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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으로 흰모자를 쓴 지리산입니다. ⓒ 김동수
"저기 보세요, 눈이에요! 눈!"
"어디?'
"저기 왼쪽으로 보세요. 지리산에 눈이 왔어요."
지난 일요일(18일)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 있는 교회를 가는 길에 흰모자를 쓴 지리산이 한 눈에 들어오자 아이들이 환호했습니다. 진주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매우 신기한 일입니다.
"정말 신기해요. 우리가 벌써 눈 구경을 했어요. 아빠, 지리산에 가면 안 돼요?"
"지금 예배 드리러 가는 길인데 어떻게 가니?"
"가면 좋겠는데."
"우리 다음에 가자. 그리고 지금은 지리산은 못 간다."
"왜요?"
"겨울에는 지리산에 들어갈 수 없어."
"아빠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요?"
"며칠 전에 지리산 입산금지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어."
"정말?"
"아빠가 거짓말하겠니?"
지리산은 입산 금지라는 말로 넘어갔지만 괜히 미안했습니다. 저 역시 11월에 눈을 본 것은 거의 처음입니다. 눈 덮인 지리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만 포기했습니다.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눈덮인 지리산을 꼭 오르고 싶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산은 원래 해가 짧은데 지리산자락이 더 짧았습니다. 이파리가 다 떨어진 나무 위에 걸린 해님. 왠지 삭막함마저 듭니다. 지난 봄에 봤을 때는 새싹이 파릇파릇했었는데 이제는 앙상한 가지만 남았습니다. 1년에 꼭 2번은 지나가는 데 지날 때마다 같은 나무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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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앙상한 나무가지에 해님이 걸렸습니다. ⓒ 김동수
"아빠, 지난 봄에 왔을 때는 나무에 새싹이 파릇파릇했는데 지금은 앙상해요."
"인헌이 잘 봤는데?"
"봄에는 새싹, 겨울은 앙상한 가지. 1년에 두 번씩 지나가면 우리들 나이도 한 살씩 더 먹어요."
"생각하니 그렇네. 여기를 지나간 지가 벌써 5년째구나. 10번 지나가니 5살을 더 먹었네."
"아빠, 저 나무는 부러졌어요!"
"저렇게 큰 나무가 다 부러지다니. 아마 지난 여름 태풍때 부러진 모양이다."
지난 여름 태풍때 부러진 것처럼 보이는 나무를 보니 당시 태풍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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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태풍 때 가지가 부러진 나무. ⓒ 김동수
"아빠, 오늘은 지리산에 눈도 봤고, 아름드리 나무가 부러진 것도 봤어요."
"오늘 좋은 것 많이 봤네."
"앞으로 자주 오면 좋겠어요."
"1년에 두 번은 오잖아."
"교회 말고, 우리 가족끼리 지리산에 등산을 하면 좋겠어요."
"그래 다음에 꼭 지리산 한 번 가자."
남강 상류에 있는 경호강를 벗삼아 난 길을 달렸습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도 가지가 부러졌습니다. 어떤 나무는 부러진 가지를 아예 베어 버렸습니다.
"아빠, 저 나무 보세요. 가지 부러지거나 베어 버렸어요."
"작은 나무들이 아닌데 많이 부러졌네."
"나무도 고통을 느끼죠."
"당연히 느끼지. 살아있는 생명인데."
"그럼 함부로 베어 버리면 안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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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호강 주위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 김동수
흰모자 쓴 지리산과 부러진 나무들. 여름은 이렇게 가고, 겨울은 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좋은 경험을 한 하루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망가진 지리산과 경호강이 아니라 살아있는,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과 경호강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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