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 못살겠는데, 괜찮다는 말만 해"

구미 피해지역 주민, 환경부장관에 "우리집 하루만 살아봐라"

등록 2012.10.06 19:29수정 2012.10.0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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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불산가스 피해를 입은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주민들이 대피하기 위해 구미시에서 제공한 버스에 오르고 있다.

불산가스 피해를 입은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주민들이 대피하기 위해 구미시에서 제공한 버스에 오르고 있다. ⓒ 조정훈


불산가스 유출사고가 난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의 노인과 노약자, 어린이 등 69명이 인근에 있는 백현리 구미환경자원화시설로 대피한 가운데, 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들은 구미시와 정부의 안이한 대처에 분노를 터트렸다.

봉산리 주민대책위의 김상호 부위원장은 "구미시는 지난달 27일 사고가 난 후 대피했다가 12시간도 안돼 주민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이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며 "우리가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있지만 아무도 위험하다는 말을 안했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5일 오후 김관용 도지사와 남유진 구미시장 등이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주민대피 등을 결정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주민들을 실망시켰다"고 비난하며 "우리가 살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결정해 대피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정부당국이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내놓아야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며 "구미시와 대책위와의 소통이 제대로 안돼 주민들이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a  유영숙 환경부장관이 6일 오후 불산가스 유출로 피해를 입은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일대의 피해지역을 돌아보고 있다.

유영숙 환경부장관이 6일 오후 불산가스 유출로 피해를 입은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일대의 피해지역을 돌아보고 있다. ⓒ 조정훈


a  유영숙 환경부장관이 구미 불산가스 피해지역인 산동면 봉산리를 찾아 주민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유영숙 환경부장관이 구미 불산가스 피해지역인 산동면 봉산리를 찾아 주민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 조정훈


이날 오후 유영숙 환경부장관이 사고현장인 (주)휴브글로벌 공장과 인근 마을인 봉산리, 임천리 마을회관을 방문해 지역민들로부터 피해현황 등을 듣고 지원을 약속했지만 주민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 장관은 "농작물이나 가축 등 피해가 커서 마음이 아프다"며 "과학적으로 잘 조사를 해서 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주민들은 "마을이 천재지변으로 변했는데 시장이 와서 한 마디 안 하고 장관도 와서 한 마디 안 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한 주민은 유 장관을 붙잡고 "우리집 통째로 빌려줄테니 하루만 살아봐라. 12시간 만에 주민들에게 집으로 들어가 살아도 된다고 해놓고 오늘은 살면 안 된다고 한다"며 "그동안 우리는 공기 다 마시고 심장이 떨리고 하는데 내가 죽으면 누가 책임지느냐"라고 따졌다.


주민들은 "불안해서 못살겠는데 '괜찮다'는 말만 하고 있다"며 "목이 따갑고 피부에 염증이 생겨 못살겠다. '사람 살 데가 못 되더라'라고 한 마디만 해줘도 위안이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유 장관은 "제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내 아이가 살고 있다는 심정으로 임하겠다"며 "주민들 건강검사라든지 수질검사, 대기중 검사 등을 지속적으로 해서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위로했다.


구미시는 유 장관에게 국가특별재난구역으로 조속히 선포해 줄 것을 건의하고 불산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는 환경전문가가 상주할 것, 주민불신 해소를 위해 특별대책반의 조사결과 조속히 발표, 초기우수 저류지 2300㎡를 위탁처리 할 수 있도록 건의했다.

a  불산가스 유출피해가 발생한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의 한 주민이 구미시 공무원에게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항의를 하고 있다.

불산가스 유출피해가 발생한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의 한 주민이 구미시 공무원에게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항의를 하고 있다. ⓒ 조정훈


한편 임천리 주민들도 오후에 대책회의를 열고 노약자들을 중심으로 대피하기로 했다. 임천리 주민들은 해평면 청소년수련원으로 오후 늦게 대피할 예정이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인원은 정해지지 않았다.

피해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날 오후 5시 현재 구미시가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전날에 비해 피해를 호소하며 진료를 받은 주민들이 1000여 명이나 더 늘었다. 일반인 541명을 비롯해 회사원 743명, 소방관 220명, 공무원 90명 등 2563명이 치료를 받았다.

농작물 피해도 늘어 벼 60ha 등 135ha가 피해를 입었고 가축 피해도 2751두에 이르렀다. 548대의 차량이 부식 등의 피해를 신고했고 공장 피해건수도 176건에 달한다.

"할 도리 했다는 말은 너무 염치없어"
[인터뷰]봉산리 주민대책위 김상호 부위원장
- 오늘 주민대책위원회에서 노인들을 중심으로 대피하기로 했는데...
"젊은 사람들은 외지로 가거나 친척집으로 갈 수 있지만 노인들은 그렇지 않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나이가 많은 분들을 중심으로 구미환경자원화시설로 대피하기로 했다."

- 구미시는 시간이 지나서 괜찮다고 했다.
"우리가 사고가 난 날 밤 대피했다가 만 하루도 안돼 귀가해도 좋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불안감은 더욱 늘었다. 대책을 요구했지만 구미시는 국립보건환경연구원의 자료를 근거로 한다면서 위험하지 않다며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하고 더이상 기다릴수만은 없다. 어제 도지사 등이 참석해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갖고 주민들을 대피시킬 것이라 판단했는데 실망을 금할 수 없다."

- 구미시와 주민대책위가 소통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생존권적 차원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구미시가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주고 대화하면 좋겠는데 잘 안 되는 것 같다. 구미시장은 24시간 현장에 나와 있는 것이 소통이 아니냐고 하지만 현장에 나온 것만으로 소통이라고 할 수 없다. 무작정 기다리라고만 하고 어떤 조사를 하는지도 모르는데 주민들에게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해야하지 않겠는가."

- 주민들의 식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지금까지는 집에서 밥을 해먹고 반찬도 먹었다. 먹는 물은 수돗물이라 안심이 된다고는 하지만 음식물은 얼마나 오염돼 있는지 몰라 걱정이 된다."

- 주민들이 원하는 전문가들과 공동조사를 요구했다고 했는데.
"당연히 요구했다. 데이터도 관에서 내려오는 데이터 보다는 공동으로 조사해서 합의된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나와줘야 한다. 정부기관에서 부실대처로 이렇게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았나? 구미시는 자기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주민들이 봤을 때 너무나 미흡하고 미숙하다. 할도리 했다고 하는 말은 염치가 없다."

- 앞으로 대책위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대피장소에 대피해 생활하는 주민들은 행정당국이 신빙성 있는 자료를 제공하면서 귀가해도 좋다는 공식발표가 있어야 돌어올 수있다. 대책위 차원에서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지원하도록 요구하고 장기적으로 여기에서 살 수 없다면 정부당국에서 이주대책까지도 요구할려고 한다."

#구미 가스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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