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 박근혜, 소녀가장이어서 6억원 받아도 된다?

[取중眞담] 신념·지론 뒤집는 후보 비호도 정도껏 해야

등록 2012.12.06 18:46수정 2012.12.0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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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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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 유성호


지난달 1일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을 인터뷰하면서 기자는 "솔직히, MCM을 싫어한다"고 했다. MCM은 김 위원장이 회장으로 있는 성주그룹을 대표하고 김 위원장의 성공을 상징하는 패션 브랜드다.

기자가 MCM이란 브랜드를 알게 된 건, 대학교에 다닐 때 두 살 적은 여자 친구가 백화점에 데려가더니 검은색 가죽에 금색 쇳조각이 줄줄이 박힌 배낭이 맘에 든다고 '강조'하면서부터다. 비싸서 못 사줬고, 헤어졌다. MCM은 아무 죄가 없지만 그 브랜드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 없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김 위원장은 단번에 "잘 헤어졌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남자친구에게 그런 걸 사달라고 하는 여성은 나도 싫다"고 했다. 재벌집 막내딸로 태어나 밑바닥에서 기업을 일으킨 이력과 당시 인터뷰에서도 확인됐지만, 김 위원장은 '한국 여성이 더 강해지고 독립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여성이 강해져야 한다'는 김 위원장의 지론은 "여성도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길을 확대해서 극기와 지도력을 배우게 하자"는 주장에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여성 강화론'은 자신이 '그레이스 언니'라고 부르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인 듯하다.

27세 성인 박근혜가 소녀 가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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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여야 대선후보 첫 TV토론에서 답변 준비를 하고 있다. ⓒ 남소연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박 후보가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에게서 받은 6억 원에 대해 김 위원장은 '소녀 가장이 받은 돈'이라 두둔했다. (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그분(박근혜)이 정말 아버지, 어머니를 비명에 잃으시고 동생들을 데리고 길바닥에 나 앉은 거예요. 그때 소년소녀가장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의 말은 "당시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렇게 흉탄에 돌아가시고 나서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한 상황이었다"고 한 박 후보 말의 연장선상에 있다. '생계가 어려우니 돈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그러나 사실관계를 대충만 따져봐도 김 위원장의 말은 최대한 박 후보에 유리하게 윤색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길바닥에 나 앉았다'고 할 상황이 아니다. 박근혜·근영 자매는 5·16 이전에 살던 서울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대지 99평에 건평 39평의 단층 기와집이다.


당시 박 후보는 27세, 동생 박근영(박서영으로 개명)은 25세, 막내 박지만은 21세였다. 3남매가 모두 성인이었고, 박근영은 서울대 음대를 졸업했고, 박지만은 등록금도 필요 없는 육군사관학교 생도였다. 이미 성인이 된 3남매를 소년소녀가장으로 부르는 경우는 없다.

한국 여성들의 나약함을 질타하는 김 위원장의 지론과, 재벌인 집안과의 관계도 끊긴 상태에서 밑바닥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기업을 일으킨 김 위원장의 인생역정을 감안하면, 박 후보가 6억 원을 덥석 받은 걸 옹호하고 나설 입장은 아니다. 김 위원장의 인생역정과는 정반대의 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 후보가 받은 돈은 노력의 대가가 아니었고, 1979년 청와대를 나온 박 후보는 18년 동안 스스로 생계를 개척하기는커녕 칩거하며 어떤 직업에도 종사하지 않았다.

'금고 속 6억 원' 정당화, 투명성 강조하는 기업인이 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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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2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국민행복선대위 임명장 수여식에서 박근혜 대선후보가 김성주 공동중앙선대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권우성


투명성을 기업 운영의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김 위원장이 '전두환이 준 6억 원'을 비호하는 것도 모순이다.

박 후보가 1979년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으로부터 받은 돈은 원출처가 비정상적인 '검은돈'일 가능성이 높다. 박 후보가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는 돈이라고 해서 받았다'고 했지만, 대통령이 청와대 안 금고에, 현재 가치로 몇십 억이나 되는 돈을 쌓아둔 걸 정상적인 정부 예산에서 나왔다고 보기 어렵다. 정상적인 돈이라도 문제다. 법적으로 지급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2000년 펴낸 김 위원장의 저서에는 관행처럼 굳어진 뇌물과 리베이트를 근절한 게 사업 성공의 한 요인이었고, 그런 관행을 없애야 한국이 발전할 거란 얘기가 수차례 강조돼 있다. 아무리 박 후보를 비호하고 싶어도 투명성을 강조하는 기업인이라면 박 후보가 청와대 금고 속 6억 원을 받은 걸 '생계비용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치부하는 건 모순이다.

김 위원장이 항상 "나는 종군하러 왔고, 봉사하고 물러날 거다"라는 말을 강조한다. 정치에 욕심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 김 위원장은 박 후보를 찬양·비호의 최일선에 서 있다. 그러면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적어도 평소 자신의 지론과 신념, 사실관계와 논리에는 어긋나지 않게 해야 '정치의용군'이라는 자신의 말에 대한 의심을 떨쳐낼 수 있다는 얘기다.
#김성주 #박근혜 #6억원 #소녀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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