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베네' 된 카페베네, 이유 있었네

3분 거리에 또 다른 가맹점 개점허가... 말로만 '동반성장'

등록 2012.10.13 20:11수정 2012.10.15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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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베네는 가맹점만 800개 정도 되는 큰 회사 아닙니까. 당연히 저는 회사를 믿었죠. 그렇지만 지금은 동업자로서 배신감을 느낍니다. 어떻게 뻔히 사정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지..."

10일 오후 2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한적한 거리에 비해 점포 안에는 적잖은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지만 이곳 사장인 유선규(가명)씨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한 달 뒤면 약 200미터 거리를 두고 같은 상호를 가진 점포가 들어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같은 상권 안에 상호가 같은 점포가 생기면 매출에 타격을 입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유씨는 "프랜차이즈 본사에 영업권 침해가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본사 측에서는 처음 보는 지도를 제시하면서 '법대로 하라'고 말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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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유씨의 카페베네 점포. ⓒ 김동환


200미터 거리에 새 가맹점 승인해 놓고 "법대로 하자"

유선규씨는 지난해 6월 25일부터 지하철 2호선 신림역 부근에서 가맹계약을 맺고 '카페베네'를 운영하고 있는 점주다. 점포 규모는 약 264㎡(80평). 그 근처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크기의 점포라 보증금을 제외한 시설 비용만 해도 5억 원이 넘게 들어갔다.

커피 전문점 창업을 꿈꾸던 그는 여러 프랜차이즈 업체들을 알아보다가 '카페베네'를 선택했다. 본사 영업팀의 적극적인 설득도 받았고 3~4년간 700개가 넘는 가까운 가맹점을 확보할 만큼 '믿을 만한' 업체라는 이유에서였다. 현재 운영 중인 매장도 본사 점포개발팀이 '명당'이라면서 골라준 자리였다.

평탄하던 점포 운영에 문제가 생긴 것은 지난 9월이었다. 유씨는 우연히 카페베네 홈페이지를 보다가 자신의 점포에서 불과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카페베네가 개업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같은 브랜드인데다 개업 예정인 곳은 신림역과 더 근접한 지점에 있어 매출에 큰 타격을 줄 게 뻔했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유씨가 직접 찾아간 점포 예정지의 위치는 유씨의 점포에서 걸어서 3분 거리. 이미 한창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유씨는 황당한 마음에 카페베네 본사를 찾아가 항의하며 새 가맹점의 입점철회를 요구했다. 상인이 점포를 얻어 장사를 하는 것은 자유지만 이미 먼저 가입한 가맹주가 있는 마당에 같은 상권 안에 또 가맹점을 승인해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유씨의 예상과 달리 카페베네 측은 처음에는 "미안하다"며 유씨를 어르다가 결국엔 유씨 점포 인근이 그려진 표시된 지도를 보여주며 '법대로 하자'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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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와 카페베네가 계약한 가맹계약서에 별첨으로 첨부된 상권보호구역 지정 세부 지도. 점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상권보호구역이다. 지하철 2호선 신림역 3번 출구와 4번출구 사이에 있는 신림동 순대골목이 끝나는 곳부터 하단 웅신빌딩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지도 가운데에 있는 카페베네 로고가 유씨의 점포 위치. ⓒ 김동환


카페베네 측이 유씨에게 제시한 지도의 이름은 '상권보호구역 지정 세부 지도'. 해당가맹점 지역으로부터 점선 테두리 구역 내에서는 추가로 가맹점을 설치하지 않고 상권을 보호해주겠다는 약속이다. 유씨는 "거꾸로 점선 테두리 구역 밖이면 어디든 가맹점을 추가로 낼 수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면서 "카페베네 가맹본부 측은 이 지도에 내 서명과 날인이 되어있으므로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지도에 표시된 상권보호구역은 유씨의 점포를 기준으로 짧은 변이 180미터, 긴 변이 250미터 정도 되는 직사각형 모양이다. 유씨 점포에서 약 90~125미터 이상 떨어진 곳이면 어디든 '새 카페베네'가 들어와도 상관이 없는 셈이다. 유씨는 왜 이런 지도에 도장을 찍고 서명해놓고서 '딴소리'를 한 걸까? 그는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지도를 보기 전까지 이런 지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답했다.

유씨가 카페베네와 가맹계약을 맺고 공유한 계약서 및 특약사항들에 이 지도는 포함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씨는 "이 지도와 관련해서 어떤 협의도 없었고 설명을 들은 바도 없다"면서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그려놓은 지도를 보고도 가맹계약 맺겠냐"고 반문했다.

유씨는 "이 지도의 특징은 계약서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카페베네 본사만 보관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자신도 계약 후 집에 와서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봤지만 자신이 가진 계약서에는 해당 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몰랐다는 것이다. 그는 "이 일이 있은 후에 다른 카페베네 점주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지도의 존재를 알고있는 점주는 없었다"면서 "다른 점주들도 불안하다고 하면서 끝까지 진행상황을 알려달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가맹점주는 모르고 회사만 아는 '상권보호구역 지도'

이에 대해 카페베네 창업지원본부의 양철수 이사는 "가맹계약서 안에 상권영역에 대한 조항이 있다"면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카페베네 가맹계약서 4조 6항을 보면 '갑'(카페베네)은 가맹계약기간 중 '을'(가맹점주)의 영업지역 안에서 직영점을 설치하거나 유사한 업종의 가맹점을 설치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카페베네로서는 지도에 '영업지역'이 표시되어 있으니 그 영역만 침범하지 않으면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식이다. 가맹계약서 6조 1항에는 '갑'(카페베네)이 '을'(가맹점주)에게 독점적, 배타적 영업지역을 설정하지 않으며 '을'은 영업지역에 대한 보호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상권보호구역 지정 세부지도는 효력을 주장하기 어렵다. 같은 계약서 안에서 서로 상반되는 조항이 부딪히고 있는 셈이다.

양 이사는 "가맹점마다 상권 범위가 다르지만 상권보호구역 지정 세부 지도는 가맹점주와 협의하에 모든 가맹점에서 다 작성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왜 해당 지도 원본을 가맹점주와 함께 공유하지 않고 카페베네에서만 보관하는지를 묻자 "그건 전화로 설명하기가 어려우니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즉답을 피했다.

카페베네 측은 이런 계약서를 작성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기존 가맹점 보호에 힘쓰겠다는 뜻을 꾸준히 밝혀왔다. 이 회사는 2012년을 '책임경영 원년의 해'로 삼고 가맹점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지난 3월 말에는 '동반성장 상생위원회' 발대식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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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유씨의 카페베네 신림본동점. ⓒ 김동환


"모범거래 기준 있어도 가맹본부에서 하기 싫다면 그만"

최근 자영업자 수가 급증하면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의 영업지역 보호 문제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카페베네만 해도 인천, 일산 등지에서 유씨 사례와 비슷한 일이 서너 차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커피전문점에 대한 모범거래 기준을 마련하는 중이지만 이렇다 할 대안은 되기 어렵다.

공정위의 모범거래 기준에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공정위 기업협력국 가맹유통과의 이동원 과장은 "영업지역 보호와 점포 리뉴얼(새로 꾸미기)은 늘 제기되어 왔던 문제"라면서 "모범거래 기준을 마련한다고 해도 가맹본부에서 하기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씨는 신규 점포가 인근에 입점하는 일과 관련 카페베네와 소송을 준비 중이다. 본사에서 영업지원 차원에서 몇 달간 커피 원두 소량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그것도 거절했다. 어떠한 형태로든 지속적인 손실 보전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본사야 가맹점 계약하면 가맹비와 인테리어 비용 받으니 이익이겠지요. 동반성장과 상생 강조하신 회장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도 해봤지만 통하지 않았어요. 가맹점주는 가맹계약을 맺기 전에만 손님인가 봅니다."
#카페베네 #공정위 #동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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