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다닐래, 자활사업 참가할래?

['88만원 세대'도 부럽다 ②] 가난해도 법조인 될 수 있다더니...

등록 2012.10.24 15:00수정 2012.10.2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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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줄어 고통스러운 요즘 젊은이들을 흔히 '88만 원 세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88만 원은커녕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조차 잡기 힘든 이들이 젊은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이다. 생계비에 보태려고 조금이라도 일하면 소득이 생겼다고, 기초생활수급권자 특별전형으로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면 자활사업을 못 나갔다고 수급비를 삭감당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평범한 대학생활도 힘든, '88만 원 세대도 부러운' 그들의 이야기를 10월 17일 세계빈곤퇴치의 날을 맞이하여 연속으로 소개한다. [편집자말]
이수연(가명·24·여)씨는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재학 중이다. 그는 여느 학생과 달리 조금 특별하다. '특별전형'으로 입학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오래전 세상을 떴다.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로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은 어머니(53)는 생활이 어려워지자 2002년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해 급여를 지원받기 시작했다. 2004년 영구임대아파트 거주 자격을 얻은 후부터 그의 가족은 계속 이곳에서 살고 있다.

수연씨가 로스쿨에 진학한 건 집안 형편 때문이었다. 일반 기업에 취업하려면 영어점수에, 각종 자격증이 필요하고 외모에도 신경 써야 하는 세상이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려 해도 학원을 따로 다녀야 한다. 수연씨와 오빠(26·대학생)는 모두 학생이고, 어머니는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세 사람은 한 달 수급비 99만8000원에 생계를 의존하고 있다. 살림살이를 꾸리기도 빠듯한 금액인데, 여기서 취업비용을 따로 빼 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2007년 여름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등 취약계층을 반드시 로스쿨 전체 정원(2000명)의 5%만큼 뽑도록 법을 만들었다는 걸 알았어요. 취업보다는 아예 특별전형으로 로스쿨에 진학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그해 사회복지학과로 입학했는데 법학과로 옮겨서 로스쿨 준비를 시작했고, 올해 4기로 입학했어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4조 2항은 로스쿨 특별전형을 '장애인 등 신체적 또는 경제적인 여건이 열악한 계층을 대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김성주 민주통합당 의원에 따르면, 특별전형으로 로스쿨에 입학한 기초생활수급자는 2009년 38명, 2010년 20명, 2011년 31명이었다. 지난해 청년(20~39세) 기초생활수급자가 15만9123명이었다는 점에서 수연씨 같은 로스쿨생들은 가난해도 꿈을 펼칠 수 있는, 아주 귀한 기회를 얻은 사람들이다.

정부가 만든 로스쿨 특별전형 "당연히 수급 유지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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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수연씨가 살고있는 지역 구청은 그에게 '자활사업에 참가해야 수급자격이 유지된다'며 통보서를 보냈다. 수연씨는 6월부터 자활사업에 참가했지만 로스쿨 공부와 병행할 수 없어 결국 불참했다. 그 결과 지난 8월부터 수급비가 삭감됐다. ⓒ 박소희


그런데 지난 4월 구청에서 '자활사업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생계급여가 지급되는 '조건부 수급자'이니 구청 사회복지과와 상담하라'는 통보서가 날아왔다. 대학생 때처럼 대학원생도 자활사업에 참여하지 않아도 수급자격이 유지되는 줄 알았던 수연씨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2012년 자활사업 안내'는 대학원생을 조건부 수급자로 분류하고 있었다.


"정부에서 특별전형을 만든 거니까 당연히 (수급자격 유지가) 되겠구나 했죠. 그게 아니란 사실은 전혀 몰랐어요."

구청에서는 수연씨에게 6월부터는 스킨케어·장애인목욕활동 보조 등을 하는 자활사업장에서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해야 한다고 연락해왔다. 결국 자활사업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6월 중순부터 기말고사에 시험과 실무실습이 이어졌다. 틈틈이 참가하려 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결국 8월 20일부터 '근로 불이행'으로 수급비가 삭감됐다. 이때 받은 돈은 26만5640원. 수연씨는 복지부에 민원을 넣었지만 '일반대학원생들 자료를 조사해야 하니까 한 달쯤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았다. 9월 20일, 수연씨네 가족 앞으로 들어온 수급비는 8만6640원으로 더 줄어있었다. 여기에 사회복지단체의 추석 후원금 6만 원이 다음 달 생활비로 들어온 돈의 전부였다.

로스쿨생 자격으로 만든 마이너스통장이 있긴 했지만, 결국 빚이다. 수연씨는 줄어든 수급비 탓에 휴대폰 요금을 낼 수 없어 9월 들어 휴대전화가 끊겼다. 교통카드로 쓰는 신용카드대금도 미납상태다.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그 지원 요건 중 하나가 바로 수급 자격이다. 자활사업에 참가하려면 학업을 포기해야 하고, 공부를 하려면 수급 자격은 물론 장학금까지 잃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전국 25개 로스쿨 대부분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성적 기준, 수급 자격 등 요건이 있기에 수연씨 같은 기초생활수급자들은 복지 혜택과 학업 중 딱 한 가지만 선택하기 어렵다.

'공부'냐 '자활사업'이냐... 양자택일 강요받는 기초수급자 로스쿨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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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가명)씨 어머니가 기초생활수급비가 삭감된 것과 관련해 교육과학기술부에 문의하고 10월 16일 답변받은 내용. ⓒ 박소희


답답한 마음에 수연씨 어머니는 10월 2일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16일 받은 답변 내용에는 "대학원생의 자활사업 조건부과는 보건복지부 소관사항"이라고 쓰여 있었다. "다만 우리 부에서 9월 말 복지부에 로스쿨생 자활사업 조건부과 제외를 요청한 바가 있다"는 한 마디가 덧붙여 있었다.

복지부 자활지원과 관계자는 18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 문제를 두고) 교과부와 협의하고 있다"며 "기초생활수급자 로스쿨생 등록금을 학교에서 지원하는 것처럼 생활비도 장학금 형식으로 주는 걸 검토해달라고 교과부에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별개로 로스쿨생을 자활사업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은 "기존 수급자들과 형평성이 안 맞을 수 있고, 국민 정서도 감안해야 하므로 여러 가지 면에서 신중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저 수연씨에게 미안할 뿐이다. 자신처럼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변호사가 되겠다던 딸의 꿈을 잘 알고 있기에 마냥 안타깝고 속상하지만, 아직 별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수연씨는 "올해 로스쿨에 들어왔는데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며 "일단 이 상황을 타개하려고 하면서 최대한 열심히 (학교에) 다녀야겠다"고 말했다.

"가난한 학생들도 법조인이 될 수 있도록 특별전형을 만든 거잖아요. 그럼 그 학생들이 최소한의 생활에 지장 받지 않고 학업 유지해서 법조인이 될 수 있도록 해줘야죠. 처음 (특별전형을) 만든 취지에 맞게 복지부나 법무부, 교과부가 다 같이 상의해서 기초생활수급자 로스쿨생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졸업은 할 수 있어야죠."
#기초생활보장 #빈곤청년 #복지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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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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