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이은 롬니의 도전, 왜 실패했나

오바마와 치열한 선거전 펼친 롬니, 절반의 성공

등록 2012.11.08 10:06수정 2012.11.0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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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선거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친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의 돌풍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당선 연설과 축하파티를 계획했던 롬니는 바람과 달리 패배가 확정되자 오바마에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전했고, 백악관은 끝내 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롬니, 아버지가 넘지 못한 '공화당 경선' 뚫다

롬니의 경력은 누구나 부러워할 정도로 화려하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자동차 업계에서 자수성가한 재벌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롬니는 하버드 로스쿨과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엘리트다.

투자회사 베인캐피탈의 최고경영자(CEO)로서 막대한 재산을 쌓았고,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아 '흑자 올림픽'을 이끌며 뛰어난 경영 수완을 발휘한 롬니는 자신이 위기에 빠진 미국 경제를 다시 일으킬 적임자라고 외쳤다.

하지만 미국의 주류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롬니도 소수종교 모르몬교 신자라는 약점이 있었다. 독실한 모르몬교 가문에서 자란 롬니는 대학 시절 2년간 프랑스에서 선교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공화당의 옷을 입었지만 온건 보수주의를 내세운 롬니는 민주당의 텃밭으로 여겨지던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당선되며 전국적인 인지도까지 함께 얻었다. 이제 남은 것은 대권이었다.


롬니의 대권 도전은 그의 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메리칸모터스 회장과 미시간 주지사를 역임했던 조지 롬니는 1968년 공화당 후보 경선에 도전했지만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에 밀렸다.

롬니도 2004년 공화당 경선에서 실패했지만 4년 뒤 재도전에 나섰다. 무엇보다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깊었던 공화당은 뉴트 깅리치, 론 폴, 릭 페리 등 강경 보수파를 제치고 인지도와 대선 경쟁력이 높은 롬니를 선택했다.

보수적 기독교로 대표되는 공화당이 모르몬교 신자인 롬니를 대선 후보로 내세운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는 오바마라는 흑인 대통령이 선출된 것만큼이나 미국 사회의 엄청난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가됐다.

강렬한 인상 남긴 1차 토론... 오바마도 긴장

롬니는 아버지의 도전을 이어갔지만 그의 화려한 경력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오바마는 수천만 달러의 재산을 쌓았고 투자회사 경영자로서 구조조정을 마다하지 않았던 롬니가 서민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공격했다.

저소득층을 깎아내리는 듯한 이른바 '47% 발언'은 이러한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 롬니의 추격에 거세지자 '현직 프리미엄'을 안고 있는 오바마도 경합주에서 엄청난 물량의 네거티브 광고를 쏟아냈다.

하지만 롬니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특히 1차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달변가' 오바마를 상대로 예상 밖의 압승을 거둔 것은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사건이었다. 롬니는 과감하면서도 진솔한 토론으로 오바마를 눌렀고, 이는 지지율 역전으로 이어졌다.

반격에 나선 오바마가 2, 3차 토론에서 선전했지만 1차 토론의 승리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롬니는 오바마와 오차범위 이내의 지지율 경쟁을 이어갔고, 누구도 쉽게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업률과 허리케인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4년 가까이 8%를 웃돌던 실업률이 대선 두 달을 앞두고 7%대로 떨어졌고, 허리케인 '샌디'에 오바마는 대통령으로서 노련한 위기관리 능력을 선보였다.

반면 롬니는 재정적자 해결 방안으로 재난관리청 폐지를 주장했던 공약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결국 미국은 또다시 오바마를 선택했고, 대권을 향한 롬니의 대(代)를 이은 도전은 결국 패배로 끝이 났다.

보수층 결집을 위해 롬니는 온건주의 성향을 버렸지만 이로 인해 소수계 인종, 동성애자, 무당파 표심과의 괴리는 더욱 벌어졌다. 미국 선거에서 이들의 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롬니가 만약 백인이자 강경 보수파인 폴 라이언 하원의원 대신 히스패닉계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면 승패가 뒤바뀔 수도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오바마가 위기 때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라는 '스타'의 전폭적인 지원사격을 받은 반면에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인기가 땅에 떨어진 상태라 롬니로서는 기댈 언덕도 없었다.

롬니 "미국은 다른 지도자 선택했다"

비록 선거인단 집계에서 오바마가 100명에 가까운 압승을 거뒀지만 전체 득표율에서는 불과 2%포인트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미국 대선의 독특한 간선제 방식이 지난 2000년 조지 부시-앨 고어 대결에 이어 또다시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도 있다.

롬니는 당선축하 파티를 열려고 했던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나라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여러분의 희망을 이뤄주려고 했지만 국가는 다른 지도자를 선택했다"며 쓸쓸히 돌아섰다.

롬니의 재도전 가능성은 낮다. 4년 뒤 일흔이 되며, 아내 앤 롬니는 "남편이 다시 대선에 출마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4년 전 공화당 경선에서 탈락했을 때도 똑같은 발언을 했다며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미국 대선 #미트 롬니 #버락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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