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보다 바퀴벌레를 더 무서운 대상으로 패러디한 BAYGON(BAYER사의 바퀴벌레약)의 광고
BAYER
1년 뒤 룸메이트와의 생활을 끝낸 후 운 좋게도 '진짜 독립'을 할 수 있었다. '나만의 방'을 갖는다는 설렘에 수일에 걸친 짐정리와 이사가 힘든 줄도 몰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새로 이사한 곳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나는 또 다른 문제와 부딪히고 말았다.
방에는 이미 주인이 있었다. 개미였다. 과제를 하기 위해 노트북이라도 열라치면 개미들은 사이좋게 키보드 위를 줄지어 기어가고 있거나, 종종 침대 위에 출몰하여 잠을 자려던 나를 기함하게 만들었다. "소독을 했기 때문에 깨끗하다"던 집주인의 말과는 달리 무슨 이유로 개미가 나오는지는 몰랐지만 내 집이 아닌 이상 방역업체를 부르는 것도 무리일 듯싶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가며 개미를 쫓는다는 민간요법을 써보았다. 꼼꼼한 청소와 함께 살충제며 물에 희석시킨 식초용액을 분무기에 담아 곳곳에 뿌리고, 집에서는 과자 한 쪽 달디단 사탕 한 알도 먹지 않으며 석 달여를 보냈다. 신기하게도 개미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고, 한동안 나는 독립의 단맛을 즐기며 '더 이상 내 방에 벌레란 없다'는 도취감에 취했다. 물론 착각이었다.
2011년 늦가을께 나는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뒤척이다 반대편 벽을 보는 순간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내 방에 저렇게 큰 얼룩이 있었나?'나는 지독한 난시라 안경 없이는 사물을 구별할 수 없었고, 다만 어째서 얼룩이 천천히 이동하는가를 잠시 생각했다. 얼룩도 벽지 무늬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 손바닥 크기의 바퀴벌레였다. 그 이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그만큼 거대한 크기의 벌레는 종(種)을 막론하고 다시 볼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들만큼 큰 것이었다.
그때 불현듯 '저것이 나를 향해 날아오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위기감이 찾아왔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행여 '그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용히 잠자리를 빠져나와 달랑 전화기만 들고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저히 혼자 잡기엔 엄두가 나지 않는 크기였다. 닥치는 대로 전화를 건 덕분에 친구 한 명이 5분도 안 되어 출동해 주었다. 그런데 나와 마찬가지로 시력이 썩 좋지 않던 친구 B양의 얼굴에는 안경이 없었다.
"안경은 어디다 두고 왔어?""어, 정확히 보면 잡을 용기가 안 날 것 같아서 일부러 벗고 나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