을 놓고 심한 갈등을 빚고 재판정을 오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옛날 함께 자랄 때 서로 위해주고 감싸주던 그 따뜻한 정은 다 어디로 가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결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누누히 사랑과 화목을 외치지만 인간의 내면엔 이렇듯 탐욕과 어리석음이 가득하다. 차라리 물려줄 재산 한 푼 없는 부모가 더 좋을 듯 싶다. 물욕이 앞을 가리면 효심도 우애도 다 소용 없다. 형제자매는 물리쳐야 할 적이 되고 보모님은 효도해야할 소중한 어버이가 아니라 그저 한 무더기 재물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재벌가의 싸움에서부터 땅 몇 뙈기 놓고 벌이는 형제들 간 재산다툼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아무리 황금만능 시대라 해도 인간사회 기본 질서는 보전되어야 한다. 가치전도 현상이 아무리 심해도 사회를 떠받치는 기본 가치체계는 확립되어야 한다.
사랑, 평화, 생명, 효도, 우애 등 모든 상위 가치가 물질이라는 하위 가치에 능욕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소중한 가치들을 내팽개치고 오로지 물질을 놓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에 세상은 점점 살벌해지고 있다. 형제자매를 등지고 재산 조금 더 차지한다면 어떤 행복이 따라올 것인가. 천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광규 시인의 시 한 편 소개한다.
유산 상속의 노래김광규제각기 이 세상에 태어나제 나름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각자 자기의 입장료를 내고오후 7시에 세종문화회관에모인다 무대 위에체구와 음성과 분장과 의상이 다른네 사람의 남녀가 등장같은 시간에같은 장소에서제각기 다른 목소리로딸은 아버지를 잃어서 슬퍼하고아들은 재산이 생겨서 기뻐하고사위는 장자상속의 부당함을 주장하고며느리는 보석상에 진 빚을 갚아달라고 호소한다제각기 다른 목소리로제 나름대로 절박한 사연을노래하는 이 장면은시끄러울 뿐만 아니라별로 아름답게 보이지 않고1980년대의 서울과전혀 다른데오랫동안 박수가 나올만큼감동적인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김광규 시 전문1986년에 나온 김광규 시인의 시집 <크낙산의 마음>에서 발췌했다. 오래전 시다. 연극이나 뮤지컬의 내용을 시의 형식을 빌어 간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요새 시인들이 이 주제를 가지고 시를 쓴다면 훨씬 더 살벌하고 험악한 시어들이 동원되지 않을까.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내 형제들간에도 이런 문제로 집안이 시끄럽고 형제지간에 금세 냉기류가 흐를 수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부모의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장자 상속을 주장한다든가, 대를 잇는다는 명목을 내세우거나, 출가외인을 들먹이거나 모두 낡은 사고방식이다.
부모를 모셨다고 내 세우는 것도 속보이는 일이다. 형편에 따라 노부모를 모실 수도 있는 것이지 꼭 그것을 재산 물려받는 조건으로 내세우거나 증거자료로 삼는다면 진의가 의심스럽다. 이번 추석은 부모님도 형제자매도 모두 평화롭고 화목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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