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5·16과 유신,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남소연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24일 밝힌, 과거사에 대한 인식과 사과를 보자. 그 내용만 보면 그동안 보여 온 박 후보의 완강한 역사 인식이 크게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의 확보부동한 신념체제
이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정치적으로 다급해졌구나!' 하는 것이다. 박 후보의 5·16 쿠데타와 유신, 인혁당 사건 등에 대한 역사 인식은 확고부동한 신념체제로 굳어진 것이어서, 그걸 바꾼다는 것은 '자기부정'이기 때문이다.
박 후보의 확고한 신념체제는 9·24 기자회견 바로 전날 저녁, 새누리당 대변인으로 내정된 김재원 의원이 기자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했다는 발언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김 의원은 박 후보가 얼마나 힘들게 '과거사 사과' 결정을 하게 되는지를 설명하면서 "박 후보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복권을 위해서인데 그럼에도 기자회견을 하기로 결단했"고, 그러한 박 후보의 입장은 마치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것과 같다는 식으로 비유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김재원 의원은 이른바 '막말 파문'으로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기는 했지만, 그의 발언은 박 후보의 본심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준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지금부터 23년 전인 1989년 5월 19일, MBC의 <박경재의 시사토론> '박근혜씨 아버지를 말한다'에서 공개적으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적극 평가하기 시작한 이후 '9·24 사과'까지 한 번도 그 입장을 바꾼 적이 없었다. 1989년 5월 19일 MBC 프로그램에서 그는 이렇게 확고한 신념을 이야기했다.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다고 믿고 있다.""5·16을 평가하는 신문들의 표현을 보면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가 안 되고 '어떻게 군인이 정치에 개입하느냐' '헌정을 중단시켰다'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 일변도다. 저는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그럼 5·16이 없다, 더 나아가 유신이 없다'고 할 때 5·16을 비판하고 매도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들을 데리고 사는 이 땅이, 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나라가 없어지는 판인데 민주주의를 중단시켰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나올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나라가 없어지면 민주주의를 못하는 건 둘째치고 다 죽는 판 아니에요? 그래서 5·16 혁명이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저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제가 유신에 대해서 옳다고 그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또 그것에 대해서 인터뷰를 한 것이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럼 그분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그동안 매도당하고 있던 유신, 5·16에 대해서 제대로 얘기해야 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했던 사람이라면 얘기해야 하며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게 정치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런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다."1989년 MBC <시사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는 5·16과 유신 뿐만 아니라 아버지 박정희의 일본군 장교 시절과 남로당 활동, 김형욱 전 중앙정보국장의 죽음, 김대중 납치사건 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세하게 밝혔다.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뉴스타파'(www.newstapa.com) 26, 27회 참조)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위의 인용에서 생생하게 드러나듯 박근혜 후보의 5·16과 유신에 대한 생각은 확고하다. "'5·16 혁명'은 구국의 결단"이었고, "5·16과 유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없었"으며, 그러한 "5·16과 유신이 매도당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야"하고,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확고부동한 신념체제이며,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을 위해 정치에 나설 것임을 예고한 신호이기도 했다. 그리고 정치에 들어선 뒤 한 번도 망설임없이 일관되게 이러한 확고한 신념을 보여 왔다. 그러기에 김재원 의원이 박근혜 후보의 '사과 결단'을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의 고뇌로 비유했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도 '과거사 문제'가 힘들다고 했다. 최근 새누리당 국회 상임위원장·간사단과의 오찬에서 "나도 그것 때문에 힘들다, 안 그래도 한 번 정리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박 후보에게 과거사 문제는 왜 힘든 것일까.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확고한 신념체제에 반하는 자기부정을, 그것도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해야 하기 때문일 터다.
그만큼 정치적으로 다급해진 상황임을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9월 24일 기자회견에서 박 후보가 밝힌 "5·16, 유신, 인혁당 사건이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는 역사 평가에 대한 변화는, 박 후보의 역사관 인식의 전환이 아니라 정치적 위기로 인해 과거사 문제에 대한 대응을 바꾼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본질은 달라진 게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보수논객 조갑제씨의 평가가 흥미롭다. 그는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씨는 아버지를 옹호하고 그 평가를 역사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어떻게 사람의 생각이 이 짧은 기간에 180도 바뀔 수가 있는가,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쇼다"라고 말했다.
박근혜의 그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