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세 남자, 목욕탕 한 번 다녀오면...

살림살이 하나씩 없어진답니다... 언제쯤 목욕탕서 물건 잃어버리지 않을까요?

등록 2012.12.09 09:42수정 2012.12.0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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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꼭 챙기세요."
"응."
"목욕하고 나오면서 하나 하나 챙기세요."
"응."
"꼭 초등학교 1학년 학교 보내는 마음이네."


토요일 어머니 댁에서 김장을 끝내고 집에 왔습니다. 샤워를 하려다가 춥고 몸도 따뜻한 탕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 목욕탕에 갔습니다. 집을 나서는 데 아내가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남자 셋이 목욕탕에만 다녀오면 집안살림이 하나씩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에는 칼날면도기를 잃어버렸습니다. 그것도 1회용이 아니라 조금 비싸게 주고 손 '000'면도기였습니다.

"여보 면도기 어떻게 했어요?"
"그것 있잖아요."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요."
"분명히 챙겼는데."

"목욕물품 다 뒤져도 없어요. 샴푸, 비누, 때밀이, 아이들 물안경, 그리고 면도거품은 있는데 면도기는 없잖아요."
"정말 이상하네 챙겼는데."

면도기를 분명 챙겼다고 생각했지만 목욕가방에 면도기는 없었습니다. 우리 집 기준으로 보면 비싼 면도기였기 때문에 아내는 여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신은 5천 원짜리 옷 하나 사 입는 것도 주저하는 데 남편은 칼날 4개에 1만 원하는 면도기를 잃어버렸는지 집에 가져왔는지도 모르고 집에 왔으니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겠습니까? 지난해에는 면도거품을 잃어버렸습니다.

"여보 면도기는 있는데 면도거품이 없네요?"
"챙겼어요. 잘 찾아보세요."
"면도기보다 면도거품이 훨씬 커잖아요. 찾아볼 필요도 없어요."
"챙겼는데."

면도거품 역시 알러지 반응이 있기 때문에 항상 쓰던 제품을 써야 합니다. 한 번은 면도거품을 한 번은 면도기를 잃어버렸습니다. 때밀이는 목욕 다녀올 때마다 없어집니다. 탕에서 나올 때 분명 챙겼는 데 집에 오면 없습니다. 이러니 목욕 갈 때마다 아내는 초등학교 1학년을 학교 보내면서 꼭 챙겨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처럼 저를 챙깁니다.


"여보 그럼 수건은 안 가지고 갈래요. 남탕은 수건 많아요."
"몸을 닦으라고 가지고 가라는 것이 아니라 물건 덮게용이니까. 가지고 가세요."
"그런가."
"인헌이,체헌이 너희들 꼭챙겨야 한다. 아빠도 챙길 것이니까."
"알았어요!"


아내는 아들 셋을 보내는 마음으로 저와 중2 큰 아이, 초등5 막둥이를 목욕탕에 보냈습니다. 마지막까지 물건 잘 챙길 것을 부탁했습니다. 남자 셋은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목욕을 다 끝내고 목욕탕을 나섰습니다. 목이 말라 음료수를 마시려다가 혹여나 했어 다시 물품을 챙겼습니다.

"인헌아 다 챙겼지?"
"예 챙겼어요."
"형아가 챙기는 것 나도 봤어요?"
"다시 챙겨보자. 면도기, 면도거품, 치약과 치솔, 때밀이, 거품수건, 샴푸, 바디워시, 비누... 어 수건이 없네."
"분명히 챙겼다고 했잖아."
"탕에서 나올 때까지 분명히 있었어요."

"빨리 찾아봐라."

한참을 찾았지만 결국 수건은 온간 데가 없었습니다. 오늘도 남자 셋은 수건 하나를 잃어버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 오늘은 수건 잃어버렸어요."
"아니 신상당부했잖아요. 꼭 챙기라고."
"인헌이가 다 챙겼다고 했어요. 오늘은 내 책임이 아니라 인헌이 책임이에요."

"....?"
"아니 나보다 빨리 나간 인헌이보고 반드시 챙기라고 했어요. 인헌이도 챙겼다고 했고. 그런데 목욕탕에 나와서 음료수를 마시는 데 수건이 없는거예요."
"남자 셋이 목욕탕만 가면 집안살림 하니씩 없어지네."
"다음 부터는 잘 챙겨올게요."
"그것을 어떻게 믿어요?"
"...."


그렇습니다. 아내는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집 남자들 언제쯤 목욕탕에서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을까요? 다음 번에는 무엇을 잃어버릴까요? 아니면 다 챙겨올까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목욕 #수건 #면도기 #면도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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