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정국 현황제도혁명당과 녹색당은 이번 대선은 물론이고 현재까지 연합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혁명당 단독으로는 물론이고 녹색당과 합쳐도 상.하원 두 곳 모두에서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강력한 야당인 좌파진영(민주혁명당. 노동당)의 의석수가 만만치가 않고, 비록 정권을 내주었지만 국민행동당도 여전히 의회 내 많은 의석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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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혁명당의 기원은 멕시코 혁명(1910)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10년 멕시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지만 여전히 기층 민중들(메스티소. 원주민)의 삶은 지배층의 가혹한 수탈에 시달린다. 포르피리오 디아스(José de la Cruz Porfirio Díaz Mori)라는 독재자의 등장과 함께 이런 수탈은 더욱 가속화 되었고 디아스의 독재나 다름없는 재집권을 두고 민중세력들이 혁명을 일으키면서 멕시코 혁명이 시작된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라 쿠카라차(La cucaracha – '바퀴벌레'라는 의미의 스페인어)라는 노래와 함께 언제나 연상되는 에밀리아노 사파타와 판쵸 비야는 민중들로 조직된 무장게릴라를 이끌고 정규군을 하나하나씩 격파해나간다. 그러나 민중혁명세력과 제도권 안에서 혁명을 전개해나가던 정치 집단 간에 충돌이 발생하면서 결국 게릴라군의 사령관인 사파타와 비야는 정부세력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민중혁명세력의 열망은 까란사(Venustiano Carranza 1914~1920 집권) 대통령 집권기간 중인 1917년 발표된 헌법에 반영된다. 혁명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움직임은 헌법 재정에 그치지 않고 정당을 창당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해서 1929년 민족혁명당(PNR -Partido Nacional Revolucionario)이 창당되게 된다. 이후 멕시코혁명당(PRM - Partido de la Revolución Mexicana)으로 변경되었다가 1946년 지금의 형태인 제도혁명당으로 변경된다. 창당 초기 제도혁명당은 멕시코혁명 정신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까란사(Venustiano Carranza) 집권기간 동안 발표된 헌법에는 다음과 같은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까란사의 1917년 헌법▲ 3조 : 교회 교육권 박탈.▲ 23조 : 교육 관계 법령 – 공교육 무상.▲ 27조 : 모든 토지와 지하 자원은 국가가 소유권을 가진다. 소유권 양도 가능.▲ 123조 : 진보적인 노동법 – 노동 시간, 최저 임금, 보건과 주거, 노동 복지, 여성 노동 조건, 파업권, 조합 결성권 등을 보장.(출처 : 라틴아메리카 강의 노트·송영복 저·상지사·2007)또한, 까르데나스(Lazaro Cardenas del Rio 1934~1940 집권) 대통령 집권시절, 1917년 헌법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하여 과감한 토지무상분배를 실시한다. 에히도(Ejido)라는 이름의 공동 토지소유제를 실시하고, 1937년에는 국가의 주요한 철도들을 몰수했고, 1938년에는 주요 원유 사업을 국유화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이러한 산업들은 잠시 동안 해당 노동조합에 의해 통제되었다가 자율적인 공기업으로 전환되었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기업이 뻬멕스(PEMEX - Petróleos Mexicanos)이다. 위의 1917년 헌법 27조를 바탕으로 미국이 점유하고 있던 석유 산업에 대한 국유화를 단행해 뻬멕스를 설립하게 된다. 이는 당시 멕시코 수출의 80%와 국가 재정 수입의 50%를 차지하는 중대한 산업 군이었다. 뻬멕스는 2009년에는 공기업으로는 드물게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3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원래 혁명의 이상은 퇴색해져 버렸다. 제도혁명당은 전임 대통령이 다음 제도혁명당의 대선후보를 지명하는 관행을 1994년까지 이어졌다. 중앙정부에만 국한하지 않고 1929년부터 1989년까지는 멕시코 32개주의 모든 지사직을 독점해왔다. 비록 선거를 실시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71년간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해왔다.
제도혁명당이 가장 크게 실책을 범한 시기는 미국, 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 - The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을 체결한 살리나스(Carlos Salinas de Gortari) 정부시절이다. 살리나스는 친∙인척의 마약범죄 연루 혐의와 선거결과 조작의혹을 받았고 결정적으로 멕시코 경제를 미국에 갖다 받쳤다는 비난을 받는 NAFTA를 체결한다.
살리나스에 이어 집권한 에르네스토 세디요(Ernesto Zedillo Ponce de León)는 제도혁명당의 관행이었던 후계자 지명을 하지 않겠다고 공포했다. 국민행동당의 비센테 폭스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사실상 71년간의 제도혁명당 일당독재체제는 종말을 고한다. 낡고 부패한 정당으로 인식되어 세력이 급격히 위축됐던 제도혁명당은 의회에서 제1다수당을 회복하고 마침내는 정권교체를 이뤄내면서 제도혁명당의 귀환을 알렸다.
엔리케 페냐 니에토는 어떤 인물?지난해 타계한 멕시코의 지성 카를로스 푸엔테스(Carlos Fuentes Macías 1928~2012)는 대선 예비 후보 당시 페냐 니에토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페냐 니에토의 가장 큰 문제는 오바마, 사르코지, 메르켈과 같은 정상들과 같이 대화를 나눌 만한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너무 가혹한 평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후보 당시 페냐 니에토는 많은 논란을 일으킨 게 사실이다. 후보자 토론회에서 멕시코의 가장 서민적인 음식인 따꼬(Taco)의 가격을 물었을 때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남겼다.
"나는 주부가 아니다."이 답변은 여성계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았다. 또한 최저임금을 묻는 질문에 틀린 답변을 하면서 논란에 시달렸다(일반적으로 중남미에서 주요선거 기간 후보 간 토론회를 보면 장바구니 물가나 최저임금 같은 사항들을 물었을 때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면 엄청난 잘못으로 인식된다).
또한, 멕시코 주지사 시절 2010년 멕시코 동쪽 지역에서 발생한 홍수로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페냐 니에토는 주지사 자격으로 단 몇 분간만 해당 지역을 방문했고, 이러한 사실은 커다란 논란을 낳았다. 니에토에 비판적인 여론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위기대응에 소극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의견이다.
이런 일련의 논란들로 페냐 니에토(Peña Nieto)의 이름을 뻬나 니에토(Pena Nieto)로 바꿔 부르는 이들이 많다(라틴 아메리카에서 빼나는 '수치' '부끄러움'를 의미한다).
이런 논란의 연속에서도 페냐 니에토가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사람들은 그의 준수한 용모 때문이라 보고 있다. 그리고 무난했던 멕시코 주지사직 수행을 꼽는다. 니에토와 가까운 정치인들은 그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도 의견을 나눌 줄 알고 그가 짧은 정치경험을 가졌지만 주지사 시절 업무를 매우 빨리 배웠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그러나 비판 여론은 그가 과거 제도혁명당의 구세력뿐만 아니라 기업인들과 친하다는 점을 들어 결국은 기득권에 둘러싸여 과감한 개혁을 실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페냐 니에토 정부의 과제니에토 정부는 짧은 기간 안에 개혁과제를 빠르게 처리해야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세계경제의 불황 속에서도 멕시코의 올해 1/3 분기 GDP는 전년대비 4.2%가 올랐다. 10년 안에 세계 10대 경제 강국 안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재까지 멕시코의 경제적 전망은 밝다. 더 나아가 니에토는 공약으로 연 6%의 경제성장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성장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해결되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하다.
교육 분야에서 니에토는 보편적 교육의 확대를 주장했다. 보편적 교육의 확대를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니에토는 공교육 시스템 내부의 교원에 대한 연금이나 각종 혜택을 축소하고, 일선 교육현장에서 이뤄지는 교직을 사고파는 행위를 중단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 개혁안을 두고 전국교원노조(Sindicato Nacional de Trabajadores de la Educación·SNTE)는 오래전부터 강력한 반대의 의사를 밝혀왔다.
경제성장의 박차를 가하기 위한 경제개혁과제 또한 쉬워 보이지 않는다.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세제개혁·최저임금을 포함한 노동조건 개혁 그리고 중남미에서 붐을 이루고 있는 에너지 사업의 발전을 위해서 탄화수소 관련 법안도 손봐야 하는 상황이다. 가장 크게 의회에서 충돌할 수 있는 개혁안은 뻬멕스가 민간 투자를 받는다는 내용의 개혁안이다.
그러나 과연 민주혁명당(PRD - Partido de la Revolución Democrática)가 이런 개혁입법안을 통과시켜 줄지는 미지수다. 입법 활동을 통한 경제 개혁 외에도 뒤쳐진 인프라시설의 발전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외국인 투자 유치에 나서야 한다는 압박 또한 존재한다. 인프라 분야에서 철도의 산업분야 활용을 다시 재개할 움직임이다. 멕시코에서 철도의 산업분야 활용은 1990년대 중반 살리나스 정부시절 이래로 사실상 사라졌다. 현재 남아있는 철도는 관광목적으로만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니에토는 산업목적의 철도활용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기존의 국영방송 채널 일부를 공개입찰에 넘길 계획이다.
사회적으로는 지난 정부에서 이루어진 '마약과의 전쟁' 전략에 대한 수정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마약조직에 대한 대응책으로 마약조직관련 범죄가 일어나는 원인부터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면서 ('마약과의 전쟁' 관련) 피해자에 대한 대처 법안(la Ley Nacional de Atención a Víctimas)을 통과시키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 법안은 전임 칼데론 정부가 법원에 제소를 신청해서 의회를 통과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니에토는 이 법안에 대한 정부의 제소신청을 취소할 것을 지시했고 구체적으로 권력이 이양되는 시점에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그러면서도 형법개혁을 통해 마약조직 범죄에 대한 처벌의 수위는 높인다는 입장이다. 군 병력과 마약조직의 대립을 줄이는 대신에 경찰력 증강 또한 내세우고 있다. 과거 제도혁명당이 추구하던 치안 대책에서 크게 변화된 것이 없는 전략이라는 평가가 우세한 상황이다.
멕시코를 위한 협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