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속 깊이 잠든 명랑스님, 반가워요

[다시 보는 우리문화유산의 美-2]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등록 2012.10.26 09:32수정 2012.10.2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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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계절에 대한 나름의 감식안(鑑識眼)은 무심코 답사 길에 나선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보물을 종종 안겨다준다. 무덤덤한 돌덩이 속에 속내를 감춘 천신(天神)들은 청명한 가을햇살아래 해바라기를 하고, 코 끝을 깊게 자극하는 소나무의 신령한 향기는 숲 속 그윽한 불보살의 금당(金堂)에 하늘하늘 피어난다. 이 가을, 머무름 없는 텅 빈 마음으로 만행 길에 오른 나그네에게 불국토(佛國土)의 찬란한 전설이 그저 꿈 속의 옛 일만은 아닐 법하다. 이 글은 지난 22일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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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탑곡 부처바위 남면 전경 ⓒ 남병직


 
동 남산 불곡(佛谷)을 에둘러 탑곡(塔谷)으로 들어서는 길은 남산성(南山城)의 허물어진 성 돌을 옆에 끼고 숲 속으로 내내 따라붙는다. 지난 겨울 가장 먼저 봄 소식을 전해준 생강나무의 진한 추억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연한데, 솔 숲 사이로 잔잔히 펼쳐진 작은 오솔길에는 키 작은 야생화들이 꼬물꼬물 머리를 들고 칭얼댄다. 쑥부쟁이며 구절초며, 가을의 완연한 빛깔에 한껏 물든 순백의 꽃잎들과 하늘거리는 억새풀의 눈부심을 고이 간직한 이 길은, 미련하기 짝이 없는 나 같은 이들에게도 순례의 밝은 한 마음을 열어놓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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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탑곡 부처바위와 소나무 숲 ⓒ 남병직


오르락내리락 좁은 산길을 한참 따라가다 보면 3층 석탑의 지붕돌이 하늘을 향해 활짝 날개를 편다. 탑의 몸돌은 쐐기모양으로 촘촘히 박힌 거친 야질의 흔적을 안고 모진 세월을 인내하며 힘겹게 살아왔을 테지. 탑과 바위를 사이에 둔 가깝고도 먼 신비의 공간은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음박질 친다. 녹음과 한데 어우러진 아침 나절의 길 다란 숲 그림자와 뜰 가운데 홀로 나뒹구는 이름모를 주춧돌만이 폐사지의 잃어버린 내밀한 기억을 말없이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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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탑곡 3층석탑 ⓒ 남병직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자 첫 눈에 마주치는 것은 부처바위 남면 왼쪽에 우뚝 선 육감적인 몸매의 보살상이다. 보살의 얼굴은 오랜 비바람으로 허물어져 내렸지만, 대지에 든든하게 딛고 선 당당한 불신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한없이 배어나온다. 가을의 무심한 양광을 온 몸으로 흠뻑 빨아들인 밝고 안온한 돌부처는 낯선 객들에게 수인사를 넌지시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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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탑곡 부처바위 남면 보살상 ⓒ 남병직


서툴고 퉁명스런 솜씨로 모난 두부처럼 잘라놓은 보살의 두 발은 육중한 무게의 불신을 힘겹게 받들고 서있다. 보살의 왼손은 아랫배에 단정히 두었고, 오른손은 길게 펼친 채 땅을 향해 늘어뜨렸다. 양어깨를 타고 내리는 옷가지의 유려한 주름은 잘록한 허리를 한 바퀴 돌아 깊게 패인 양 허벅지 사이로 쏟아져 내린다. 보살의 목에는 활처럼 휘어진 완만한 삼도(三道)가 흘러가고, 얼굴은 마멸이 심해 형체조차 알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양미간 가운데 백호(白毫)에서 샘솟는 영령한 기운은 비록 깨어진 두광(頭光)이건만 담대하고 웅장하며, 입가의 머금은 수줍은 미소는 한없이 자비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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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 탑곡 부처바위 남면 보살상과 승려상 ⓒ 남병직


부처바위의 동면을 감싼 투명한 햇살이 어느덧 길게 기울어 남쪽 사면에 부서진다. 삼존불 앞 커다랗게 놓인 듬직한 바위에는 깊은 명상에 든 적멸의 수행자가 얼굴을 감추고 돌아앉았다. 과거 오오사까라는 일본인 학자가 이 근방에서 신인사(神印寺)라고 명문이 새겨진 기와를 발견했다더라. 만약 이러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곳 탑곡은 신라 선덕여왕 때 활약한 밀교의 고승인 명랑법사와 관련된 옛 절터가 아닐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명랑법사는 668년 당군의 내침소식을 듣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 낭산 신유림(新遊林)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지을 것을 건의하였다. 오색 비단으로 절의 모양을 꾸미고, 풀로 오방신상(五方神像)을 만들어 세운 후 문두루비밀법(文豆婁秘密法)으로 태풍을 일으켜 당나라 병선을 침몰시켰다.


그는 <금광명경(金光明經)>에 근거해 용왕이 시주한 황금으로 자기 집에 금광사(金光寺)를 지었고, 뒤에 진언종(眞言宗)의 별파인 신인종(神印宗)의 조사(祖師)가 되었다. 혹자는 명랑법사가 신력으로 하룻밤 만에 부처바위를 만든 후 자신의 모습을 바위 속에 남몰래 남겨둔 것이라고도 한다. 오늘 같이 햇살 좋은 가을 아침의 축복이 없었다면 바위 속 깊이 잠든 명랑스님의 신묘한 얼굴을 어떻게 마주할 수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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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6] 탑곡 부처바위 남면 승려상 ⓒ 남병직


부처바위의 남면에는 세구의 불상이 돋을새김으로 남아있다. 가운데 본존불은 정면을 응시하며 근엄하게 자리 잡았고, 양 옆의 협시불은 본존을 향해 앙증맞은 어깨를 슬며시 내밀어 보인다. 세 분의 부처님은 모두 둥글고 밝은 광명의 빛으로 온몸을 감싸고 계신데, 짙은 녹음의 보리수그늘아래에서 깨달음의 희열을 한껏 누리고 계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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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7] 탑곡 부처바위 남면 삼존불상과 보리수 ⓒ 남병직


더구나 본존의 왼쪽에 다소곳이 자리한 협시불은 연꽃 봉오리모양의 봉긋한 두 손을 가슴 앞에 아담하게 모았는데, 마치 에밀레종의 비천상을 연상케 하듯 솜사탕 같은 구름대좌를 타고 하늘로 가볍게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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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8] 탑곡 부처바위 남면 좌 협시불과 보리수나무 ⓒ 남병직


부처바위 동쪽 사면에는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비천들이 즐비하다. 비좁은 난간을 의지해 남쪽 사면으로 돌아서면 화엄불국을 지키는 집채만 한 바윗돌 하나가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난다. 과거 이곳에는 양쪽으로 마주보는 돌문이 있어 부처바위를 드나드는 수문장의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외롭게 홀로 남겨진 바윗면에는 세 갈래 금강저를 하늘로 치켜들고 맨 주먹을 불끈 쥔 분노의 금강역사가 두 눈을 부릅뜨고 수미산을 지킨다. 앙증맞은 불보살의 나긋나긋한 익살과 무장한 금강역사의 위엄 있는 분노는 씨줄과 날줄이 되어 화엄세계를 장엄한다. 온화한 자비의 얼굴과 분노의 위엄은 중생제도를 위한 부처님의 방편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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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9] 탑곡 부처바위 동면 금강역사상 ⓒ 남병직


부처바위를 한 바퀴 돌아 남면의 육중한 보살상 앞에 다시금 섰다. 조금시간이 지났을까? 햇살은 고도를 차츰 높여 불상 뒤 얕은 감실에 몸을 가린 까까머리의 동자승을 불러 깨운다. 양 볼에 탱탱하게 살이 오른 이 미완의 석물은 오랜 비바람으로 사납게 패인 화강암의 거친 숨결을 갓 태어난 아가마냥 조심스레 보듬어 안고, 들릴 듯 말듯 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길가는 나그네에게 조곤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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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0] 탑곡 부처바위 남면 동자상 ⓒ 남병직


"여보시게 나그네 양반, 당신은 돌 속에 잠든 내 모습이 보이는 모양이구려. 나는 지난날 서라벌 선덕여왕님 나라에 명랑이라는 고승 댁에서 시중들던 불목하니였다오. 헌데 스님이 시절인연이 다해 서라벌을 떠나시던 날, 그 신비한 문두루비법으로 나를 바위 속에 가두지 않았겠소? 아하 벌써 천년도 더 지난 아득한 옛 일인데 명랑스님은 어째 아직도 기별이 없으신 겐지. 혹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뵈옵거든 남산 탑곡의 까까머리 돌중이 천년동안 늙지도 죽지도 못하고 여태 돌 속에서 기다린 다 꼭 전해주시오들...나무문두루보살!!!"
덧붙이는 글 위 글은 문화유산답사회 우리얼(http://www.uriul.or.kr) 제641차 전체답사-경주남산(통일로 가는 신라, 불교는 그들에게 무엇이었나?)의 동행기록입니다.
#탑곡 #부처바위 #명랑법사 #문두루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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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지역 대학생문학연합(효가대 난문학회) 동인/ 문화유산답사회 우리얼 문화지킴이간사/ 국립문화재연구소 복원기술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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