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하게 태어났지만, 이게 다 어머니 덕입니다

제5회 묵향으로 열어가는 사랑의 세상을 열어가면서

등록 2012.10.10 10:09수정 2012.10.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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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을 일깨운 목소리


동료들이 차별과 차이를 가지고 정책일선에 또는 운동일선에서 활발히 활동을 할 때 나는 조용히 13년간의 대표직을 퇴임했다. 대신 두 아이를 시집보내고 공부시켜야 하는 여성가장본연의 자리와 사이버대학 새내기가 되어 초심으로 돌아가는 첫 자리에 되돌아 왔다.

그리고 달빛을 벗하거나 새벽빛을 벗하며 오마이뉴스에 틈틈이 글을 썻고 그 작은 글들이 모여서 샘이 되듯이 책들을 한 권씩 한 권씩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하는 또 다른 일들...내가 필요로 하는 일과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일 이외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내 안 깊숙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늘 내 영혼을 일깨웠다.

그 목소리는 미소가 되어 밥먹는 숟가락에도 비치고 달빛과 지는 꽃에도 스치는 바람결에도 온 몸을 젖게 하는 태풍바람에도 담겨졌다. 한때는 선현의 생각들을 표현하고 한때는 내 생각을 표현했던 작품을 이번에는 그렇게 달빛같은 사람, 민들레 같은 사람,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돌멩이 같은 사람, 또는 산 정상에서 깃발처럼 사람들의 표지석이 되는 성직인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내가 오래동안 알던 지인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인터넷에서 알게 된 얼굴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시인과 성악가와 수필가와 동화작가 예비신부, 골드미스, 투병환자, 노점상, 언론인, 방송인, 전업주부, 학생, 여성장애인, 기업가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생각들을 메모로 전해받았다. 그리고 그 받은 내용을 개별 작업화를 하였다. 이미 전시 주제는 '일치를 위한 예술의 향기'라고 컨셉트를 잡았고..

전시컨셉트를 잡았는데 서실을 비우고 이사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어쩌면 그리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일하는 곳에 인사이동이 연달아 나고 조직행정의 흐름이 빨라져 해야 할 서류들이 두 배로 늘어났다. 그때 돌아가신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막내야! 원래 좋은 음식은 품이 많이 든단다."

a 어머니 구두수선공아저씨가 희망하는 어머니를 작품해서 내년 달력으로도 만들었다

어머니 구두수선공아저씨가 희망하는 어머니를 작품해서 내년 달력으로도 만들었다 ⓒ 이영미


좋은 일도 그렇게 몸이 많이 고단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우여곡절이 생긴다. 폭염속에서도 꾸준히 새벽에 붓을 잡거나 달빛을 벗하며 칼을 잡아 문하생들 낙관인을 파면서 하나씩 하나씩 준비를 해나갔다. 주말에는 장거리 운전을 하며 강의를 다녔는데 운전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붓을 잡고 이리 저리 작품구성을 조형적으로 하거나 종이를 어떻게 얼만큼 자르고 어떻게 붙이고, 또는 어떻게 염색해야 작품이 살아날지, 마인드캘리를 하였다.


자꾸만 생기는 우역곡절들

드디어 전시가 가까워오면서 초대장과 도록을 만드는 기획사장댁에 큰 일이 터졌다. 추석안에 끝내고 초대장을 발부하려던 일이 추석이 다가오도록 멈춰버렸다. 전시오프닝을 닷새 앞두고 가까스로 초대장을 발송했는데 오프닝 테이프를 끊으려고 초대장을 기다린 지인들이 초대장을 못받았다고 사방에서 연락이 왔다.

드디어 전시 전날이다. 이천명 가까이 오는 일하는 곳 운동회 행사라 몸 하나가 두 곳을 왕복복해야 했다. 전시하는 건물에서는 이전까지 잘 설치했던  현수막을 이제 바뀌었다고  설치하지 못하게 했다.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에 설치하도록 했다. 그리고 엠프와 마이크를 빌려주기로 한 사람은 전날 밤에 행사 뒷풀이하고 바로 고양에 가버렸다.

도록에는 꼭 넣어야 할 전시를 지원하는 작가에 선정해준 주최측과 후원처의 로고와 글자들이 대거 빠졌고 오프닝에 쓸려고 맞춘 식혜와 수정과가 차 안에서 녹아가고 있다. 오프닝에 노래를 해줄 성악가는 날짜가 어긋나서 서울공연을 갔다. 전시 디스플레이때는 전시장에 전시칸막이가 없어 작품을 설치할 곳이 부족했다. 동영상은 사진과 자막이 안 맞고 오타가 더러 나왔다.

모든 연락을 문자메시지로 또는 몸으로 뛰어다녀야 해서 몸이 더 많이 고단했다. 그러나 좋은 일은 품이 많이 든다며 항상 자상하게 끈기있게 해내던 엄마를 생각하고 내 안에서 나를 지켜주는 빛들, 그리고 나를 성원하거나 나를 희망으로 여기는 많은 눈빛들을 생각하고 하나 하나 찬찬히 해나갔다.

엠프와 마이크는 요즘은 적조했지만 한때 수년간 강의다녔던 학교교장에게 연락했더니 직원에게 연락해서 빌려가게 해주었다. 도록을 만든 디자이너에게는 구십구프로를 몹시 애썼는데 마지막 일프로 마무리가 운이 나빠 안되었는데 아직 시간이 있으니 표지를 다시 손보자고 설득했다. 디자이너는 친구결혼식 참석으로 서울올라갔다가 급히 내려와서 밤샘작업을 했다.

아침 일찍 이젤도 빌려 운반했고, 디스플레이도 서울에서 개인전을 수도 없이 개최해본 후배가 내려와서 제자아저씨와 함께 하나씩 하나씩  손보아 설치해 주었다. 식혜와 수정과도 새벽부터 다시 날라 시원한 냉동실에 재여놓았다. 동영상은 사위가 찬찬히 처음부터 손봐주었다.

드디어 전시 오프닝. 오랜 지인인 방송작가가 곱게 한복을 입고 사회를 보았고 26명의 문하생도 나도 한복을 입었다. 평소에 서로 고마워하면 지내던 크로마하프 연주가가 친구들을 데리고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연주를 해주었다. 듣지 못했지만 그 환한 표정의 기쁨으로 노래하는 얼굴에서 나는 진정으로 부르는 노래의 색깔을 느껴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지난 전시회를 차례로 소개하는 동영상을 빔으로 만들어 비추었고 마지막에 칠순 때의 멋있던 어머니 한복사진을 실었다. 그리고 자막으로 '첫 전시회때 같이 했던 어머니 지금은 하늘에 계신 우리어머니! 묵향의 꽃자리와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자막을 싣고 마지막에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사진을 붙였다.

삼년 만에 하는 개인전이라 지난 삼년간 제작해서 중국 일본 등에 전시되거나 기획초대전에 출품되었던 작품과 딸의 혼수감으로 내 작품을 사간 사람들의 작품도 잠시 빌려 전시하는 것들을  포함해 모두 65점을 전시중이다. 딸에게 준 작품이 멀리 있어 그것을 다시 운반해 온 팬도 있고 작품을 나무에도 접시에도 새기고, 민들레 뿌리로도 글을 써보았다.

어떤 작곡가는 '손을 잡고 다함께 원을 그리면 돌자'는 소망을 말했고, 어떤 예비신부는 '우리 서로 위하고 위하고 위하고..' 어떤 장년의 시인은 청년기의 첫 시집의 자기 시를 말했다. 예순이 된 언론가는 '이제 내려가면서 꽃을 보고 싶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노점으로 구두수선을 하는 장애인아저씨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머니를 써달라고 했고 산을 좋아하는 제자를 위해 우암산을 썼다.

a 우암산 우암산 자락밑에서 일하고 작품한다. 느낌을 시로 적어 캘리그라피하고
나무에도 새기고 달력으로도 만듬

우암산 우암산 자락밑에서 일하고 작품한다. 느낌을 시로 적어 캘리그라피하고 나무에도 새기고 달력으로도 만듬 ⓒ 이영미


그것들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참 많은 한지 종이를 자르고 붙이고 염색하고 그리고 또 글씨를 쓰고 또 썼다. 그러느라 태풍이 지나가도 폭염이 내리쬐어도, 한번씩 불청객들이 돌을 하나씩 던져도 그냥 그러려니 무심히 넘길 수가 있었다. 나 또한 부실한 몸으로 태어났지만 그래도 좋은 음식과 좋은 일은 품이 많이 든다는 것을 일찍이 가르쳐준 우리 어머니의 은혜가 정말 가이없다. 그런 어머니의 그리움도 부모은중경으로 가리개를 만들었다

한창 전시가 사흘째 진행중이다. 다행히 반응이 참 좋다. 오신 분들이 하나씩 가져가게 내년 소달력도 만들었는데 벌써 600여명이 다녀가고 달력은 1천장이 나갔다. 특히 구두수선공 아저씨가 희망했던 어머니가 많이 나갔고, 고마움이란 작품은 전시오프닝때 대구 화가에게 팔렸는데 어제 오신 속리산 근처에 사는 어떤 일가분이 오셔서 '우리 하나 뿐이 아이 이름이 고마움인데 우리가 가져가야 할 것 같은데요" 하셨다. 그래서 대구화가에게 양보하시라는 연락도 드려야 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시장에 상주하지 못한다. 문하생들이 매일 오전 오후 두명씩 교대로 전시장을 지키고 문하생들 중에 희망하시는 분들만 26명도 이왕에 하는 전시 방 하나 더 빌리고, 도록 이왕 만드는 김에 팸플릿 좀 더 만들고 해서 '묵향의 꽃자리'라는 모임을 만들어 첫 전시를 펼친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서로 배우고 모자란 것을 나누고 채워가는 고마운 전시인 셈이다.

사흘 후면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내가 소리를 내는 합창반, 악기연주반 등 80여명을 이끌고 실버음악대회에 나간다. 이분들의 점심을 차가운 도시락이 아닌 삼계탕을 드시게 하려고 가격을 조절하거나 후원을 확보하려고 뛰어다니고, 충북대표로 국립합창단 주최 전국실버합창대회 본선에 나가게 된 경사가 생긴 합창단에 관련된 급한 서류들도 챙기느라 바빠 전시장에 상주하지 못한다.

그래도 모두들 잘 이해해주어 고맙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에 무언가 잡아야 잘 산다고 여기는 물질이 먼저인 듯 착각되는 세상 속에서 마음으로 묵향을 느끼며 행복해 하고 사는 사람들과 자기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는데도 선뜻 손을 잡고 마음의 빛을 나누는 사람들이 아직도 참 많다는 것이 고맙다.

찾아보면 보물같은 사람들이 참 많다. 작가인 내가 할 일은 이러한 보물같은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들을 세상에 사이좋게 공유되도록 나누는 일 같다. 물론 나의 생각과 마음은 민들레 홀씨같이 엎드리고 무상무심으로 계속 다듬어나가면서….

a 꽃잎 서정주시인의 시를 잔잔하게 표현하고 꽃잎으로 형상화한 작품

꽃잎 서정주시인의 시를 잔잔하게 표현하고 꽃잎으로 형상화한 작품 ⓒ 이영미


덧붙이는 글 제 5회 묵향으로 열어가는 사랑의 세상
전시장소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청주문화관 1실, 2실
전시기간 : 2012년 5일 - 12일 13:00
#이영미 개인전 #서예전시 #캘리그라피 #어머니 #우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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