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유출 피해주민 "이건희 국회 출석하라"

[현장] 1200여명 삼성 본관 앞 상경 집회

등록 2012.10.25 19:25수정 2012.10.2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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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유류피해총연합회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태안기름유출사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4명의 열사에 대한 합동 위령제를 열었다. ⓒ 김동이


"지금도 저희를 보고 울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자로서의 책임을 느끼며 삼성의 무책임에 목숨 바쳐 싸울 것을 다짐합니다. 부디 저희를 믿고 편히 잠드소서."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사옥 앞에서 합동 위령제가 열렸다. 지난 2007년 태안기름유출사고 이후 자결 혹은 분신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넋을 기리는 자리였다.

막내아들의 결혼식을 남겨두고 자결한 고 이영권씨,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은 고 김용진씨, 20년간 운영해온 수산물 가게를 닫으며 분노의 외침으로 분신한 고 지창환씨, 삼성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끝내 자살한 고 성정대 태안군 유류피해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4명의 목숨도 안타깝지만 12만 사고 피해자들의 눈물도 여전히 마르지 않고 있다.

지난 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 허베이스피릿호와 삼성중공업의 크레인이 충돌하면서 7891배럴의 원유가 유출됐다. 삼성중공업은 사고 직후인 2008년 초 '지역발전기금 1000억 원을 출연하겠다'고 밝혔으나 기금 규모를 둘러싼 피해민과의 견해차이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이날 충남 서산·태안·보령·홍성·당진 6개의 시군, 전북 부안·군산의 피해주민 1200여 명은 28대의 전세버스에 나눠타고 상경해 삼성 규탄 집회를 열었다. 경찰은 1000여 명의 병력을 대기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1200명 피해주민 "이건희, 국회 출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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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유류피해총연합회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 규탄 집회를 열고 29일 열리는 국회 태안유류대책 특위에 이건희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피해 대책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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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태안기름유출 사고 피해자들이 삼성 규탄 집회 도중 사옥 주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에 가로 막혔다. ⓒ 김동이


집회 도중 참가자들이 삼성 사옥 주변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은 방패로 이를 가로막았다. 피해자들은 "삼성 타도" "이건희 얼굴 한 번 보자"를 외치며 행진을 시도했지만 경찰은 "집회 신고 구간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이들의 행진을 제지했다. 경찰과 시위자들의 몸싸움이 벌어졌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한 피해주민은 15미터 높이의 철제 구조물에 올라가 삼성 건물을 향해 대책을 촉구하며 항의하기도 했다.

국회 태안유류피해대책 특별위원회(홍문표 위원장)는 지난 9월 25일 충남 태안에서 주민간담회를 열고 10월 29일 열리는 특위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노인식 삼성중공업 대표이사를 증인으로 채택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특위는 두 사람을 출석시켜 지역 피해보상과 지역발전기금 조성과 관련한 보고를 받기로 의결했다.


피해주민들은 집회에서 이건희 회장의 특위 출석과 그룹 차원의 보상을 요구했다. '서해안유류피해총연합회'는 삼성그룹에 보내는 '우리의 요구'를 통해 "이건희 회장은 대한민국 국민이 소환한 국회 특위에 출석해 서해안유류피해총연합회는 국민과 피해민께 사죄하고 피해주민을 살릴 대책을 제시하라"며 "사고로 붕괴된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그룹차원의 대규모 투자로 지역 경제를 회복시켜라"고 요구했다.

이어 이들은 "기름 사고 이전에 큰 걱정 없이 살아오던 우리의 이웃들을 죽음이라는 벼랑으로 내몬 것은 바로 사고를 치고도 뒤에 숨어 있는 가해자 삼성"이라며 "우리는 삼성을 사회적 살인자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국회 태안 특위의 박수현 간사(민주통합당)·김태흠 간사(새누리당)·성완종 의원을 비롯해 진태구 태안군수 등이 참석했다.

"장사꾼 삼성에게는 불매 운동으로 맞서야"

삼성과 투쟁 중인 이들은 연대발언에 나섰다. '무노조 삼성'의 원칙을 깨며 노조를 설립한 김성환 삼성 일반노조위원장은 피해자들과 함께 "처박은 놈이 책임져라, 배부른 놈은 배 터져라"를 외쳤다. 이어 김 위원장은 "말로만 하는 싸움, 말로 하는 정치를 믿어서는 안된다"며 "언제부터 주민들이 구경꾼이 돼버렸다"고 꼬집었다. 그는 "사태 해결이 10년, 20년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며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싸워나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남편을 백혈병으로 잃은 정애정씨는 "멀리서 올라온 아버님 어머님, 삼성은 1000명이 온다고 한들, 1만 명이 온다고 한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라며 "장사꾼인 삼성을 혼내려면 삼성카드 안 긁고, 삼성전자 제품 안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씨는 "아버님, 어머님들이 끝까지 기죽지 않고 싸운다면 저 역시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해 피해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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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삼성 일반 노조 위원장이 25일 오후 삼성 본관에서 열린 삼성 규탄 집회에 나와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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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태안유류피해대책 특별위원회 민주통합당 간사인 박수현 의원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 본관에서 열린 삼성 규탄 집회에서 "피해자들이 생업을 뒤로한 채 머나먼 서울까지 와서 가해자 삼성에게 무릎 꿇고 빌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 김동이


국회의원들도 무대에 올라 격려사를 남겼다. 특위 간사인 박수현 의원은 "세계 초일류 기업인 삼성은 사고 발생 후 5년이 되도록 1000억 원이라는 눈꼽만한 돈도 내놓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들이 생업을 뒤로한 채 머나먼 서울까지 와서 가해자 삼성 앞에 무릎 꿇고 빌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간사인 김태흠 의원(충남 서천·보령)은 "삼성이 사고를 내지 않았으면 복구비 1조3천억 원은 여러분들의 경제 회생에 쓰였을 것"이라며 "분명히 삼성이 가해자, 삼성이 잘못한 인재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삼성이 하루빨리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보상금 지급을 촉구하기 위해 매일 이곳에서 1인 시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해안유류피해총연합회' 국응복 회장(58)은 집회 현장에서 자해를 시도했다. 국 회장은 삼성에 '피해주민 건의서'를 전달하려고 가던 도중, 경찰에 가로막히자 주머니에 있던 커터칼을 꺼내 자신의 가슴에 그었다. 그는 주위의 도움으로 긴급히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 #태안기름누출사고 #삼성 #김성환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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